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러운 존재.
남의 편 아니고 남편. (17번째 일일)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남편이 자정이 다 되어 귀가해서 저녁을 먹을 때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 되었다.
예전엔 서로가 힘들었네 고생했네 하는 하소연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 나는 말을 조금 아끼는 편이다.
이미 충분히 지쳐 있는 남편에게 더 이상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듦을 쏟아내며 위로받기를 원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그 말을 들으며 힘이 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힘이 나기는커녕 기운이 빠지는 게 대다수다.
그래서 지금은 남편에게 나의 하소연을 하며 부정적인 마음을 보태기보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다.
한차례 남편의 이야기가 지나가면
얼추 식사를 마친 상태가 되는데
벌써 자정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다음날 새벽출근을 위해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잠에 들어야 하지만
안쓰러운 마음에 식탁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어느 날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혼자 있는 내가 생각나서 나쁜 짓은 못하겠다고 남편이 말했다.
그때 남편의 진심은 남편만이 알고 있겠지만
남편 또한 나를 안쓰럽게 여기고 있다고 느꼈다.
평소와 같았다면 비슷한 시간에 함께 출근해서
비슷한 시간에 퇴근해 함께 저녁을 먹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운 저녁을 함께 보내고 있었을 텐데
이제는 하루 중 반의 반도 집에 있을 수가 없다 보니
아무래도 남편이 없는 빈집에서
나 또한 함께 고생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진심은 그랬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안쓰러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애틋한 감정이 드는것이란걸 요즘 부쩍 느끼고 있다.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이라기보다는
진짜 내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 같다.
흔히들 남편은 결국 남의 편이라고 장난스레 말하듯이
언젠가는 나도 그가 남의 편이 되어버렸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서로에게 안쓰러운 존재로 남기를 바라본다.
지금처럼만 서로에게 딱한 존재가 되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