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김장을 끝내고 나면 늘 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올해 할 일 끝냈다."
매년 숙제처럼 여겨졌었나 보다.
요즘처럼 먹을 게 넘쳐나는 시대에도
김장은 집집마다 인륜지대사처럼 남아있는 듯하다.
결혼 후에도 김장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하물며 시아버님은 배추를 손수 키우시기까지 하신다.
우리의 결혼에 맞춰 귀농을 하신 후로는
작으나 크나 늘 아버님의 손을 거친 배추들이 모습을 보인다.
첫해에는 씨알이 작다며 근심이 가득하셨지만
그래도 나름 속이 알찬 게 맛있었다.
매년 배추의 크기와 모양이 달랐지만
아버님이 손수 일궈내신 배추였기에 조금 더 귀했다.
매년 11월 중순이 되면
시댁 식구들은 모두 시골 아버님댁에 함께 모여 김장을 한다.
시골이라 그런지 주변에 몇몇 분들이 손을 보태기도 하신다.
나 같은 엉성한 손이야 도움이 될 리 만무하지만
야무진 여러 개 손들이 모이니
반나절이면 김장은 마무리된다.
김장은 절이는 것이 반이라고 하던데
우리가 도착하기 전
아버님이 미리 절여 두시는 배추 덕분이다.
집집마다 가져온 김치통을 가득 채우고 나면
서둘러 점심 준비를 시작한다.
오전에 김치를 버무릴 때
따로 빼둔 적당한 크기에 노란 배추들과
먹을 만큼 덜어낸 김치 속을 밥상에 올린다.
김장하는 날은 늘 비슷하지만 만족스러운 밥상이다.
다 같이 모여 앉아 올해도 고생 많았다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요즘은 김장을 하지 않는 집도 많다고 하고
나 조차도 김장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저 아직은 우리 식구들의 다수가 김장을 원하고
그것을 따르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른들은 김장에 대한 의미가 남다르신 듯하다.
그저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아닌
한 해를 마무리 짓고, 또 준비하는 가족 행사정도로 느끼시는 것 같다.
마치 한해의 폐막식과 개막식 같은.
날이 갈수록 이런 가족행사들은 줄어들고
모두가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때가 되면 또 지금의 이런 귀찮은 일이 그립기도 할 것 같다.
언젠가는 우리 집에서 김장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만
그전까지는 매년 엉성한 손이라도 보태고 있을 것 같다.
여전히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무의미하지는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