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없었다면 이런 애틋함 또한 없었겠지. (90번째 일일)
얼마 전 엄마가 1박 2일 여했을 다녀왔다.
아빠가 내시경 검사를 앞두고 있어
식단이 신경 쓰였지만
이틀, 고작 세네 끼 정도 되는 식사는 알아서 잘하겠지 싶어
일단은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그 뒤로 며칠 뒤 내시경 검사 결과도 들을 겸
엄마와 통화를 했다.
다행히 검사 결과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한숨 섞인 푸념들을 늘어놓았다.
엄마가 자리를 비운 이틀 내내
아빠의 식사는 작은 카스텔라 한 개씩이 대신했다고 했다.
별 수고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흰 죽도 아닌
아기 주먹만한 카스텔라로 끼니를 때웠다고 했다.
이틀 동안 카스텔라 4개가 아빠의 식사의 전부였던 셈이다.
엄마는 오자마자 그런 아빠를 향해 잔소리를 퍼부었겠지만
아빠의 반응은 안 봐도 뻔했다.
그저 허허실실 아무래도 괜찮다는 웃음뿐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엄마가 늘 일러두는 말이 있다.
"남자들은 손이 없어. 자기 손으로는 냉장고 안에 사과
한쪽도 꺼내 먹을 줄 모른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불편해도 옆에서 챙겨줘야 한다고."
항상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참 잔소리를 늘어 놓으면서
결국 챙겨 줘야 한다는 건 또 뭔가 하는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곤 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여자가 남자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한다니.
너무 과잉보호가 아닌가 하는 생각.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언제부턴가 나도
남편이 먹을 영양제를 하나 둘 내 손으로 챙기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길에 사과 한쪽씩 들려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도 남편의 손을 없애는데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시대에 걸맞지 않은 습관을
진작에 바로 잡아야 할까 싶은 마음보다는
뭘 더 챙겨줘야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 앞선다.
내가 아이러니하게 생각하던 엄마의 뒤를
차츰차츰 따르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엄마도 나도
아직까지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것은
아빠도, 남편도 진짜 손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마음 들이다.
우리가 모르게 그들로부터
어떤 손길을 받아왔는지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 마음이 우리에게 닿아
투덜거리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빠를 향해 투덜거리던 엄마의 모습 또한
결국 아빠를 향한 애틋함에서 비롯된 잔소리 일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듯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