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거나 바보 같거나.

모두에게 친절할 수는 없다. (110번째 일일)

by 김로기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어쩌면 착하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말은

자신에게 착한 것이

남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남들에게 착한 것이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착하다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그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착한 사람들도

그 착한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 다큐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는

청년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그 청년은 길을 가다가도 주변에 어려움을 무시하지 못하고

오랜만에 가족과 놀러 간 곳에서도

온갖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를 썼다.

모두는 그를 친절하다고 말했고

보는 내내 나도 비슷한 말을 했지만

어딘가 모르는 답답함이 쌓여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친절하다고 말할 것이고

그래서 착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는 모두에게 그저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느꼈던 답답함이 막연한 친절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친절함이 결국 피해를 끼친 누군가의 불편함을 떠올리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가 마냥 착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친절을 베풀며 길을 가는 동안

그는 결국 약속에 늦었고

그가 가족들과 놀러 가서 친절을 베푼 동안

그 여행은 망친 셈이다.

그는 결국 자신이 정한 착하고 선함의 기준을 채우기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 주는 일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어쩌면 그가 이기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과연 그럼에도 그가 모두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나도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들도 그들의 가장 가까운 것을 잃어가면서까지

친절을 베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친절해야 하고 착해야 하는 상대는

결국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피해를 줘가면서 까지 착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바보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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