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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자판기.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예상치 못한 설렘 한줄기. (54번째 이일)

by 김로기

길 가다 우연히 음료 자판기를 발견했다.

어제도 있었나 싶을 만큼 새로워서 눈길이 갔다.

큰 대로변에 있음에도 아직 깨끗해 보이는 걸 보니

설치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찬찬히 음료의 종류를 살피는데

랜덤이라고 쓰인 음료가 있었다.

음료의 이름이 랜덤은 아닐 것이고

궁금해서 지폐 한 장을 넣고 눌러봤다.

포도맛 주스였다.

"이런. 하지만 나쁘지는 않군."

다음날도 자판기 앞에 서서

지폐를 넣었다.

복숭아맛 이온음료가 나왔다.

음료의 사이즈는 비슷했다.

천 원을 내고 어제와 오늘 나온 음료를

사 먹었을까 싶긴 했지만

출근길 몇 초의 설렘과 가벼운 웃음의 대가로는

충분해 보였다.

이것이 마케팅의 힘인가.

그 뒤로는 다시 그 자판기를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지나다 나처럼 한두 번 이용하는 사람들은

꽤 있을 것 같았다.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소소한 재미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생뚱맞은 자판기는 나름 일리가 있었다.

다시 그 자판기를 마주했을 때는

처음보다 많이 때가 타 있었다.

그리고 그 랜덤 음료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쩌면 자판기는 그 랜덤음료만을 위한

자판기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또다시 지폐를 넣는 일은 없게 되었지만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누군가는 또 그 랜덤음료를 기다리며

작은 설렘을 느낄지도 모른다.

작은 기쁨 하나가

지루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위로가 되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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