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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한마디는 때로 폭력적일지도 모른다.

다수가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46번째 일일)

by 김로기

여러 개의 단톡방 중에 아파트 입주민들이 모여있는 채팅방이 있다.

전체적인 건물 하자에 관한 내용이나

공동구매 혹은 내가 집에 없을 때 방송을 통해 공지된 공지 사항 같은 소식들을

전달받기 위해

이사 오고 얼마 뒤 가입해 둔 것이다.

처음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필요한 정보들을 잘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얼마뒤부터 단톡방의 메시지의 개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침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입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 불만의 대상은 대부분이 아파트 운영진들이었다.

한 번은 누군가가 겉으로는 굉장히 예의를 갖춘듯한 말투로

운영진들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지만

그 글을 옹호하며 다른 입주민들의 항의 글이 함께 올라왔다.

다수는 소수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댔고

그들이 소수의 앞에 똘똘 뭉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인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늦은 시간에 수백 명의 입주민이 함께 보는 공간에

글을 올린다는 것이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을

그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의 무례함에 대해서는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소수를 비난하는 순간에는

왜 그렇게 폭력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과연 명백한 문제가 있는 상황일지라도

그들이 다수가 아닌 소수의 편에 서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

다수가 보탠 한마디의 말들이 모여

소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동안

결국 나아진 것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들이 각 동마다 운영진을 뽑는 자리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이유도

결국 소수의 입장에는 서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한 번만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지금 서있는 곳이 다수의 편이라고 생각된다면

내가 보탠 한마디는 다수의 백 마디가 되어

소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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