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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 아저씨의 은밀한 영업비밀.

느린 손 덕분에. (45번째 삼일)

by 김로기

우리 집 앞에는 가끔 호두과자 아저씨가 오신다.

메뉴는 호두과자와 땅콩과자 두 가지뿐임에도

언제나 사람이 북적인다.

처음 아저씨를 발견했을 때는

호두과자 체인점도 많은데

도대체 얼마나 맛이 있길래

저렇게 사람들이 줄을 선건가 싶었다.

날도 추운데

줄까지 서서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서

항상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그날은 평소보다 사람이 적길래

냉큼 줄을 섰다.

내 앞에 두세 명 정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만큼 내 차례가 금방 오지는 않았다.

십오 분 정도 기다린 후에 나는 드디어 아저씨와 마주 섰다.

"섞어서 삼천 원어치만 주세요."

아저씨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접혀 있던 종이봉투를 탁하고 펼쳐서는

한 알 한 알 정성껏 담아주셨다.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저히 냄새를 참지 못하고

호두과자 하나를 입에 넣었다.

"너무 맛있잖아."

따끈하고 폭신하고 달콤하고

그 어느 체인점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너무 적게 샀나 싶어 돌아봤을 땐

이미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줄을 보고 몇 사람이 달려와 이어서 줄을 서는 것을 발견했다.

더 사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이미 손에 쥐어진 호두과자 봉투를 보며 흐뭇했다.

다음엔 기필코 더 많이 사겠다고 다짐하며.

그리고 얼마 뒤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여느 때와 같이 줄은 길었다.

그때 앞에서 줄 서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맛은 있는데 손이 너무 느리셔."

그때 옆에 있던 손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맛있는 거야. 따뜻하게 바로 구운 걸 먹을 수 있어서."

생각해 보니 지난번에 내게 호두과자를 담아주실 때도

한 알 한 알 느리지만 정성스레 담아주시던 게 기억이 났다.

나는 앞에 선 사람들의 말에 동감하며 피식 웃었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아저씨만의 전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겨울날 달콤 고소한 냄새를 풍기니

사람들은 지나치지 못할 것이고

손이 느리시니 손님들은 줄을 설 것이었다.

그 모습의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은

뒤이어 줄을 설 것이고

그때그때 갓 구워진 호두과자가 소진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바로 구워진 따끈한 호두과자를 먹게 될 것이고

맛있다고 소문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모든 게 아저씨만의 은밀한 영업 비밀이었다.

나는 가끔씩 호두과자 아저씨를 찾아다닌다.

그러다 아저씨를 발견할 때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곤 한다.

여전히 느리셔서 오래 기다려야 하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언제나 맛있는 호두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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