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문단속을 해야지.

문단속은 네 역할이니까. (3번째 일일)

by 김로기

결혼해서 살다 보면

자연스레 집안일에도 역할이 생긴다.

네 일 내 일을 나누지 말자는 것이 남편의 신념이지만

그럼에도 문단속은 필히 남편의 몫이다.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도 문단속에 신경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신혼 초부터 문단속, 가스밸브 점검 같은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반면에 그런 일들에는 좀 둔하게 반응하며 살았던지라

초반엔 그런 잔소리가 조금 귀찮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귀찮음이 괜한 감정싸움으로 번질까 싶었던 건지

아니면 그런 일은 본인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도 그저께도 항상 잠들기 전 마지막 문단속은 당연히 남편의 몫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몫이 나에게 넘어왔다.

얼마 전 남편의 몸에 조금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 며칠 입원해야 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작은 수술이라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서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씩씩한척했지만

속으로는 꽤 마음앓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고 드디어 입원하는 오늘이 된 것이다.

싸놓은 짐을 한번 더 확인하고 생각보다 많아진 짐을 무겁게 어깨에 들쳐 매고는

애써 웃으며 병원으로 향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왜 이렇게 아이 같은지 모르겠다.

입원수속을 밟으며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는데

혹시라도 놓칠 게 있을까 싶어 뒤에 바짝 붙어 속으로 글자를 같이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병실을 배정받고 다시 한번 필요한 게 없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천천히 병실로 통하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남편을 배웅했다.

"괜찮을 거야. 내일 올게."

서로 웃으며 마주 보고, 곧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이게 바로 엄마의 마음인 걸까.

누가 보면 생명이 위태로운 수술이라도 하는 줄 알겠지만

그저 작은 수술일 뿐이다.

그래도 수술은 수술이니까.

좀 전에 보호자에게 환자 관련 안내사항을 정리해 둔 문자가 도착했다.

한번 더 실감이 난다.

나는 그의 보호자다.

오늘은 나의 보호자가 자리를 비웠으니

다시 한번 문단속을 하고 와야겠다.


나의 보호자는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 오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