단조로운 삶을 살기 위해. (27번째 삼일)
연말이 되면 다이어리 광고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그 광고에 걸려드는 소비자 중 1인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다이어리를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마다 다이어리의 활용도가 다르겠지만
나는 주로 나의 하루 일과 중 중요했던 일이나 감정에 대하여
많이 적곤 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새 다이어리를 받았을 때는
새로운 한 해를 그럴듯하게 계획하듯
다이어리도 거창하게 꾸며 나가기 시작한다.
하나라도 틀린 글자를 적거나 밑줄을 잘못 그었을 때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고 해도
한동안 눈에 거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다이어리를 채워 나가다 보면
초반의 열정은 어디 가고
기록한 날보다 기록하지 않은 빈페이지가 많아지게 된다.
그렇게 반년도 채 되지 않아서 다이어리는 역할을 다하고 만다.
온갖 것들을 계획하고 실천하기 위해
하루동안 마쳐야 할 일들을 쪼개서 시간을 관리하다 보니
다이어리를 쓰는 일도 내가 오늘 하루 끝내야 할 일 중에 하나에 포함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리를 쓰는 행위가 점점 과제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크지는 않지만 매일 조금씩 압박에 시달렸다.
그러다 진짜 다이어리를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하루의 일과를 기록하고 싶은 건지
그날의 감정들을 기록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저 새 다이어리가 사고 싶은 거였는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굳이 새 다이어리를 살만한 이유는 아니었다.
굳이 고르라면 아마 세 번째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하루 일과나 감정 정도라면
캘린더 어플에 기록하는 것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빈페이지 없이 매일같이 기록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침대에 누워 캘린더 어플을 켠다.
물론 기록한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지만
연연하지 않는다.
작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다이어리를 적는 일은.
내 인생에서 작은 성과 여러 개를 지우기로 했다.
하루를 단조롭게 살고 큼지막한 목표를 한두개 가지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더 이상 새 다이어리를 구매하지 않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