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 찌질하지만 그랬었어.

by 김로기

결혼해서 살다 보면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들이나 동료, 지인들로부터 느껴지는 많은 감정들이 있다.
좋은 면, 부러운 면.

찌질하게도 나는 그런 것들이 자주 보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한 없이 올려다보곤 했다.

당연히 힘이 들었다.

올려다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올려다보는 것이 힘들어지면 곧 내 키가 왜 이렇게 작은가 자책하게 되고

그 핑계의 폭탄을 돌릴 곳을 찾게 된다.

슬프게도 그 폭탄의 주인은 항상 내가 되고야 만다.

나는 그렇게 많은 폭탄을 쌓아가는 동안 매우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인간은 타인과 비교되는 우월함으로부터 자존감을 찾기도 한다는데

모두가 그런 식으로 자존감을 찾으려 든다면

인간의 자존감 찾기는 꽤나 괴로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살다 보니 모두로부터 그런 우월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인 데다가

상대가 드러내는 자랑하고 싶은 상황들은 결국엔 내게 독이 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들의 모습도 온전히 그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드러나는 실체가 전부라고 끼워 맞춘 채 그때의 감정에 나를 대입하곤 했다.

나를 보고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역시나 나는 내 위주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로 하여금 남들이 느끼는 감정보다도

남들로 하여금 느껴지는 나의 감정이 더 중요했다.

많은 순간 속상했고

많은 순간 나를,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내 주위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주변은 온통 좋은 집, 비싼 차, 호화스러운 여행,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근사한 결혼 생활뿐이었고

나는 그들의 그런 것들을 훔쳐보며 조금씩 속으로 곪아나가는 듯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뭐라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우월감을 느껴야 하는지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었지만

그런 일들이 있을 때면 하루고 이틀이고 속상했었다.

그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희극과 비극이 오가는 삶을 사는 것뿐일 텐데

오로지 나 혼자만

희극의 저 뒤편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그것도 비극의 연속인 위태로운 클라이맥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그냥 남들과 비슷한 정도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좋은 면을 보고 있자니

나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기보다는 그렇게 되지 못한 나를 질책하기 바빴고, 그래서 더 속상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깎아내리는 상상을 하며 나와의 높낮이를 줄이는 방법으로

나를 조금 위로하곤 했던 것도 같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낮아져 갔다.

결국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어도 그땐 그리했다.

사실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지금도 때론 그런 방법으로 나를 위로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절대 나를 위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나는 나 스스로의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내게도, 내가 사랑하는 주변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나름 애써 노력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작은 목표를 주어 소박한 성과를 누리기도 하고

자책하기보단 위로하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려 애쓴다.

지금도 한 점의 거짓 없이 남에게 진실된 위로와, 응원을 할 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부터 바로 서서 곧은 사람이 되고

남의 성과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그래서 모두에게 진실된 응원과 위로를 건넬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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