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똥 맞은 날.

근데 뭐, 딱히. (109번째 일일)

by 김로기

여전히 기억하는 그날은

여름이 한발 물러서고

가을이 왔음을 몸으로 느끼던 날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간간히 부는 바람에도 조금씩 냉기가 서려있던 무렵.

한동안 잠들어 있던 검정재킷을 꺼냈다.

간절기에는 아무래도 얇은 재킷이 최고 아이템인 듯 싶다.

차마 정리해 넣어두지 못한 여름옷 위로

살짝 걸쳐주기만 해도

계절에 맞춰 옷을 입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누가 봐도 가을의 옷차림을 하고 집을 나섰다.

출근하면 겉옷은 벗어서 걸어두곤 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문제는 퇴근 무렵 건물을 벗어나면서부터였다.

우연이 벽에 비친 재킷 위로 뭔가 이물질 같은 게 보였다.

고개를 돌려 자세히 보니

아무래도 새가 똥을 싼 모양이었다.

아마도 출근길에 그랬던 것 같은데

퇴근할 때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잠깐 한숨을 내쉬며 가방 안에 물티슈를 찾아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냥 집으로 향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침 출근길부터 새똥이나 맞고, 이렇게 재수가 없어서야.'

나는 속으로 오늘 하루 참 재수가 없는 하루구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걸 내가 아침에 봤다면

하루 종일 그 생각에 모든 일이 찝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모든 것을 마친 퇴근길에서야 알게 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뭐 오늘 하루 딱히 안 좋은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비록 아침부터 새 한 마리가 내 하루를 망칠 뻔 하기는 했지만

그 또한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은 하루가 될 일이었다.

내 하루를 만드는 것은

새똥도 다른 누군가의 방해도 아닌

결국 나 자신이었다.

그날도 결국은 새똥이 묻은 채로 집에 돌아오긴 했지만

내게 있어 딱히 나쁜 하루는 아니었다.

앞으로 내게 닥칠 그 어떤 것들도

예민하게 단정 짓고 괴로워하기보다는

새똥을 맞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그날처럼

조금 더 유연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여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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