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부탁.

그게 무엇이든 죽는 것보다는 낫다. (101번째 일일)

by 김로기

종종 기사를 통해 안타깝게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좀처럼 남에게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그런 기사를 볼 때면 처참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들의 사연이야 전혀 알지도

안다고 한들 공감하지도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싶은 안타까움이 든다.

죽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들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을 괴롭히던 무엇인가에 대한 분노나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것들에 대한 해방감보다는

후회가 밀려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남은 삶에 대한 미련이 마지막 순간 스스로를 더 괴롭게 하지는 않을까.

지금 이런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조차 매우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렇게 이미 떠나버린 선택에 대한 후회나 미련을

조금만, 조금만 더 일찍 떠올렸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어렵게 말을 전해보려 한다.

어떤 삶이든 아깝지 않은 삶이 있을까 하는 말이

너무도 보통의 말들처럼 나돌아서

가볍고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다.

수십억을 가진 누군가의 삶도

당장 내일 먹고사는 것이 걱정인 누군가의 삶도

스스로 져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하물며 어린 나이에 사는 것이 힘들고

그저 버티는 힘마저도 더 이상 남아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그때도 죽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낫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그만두는 것도

집을 떠나 보호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도

당장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혼자 방에 틀어박히는 것도

어쩌면 죽음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더군다나 누군가의 시선이나 자신의 체면 따위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 같은 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다.

매우 창피하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아주 힘들겠지만 일단은 버티라고 말해주고 싶다.

숨어도 좋고

잠시 못 들은 척 해도 좋지만

죽지는 말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싶다.

시간은 온몸으로 막아선들 흐르게 되어있고

그때가 되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 힘으로 오늘을 살아보기 위해 버티고

또 내일을 위해 버티다 보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일단은 무엇이든 했으면 한다.

죽는 것 말고 뭐든 좋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감사할 것이다.

죽기보다는 다른 것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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