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에게 보내는 베짱이의 다짐.

나태하고 게으른 하루끝에. (42번째 이일)

by 김로기

졸릴걸 알면서도 자지 않는 모습이

마치 다섯 살 어린아이 같다.

남편의 이른 출근을 도우며 잠시 잠에서 깬 나는

다시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한번 깬 잠은 쉽게 다시 들지 못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잠에 들지 못한 나는

기어이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어두운 방안.

너무도 밝은 휴대폰 불빛은 최대한 어둡게 한 채로.

눈이라도 덜 부시면

잠이 확 달아나지는 않겠지 싶은 나의 대단한 착각이다.

손가락 한 번에 몇 초짜리 동영상을 수십 개를 보고 나서야

이미 날이 밝았음을 깨닫고

그제야 나는 다시 잠에 들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이미 날은 밝았지만 정해진 양의 잠을 채워야 한다는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휴대폰을 하며 날린 두어 시간의 잠을 채운 뒤에야

드디어 잠에서 깬다.

누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냥 나는 겨우겨우 침대를 벗어난다.

겨울이 되고 침대에서 벗어나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러고는 요즘은 울며 겨자 먹기가

되어버린 영양제를 몇 알 삼키고

주방을 둘러본다.

어제저녁 식사 후 남겨진 설거지와

미처 개지 못한 채

소파 위에 널브러진 빨래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는다.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할

지한 대화들이 오가는 영상을 재생한 채로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분명 어제도 같은 일들을 했었는데

신기하게도 비슷한 자리에 비슷한 일감들이 놓여있다.

나는 어제와 같은 일들을 반복하며

정리된 집의 상태를 확인한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지만

부쩍 깨끗하게 정리된 집안을 보며 조금 뿌듯함을 느껴본다.

그러고는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새 반찬에 새 밥일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나름은 정갈하게 한 끼 식사를 차린다.

그렇게 식탁에 앉아 휴대폰을 기대어 둔 채 밥을 먹는다.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여유로운 식사가 마무리되면

따뜻한 생강차 한잔을 타서

드디어 노트북을 켜고 책상 앞에 앉는다.

이제는 책상에 앉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그대로 고민하다, 끄적이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날이 저문다.

어느새 어두워진 창밖을 보고

서둘러 저녁 준비를 한다.

오늘도 늦을 것이 당연하지만

올시간에 맞춰 따뜻한 밥과 새 반찬을 만들어둔다.

혼자만 게으른 하루를 보내 미안한 내가 해줄 수 있는

따뜻한 사과와도 같다.

그렇게 서서히 나의 하루는 저물어 간다.

하루를 곱씹어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게으르기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베짱이의 하루 같다.

그리고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루를 낭비한 것 같은 마음이 드는 나와.

요즘 들어 일개미의 숙명을 타고난 듯

개미의 하루를 보내는 누군가에게.

물론 나라고 매일 같이

이런 게으른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뿐인 하루라도

나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죄책감이 드는 하루가 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굳이 이렇게 피곤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게으른 하루를 보냈음에도

돌아보면 나는 그 하루가 즐겁지 않았다는 말이다.

작게나마 다짐해 본다.

적어도 어두운 방 안에서

몽롱한 정신으로 휴대폰을 켜지는 않겠다고.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는 아침을 맞겠다고.

게으른 하루를 보내기보다는

여유롭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 위한

오늘의 나의 작은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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