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뱃속에서 나온 다른 자식.

사랑의 모양이 다르다. (113번째 삼일)

by 김로기

동생이 몇 달 전부터 모임이 잦다.

그 모임 사람들과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마치 이제 막 자유를 찾은 사람처럼

집에 붙어 있는 꼴을 볼 수가 없다.

뭐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의 남동생의

타지에서의 예고된 외박은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엄마는 동생이 여행만 갔다 하면

늘 내게 전화가 온다.

막내는 나이를 먹어도 아직 막내인 건지

나와는 다르게 무심한 성격 때문인 건지

어제 새벽부터 나갔는데

도착했다는 문자 하나 보네 놓고는 연락이 없단다.

엄마의 목소리 끝에 느껴지는

걱정스러운 마음부터 서운한 기색까지도

나는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 맘을 알고 궁금하면 연락이나 한번 해보라고 권했지만

되돌아 올 잔소리와 잘 놀고 있겠지 싶은 마음이 공존하나 보다.

선뜻 연락도 해보지 못하고

나에게만 넌지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딸과 아들의 차이인가 싶다가도

역시나 막내는 막내인가 보다 하는 마음이 굳어진다.

엄마는 자주 내게 말했다.

넌 이제 걱정이 없는데

네 동생이 걱정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다 큰 아들이 뭐가 그리도 걱정인가 싶은데

부모 마음은 또 그렇지 않은가 보다.

가끔은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도

엄마에게 있어 나는 이런 의미의 자식이구나 싶어 그냥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라고 다 같은 자식이 아니라는 말이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대할 때면 느껴지기도 하는 것처럼

누구 하나 더 아끼고 소중하다는 뜻이라기보다

어느 자식은 끝까지 마음에 걸리고

어느 자식은 그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를 설명하는 말인 것 같다.

이번 주도 동생은 지리산으로 떠난다고 했다.

아마도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알 수 없는 동생의 안부를 걱정할 것이고

나는 그런 엄마를 안심시키며

연락 좀 하라고 동생에게 잔소리를 할 것이다.

그런 관계다.

엄마에게 나와 동생은

영원히 그렇게 다른 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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