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것. (86번째 삼일)
며칠 전 남편이 퇴근할 무렵 마중을 나갔다.
멀리서 남편이 타고 있는 차가 보이고
고작 하루도 채 되지 않은 남편과의 재회가
그렇게도 설렐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 감정이 무뎌질 만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편의 마중을 나가
만나기 직전의 설렘은
연애를 막 시작한 연인들의 떨림과도 같은 기분이 든다.
나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라고 해도 좋을 테지만
남편의 얼굴에서 다분히 혼자만의 설렘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고된 모습으로 차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 길.
두 사람의 발걸음은 세상 가벼웠다.
그리고 남편은 말했다.
덕분에 어깨가 으쓱했다고.
"덕분에"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비 오는 날 학교 앞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던 엄마를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처럼
마흔이 넘은 남편에게 비 오는 날 우산을 든 엄마와도 같은 선물이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마중을 나갔을 때.
남편이 느낄 기분 좋은 아이의 들뜬 마음을.
그래서 남편을 마중 나가던 길이 전혀 귀찮지 않았다.
그 마음을 나도 느낄 수 있었기에.
어쩌면 이런 것들이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떠올리며 실천에 옮기는 것.
별 것 아닌 이 두 가지가
지금껏 우리의 관계를 유지해 오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