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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Dec 09. 2015

고독 없이 기쁨이란 없다.-에밀리 브로테

파스칼 키냐르 <떠도는 그림자들> 제47장 중에서...

제인 오스틴 소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자매의 소설로 독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녀들은 내게 애틋하고 참 고마운 존재다. 그땐 단순히 읽기에만 그쳐서 못내 아쉽지만 그 아쉬움이 큰 만큼 내 기억속에 오래도록 자리잡고 있으니깐 그녀들이 섭섭할 일은 없을 테다. 다시 그녀들을 떠올리게 된 건 파스칼 키냐르 <떠도는 그림자들> 속에서다. 10월 부터 읽기 시작했다. 거의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다.

왜 에밀리란 장을 따로 마련했을까? 키냐르는 설명하지 않는다. 내 기억에 자리 잡은 '그것'을 이어서 보여줄 뿐이란 걸 이제는 조금은 알아차렸다.


고독 없이, 시간의 시련 없이, 침묵에 대한 열정 없이, 온몸으로 흥분과 자제를 느껴본 적 없이, 두려움에 떨며 비틀거려본 적 없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무엇 안에서 방황해본 적 없이, 동물성에 대한 기억 없이, 우울함 없이, 우울해서 외톨이가 된 느낌 없이 기쁨이란 없다. <떠도는 그림자들> P181


브론테 자매들은 아버지가 호어스-영국 요크셔 주 서쪽의 작은 마을-의 목사로 임명되어 어린 시절부터 대부분 이곳에서 지냈다. 언니 샬럿 <제인 에어, 1947년>가 큰 성공을 거둔 데 반해 에밀리http://roh222.blog.me/220180193870(작가 보기)의 소설 <폭풍의 언덕, 1947 https://brunch.co.kr/@roh222/60(리뷰보기)>은 출간 당시 너무 야만적이고 동물적이며 구성이 허술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녀는 1848년 12월에 결핵으로 숨졌다.

에밀리는 시인으로서 감각이 있었다 한다. 소설로는 <워더링 하이츠> 단 한 작품만 남긴 것은 참 아쉽다. 그녀들의 수명을 늘려주고 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도 가끔 들었다. 키냐르는 고독 없이 기쁨이란 없다는 것을 에밀리를 통해서 말하고자 한다. 아래는 키냐르가 옮겨준 샬럿 브론테가 쓴 글이다.


에밀리는 가족 전체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이었다. 언제나 창백하고 과묵했으며, 눈 색깔은 진회색 혹은 어두운 청색이었다. 그녀를 묘사하기란 쉽지 않은데, 정력적이고, 응축되고, 거침없고, 야성적이고, 소심하고, 단호하며, 열광적이고, 우울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피아노를 칠 때를 제외하고) 편이었다. 에밀리와 앤은 말없이 늘 붙어 다니는 쌍둥이 자매 같았다. 몸과 그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에밀리는 늪가, 올챙이, 개구리, 물 냄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개 키퍼를 몹시 사랑해서 자주 그 개를 데리고 산보를 다녔다.

호어스에 장난감 병정들이 담긴 박스가 도착한 1824년, 그 해 여름 내내 병정들은 젊은 남자들이 되었고, 에밀리는 '심각한 눈빛의 쾌활한 남자'처럼 보이는 나무 병정 하나를 골라 자신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런 이유로 우리 네 사람-남자 형제 패트릭 브랜월을 포함한- 모두가 그 병정을 그레비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우리들 중에서 에밀리야말로 심각한 여자였다. 좀체로 말이 없었기 때문에 도무지 속을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퍽이나 정이 많았다. 나는 어느 점으로 보나 내 동생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애는 남자보다 강하고 어린애보다 단순한 보기 드문 본성을 지녔다. 더욱이 음악에서 보여준 재능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뛰어난 연주 솜씨를 지닌 것도, 위대한 음악가도 아니었지만, 터치, 스타일, 표현이 대단히 강렬했다. 그것은 혼신을 기울여 연주에 열중하는 거장의 터치, 스타일, 표현이었다.

에밀리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잘 견뎌냈지만, 갖가지 병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자신의 책이 출간되고 1년쯤 지나자 삶의 의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자 죽은 다음에 남게 될 자신의 흔적을 모조리 없애 버렸다. 그런 다음 서둘러 우리들 곁을 떠났다. 에밀리는 거실의 긴 소파에서 죽었다.
<떠도는 그림자들> 제47장  에밀리...



저 글을 읽고서 난 에밀리를 어떻게 상상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녀가 그 당시에 히스클리프라는 남자를 상상만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샬럿이 말하는 에밀리가 꼭 히스클리프란 생각도 든다.. 아예 없었던 존재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키냐르는 물이 솟는 샘 옆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


샘 가까이... 가장 내면에 근접할 때 모든 것은 길이다.
은자는 사막으로, 물고기는 물로, 독자는 책으로, 어둠은 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P181


오랜만에 다시 그녀들에 대해 생각했다. 재독을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예전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카이로스-때를 놓치지 마라-를 잡으란 말이 여기에도 해당될까? 책도 나무 나이테처럼 하나씩 늘어나는 것 같다. 나무의 안 쪽에 가장 오래된 어린 속살은 귀중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가장 중심에서 오래도록 그 나무를 지탱하고 있어왔다. 처음의 독서를 기억하란 말이 그런 뜻일까?             



  



By 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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