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한 여지는 위험한 사랑을 키워내는 밭이 되기도 한다.

나름의 질서는 필요하지 않을까. (62번째 일일)

by 김로기

한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수많은 포털과 SNS를 장식했던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매 기수별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고 있는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별 관심이 없던 프로그램이었기에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나 보다 하며 넘기기 일쑤였지만

이번 기수는 좀 달랐다.

바로 24기 너드남 특집.

처음에는 한 남자의 서럽게 우는 영상으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전 국민이 다 보는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저렇게까지 서럽게 울 일이 무엇일까 싶었다.

그렇게 정주행 하기 시작한 24기 남녀의 모습은

흥미진진하다고만 하기에는 조금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정해진 기간 동안 다수의 사람과 만나며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프로그램이다.

한 출연자의 말처럼 쓰레기가 되는 것이 당연한 프로그램이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확인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는 하다.

그리고 절대 정숙함이 무기가 되는 공간은 더더욱 아니다.

다수를 향한 긍정의 표현과 여지가 허락된 공간이지만

이 부분에서 내가 마음이 쓰였던 것은

그 짧은 시간에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에게 건넨 얕은 깊이의 가벼운 표현들이

누군가에게는 온 마음을 다한

불타는 사랑의 표현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관찰자 입장에서야

당연히 그만을 향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지만

당사자는 알아차리기 힘들었나 보다.

어쩌면 그였기에 더 알아차리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마지막 회차에 다다라서야

자신에게 뿌려진 씨앗은 그저 껍데기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사랑의 서툰 남자는 그렇게 배신감과 자신의 어리석음에 오열하고 만다.

현실에선 허락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 작은 공간에서

한 가지 느끼는 바가 있다.

과한 여지가

누군가에는 어마어마한 사랑을 키워내는

양질의 밭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무심결에 내뱉은 한마디가

뽑아내지 못할 사랑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

두 사람 모두에게 비극이 되고 만다.

조금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비록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해야 하는 복잡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의 질서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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