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있든 없든 모두가 계절을 보내고 있다. (75번째 삼일)
비가 온 다음날이면 녹음이 짙다.
봄꽃이 만발이더니
이제 여름의 푸르름으로 갈아 입으려나 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 하나에도
수천 그루의 나무가 있고
그 나무들이 가진 잎사귀의 색이 모두 다르다.
봄이 올 때는 다들 엇비슷한 꽃잎의 색깔을 보였는데
여름엔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색의 잎을 띤다.
저 나무들이 각자의 계절을 준비하고 살아내는 동안
나는 나의 계절을 잘 살아내고 있을까.
나의 여름의 색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향을 가졌을까.
한 해를 산다고 치면
그중 반의 반을 넘기며 살아온 동안
나는 봄이 꽃을 떨어뜨리는 것 같은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
그저 매일이 불안하고 그럼에도 하루하루 살아냈다는 것뿐.
그렇다고 겨우 봄을 살아낸 지금 좌절할 필요도 없다.
나에게는 푸름의 여름이 있고
가을과 겨울도 남아 있으니까.
그것이 창밖의 나무들과 나의 다른 점이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가는 것을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나무지만
나는 그 어떤 변화도 없이
그저 변함 없이 그대로 계절을 맞이하고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것이 나와 나무들의 계절을 대하는 차이이다.
그러니 멈춰있다고
이룬 것이 없이 늘 그 자리라고 슬퍼하지 말고
그런 내가 또 다음 계절을 맞았음을
나의 시간 또한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