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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미 좌절은 시작된다.

예민한 인간의 미리 겪는 좌절. (45번째 일일)

by 김로기

계획적인 인간의 여행에는 수많은 고난이 따른다.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미리 예상된 걸림돌들로부터 좌절을 경험하는 일이 많다.

여행을 계획하는 것에서부터 여행의 시작이라 했거늘

나는 여행을 계획하는 과정에서부터 미리 많은 좌절을 경험하곤 한다.

여행지가 결정된 다음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그날의 날씨이다.

스스로가 날씨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날씨에 따른 여행 계획 또한 다르게 짜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여행은 대체로 걷기와 먹기 위주이지만

비가 온다고 하면 그중 반절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소식가 둘이 먹는 것만 가득한 여행을 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실내를 돌아다니며 할 수 있는 여행 또한

내가 원하는 방식의 여행이 아니다.

여행이란 자고로

눈앞엔 풀과 나무가

양팔엔 깨끗한 바람이

그 뒤론 눈부신 햇살과 맑은 하늘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흐린 날의 여행은

어떻게 계획해야 하는지 조차 사실 잘 모르겠다.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다가도

비 오는 날의 여행을 생각하면 막막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즉흥여행을 즐기며

날이 좋으면 좋은 데로 비가 오면 오는 데로

그때의 날씨까지 즐기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절대 그게 가능하지 않은 사람이다.

비에 바짓가랑이가 젖는 것이 싫고

습기에 가득 차 온몸이 꿉꿉한 것이 싫다.

그런 나는 비가 온다는 소식을 접하면

이미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던 여행일지라도

일단 실망하고 계획을 수정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미리 계획한 여행의 설렘이 크면 클수록

실망은 큰 법이다.

나는 과하게 예민하다.

예민함의 정도가 클수록 일상이 불편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예전의 글에서도 나타낸 바와 같이

예민함은 시야를 좁히기 마련이다.

그저 여유를 갖고 좋은 하루를 보내기 위한 여행에서도

나의 예민함은 걸림돌이 된다.

무엇도 완벽할 수 없다.

어쩌면 가벼운 여행이야 말로 나의 예민함을 깰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여행을 망친다는 것은 그저 나의 기준일 뿐이고

비록 비가 오고 궂은 날씨 속에 떠나는 여행일지라도

그 자체가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여행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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