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파민과 불안의 숨바꼭질.

더 이상 숨기지 말고 드러 낼 것. (76번째 일일)

by 김로기

최근 들어 나의 유튜브 재생목록에는

도파민이 샘솟을만한 온갖 동영상들이 가득하다.

아침부터 습관처럼 이어폰을 꽂고

내 귓가에는 자극적인 소재의 이야기들이 흘러 들어온다.

내가 이런 생활을 하게 된 지도 벌써 반년이 다 되어 가는 듯하다.

나의 하루의 대부분은

이러한 자극적인 소재의 동영상이나 숏츠에 노출되어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자극은 더한 자극을 찾게 되어있고

나도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있는 듯하다.

이런 것들이 분명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수개월에 걸쳐 길들여진 습관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이러한 것들을 끊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보다는 조금 긴 흐름의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해 보기로 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는 나름의 알맞은 전개가 있고

구성 또한 탄탄하다.

무엇인가 귓가에 머물러야 한다면 그것들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자극을 끊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불안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불안들이 내 머릿속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원래도 나는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루 종일 기분이 다운될 정도로 불안함이 지속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동안의 내 불안들은

어쩌면 도파민이라는 자극 속에 숨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자극을 끊어내기로 결심한 상황에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나의 불안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연 나는 이 불안을 어떻게 잠재워야 할까.

새로운 자극을 다시 주입시키는 것이 맞을까.

하지만 결국 도파민 속에 불안을 숨기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불안 요소를 없앤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늘 불안은 나와 함께 하고

내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였던 걸지도 모른다.

비겁하게 자극의 뒤에 숨게 내버려 두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인 듯하다.

이제는 더 이상 불안을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내도 좋을 것이다.

내가 가진 불안에 대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한

더 이상 그 불안이 나를 괴롭히지는 못할 테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무와 내가 계절을 대하는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