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를 멍들게 하다. (14번째 삼일)
혹은 천천히
누군가 미워지는 때가 있다.
더군다나 순간의 계기가 그 갑작스러운 미움을 만들어 냈다면
그때의 이미지와 감정에 계속 매몰되어 간다.
대상을 향해 감정을 표출할 수 없는 상태라면
점점 더 그 순간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 감정으로부터 나를 놓아주지 않고
나의 온몸이 답답함과 괴로움으로 젖어간다.
과연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그 순간이 오기까지의 사건들?.
천천히 쌓아왔던 그날의 감정들?.
나를 이토록 괴롭게 만드는 그 누군가?.
어쩌면 나 자신 일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깊이 박힌 말 하나 행동 하나가
되뇌고 또 되뇌면서
결국은 매몰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상대로부터 날아온 화살은 나에게 와서 꽂혀버렸다.
그 화살을 꽂고 살아갈지, 뽑아낼지는 나의 몫이다.
더 이상 그 감정에 매몰지 않기 위해
그 대상도, 그날의 감정도 날려버려야 한다.
결국은 나에게 달려있다.
내 마음의 멍이 퍼지고 있다.
내가 그것들을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나 스스로를 멍들게 하는 일이다.
자꾸만 맴도는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그만 잊어야 한다.
나를 위해서.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내버려 둬야 한다.
모든 불편한 감정을 잊어야 한다.
그리고 내 안의 분노를 잠재워야 한다.
그게 나를 일으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