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의심한다.

기억이 안 나는데 설마. (103번째 삼일)

by 김로기

예전 출근길에 문득 머리를 스친 생각 하나가

한참 동안 나를 불안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냉장고 문을 안 닫은 것 같은데.'

설마 하는 그 생각은 한동안 내 머릿속에 계속 떠다녔고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여름 더위에 출근 때부터 회사에 도착하고도 한참이었다.

족히 세 시간은 흘렀을 것 같은 그 시간 동안

냉동실 안에 음식물들이며

그 냉기로 인한 물기가 바닥에 흥건했을 것이 분명했다.

마루는 온통 물에 젖고

아랫집에까지 피해를 끼치면 어쩌지 싶은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갔다.

얼마 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고

냉장고 문이 열리기는커녕 잘만 닫혀있었다는 말을 듣고

그제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그때뿐만이 아니다.

며칠 여행을 가던 길에도 고데기를 꽂아두고 온 것 같은 느낌.

에어컨을 켜두고 나온 것 같은 느낌.

가스불을 끄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

그 불안한 느낌들이 언제나 내 발길을 돌리게 했다.

결국 나는 나의 행동을 의심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모두 잘 정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이면 늘 집안 구석구석을 점검하는 편임에도

문득문득 불안해질 때가 많다.

너무 당연하고 습관처럼 정리하는 것들이라서

오히려 그 행동들을 했었는지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은 것도 같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이 나쁠리야 없겠지만

얼마나 더 반복해서 확인해야 불안한 느낌이 사라질지 모르겠다.

이번에도 내 불안이 제 역할을 하는 중인건지

아니면 조금씩 나빠지는 기억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의심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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