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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r 22. 2023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혹시 콧잔등이 하얀 검은 새끼 고양이가 돌아온 걸 보지 못했소?"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작품을 가리켜 '기쁨이 가득한 책'이라고 했다. 프랑스어가 태어나는 순간을 현장 스케치하여 이야기만으로 부재하는 그리움을 그려냈다. 프랑크 왕국의 역사가 니타르와 사료에 단 한 줄로 남은 그의 형제 아르트니를 소환하여 뼈대를 삼고, 역사. 신화. 전설. 꿈을 시처럼 수놓아 태피스트리를 만든다. 키냐르는 언제나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장르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는 신화나 역사에서 과소평가되었거나 망각된 인물을 끌어내 조명해 오곤 했다. 


<눈물들>의 목차는 특이하게 각 십여 장(障)으로 구성되어 있다. 샤를마뉴의 딸 베르트는 생리키에 수도원 원장이자 해군 제독이며 성인으로 추대되는 앙길베르 백작과 사랑에 빠져 아르트니와 니타르 쌍둥이를 낳는다. 그 누구보다 베르트를 사랑했던 샤를마뉴는 사위가 탐탁지 않았으나 베르트의 사랑을 막을 길이 없었다. 아르트니와 니타르는 쌍둥이이지만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이는데, 니타르는 대머리왕 샤를의 사관(史官)이 되어 최초의 프랑스어 문서인 스트라스부르 조약을 기록하는 주인공이 되고아르트니는 평생 사랑을 찾아 방랑했다.





<눈물들> 저자파스칼 키냐르 출판 문학과지성사발매 2019.03.08.


        

 

커다란 사슴은 천천히 뿔을 내리며 자신의 숲 한가운데서 잠든 아르두이나 여신 옆으로 와서 물을 마신다. 경사진 기슭의 조약돌 틈새에서 반짝이는 물을 핥고 난 다음 무릎을 꿇는다. 그러자 여신이 까만 두 눈을, 태양의 수호자인 까마귀보다 훨씬 더 새까만 두 눈을 뜬다. 눈에서 물이 흐른다. 그리하여 모든 게 이 물에 합류되어 물의 발원지인 기원의 어두운 호수로 흘러든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흐르는 신비한 물은 이따금 기원에 합류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살아있는 각자의 내면에서 그냥 마르기도 한다. 나는 내면에서 이 물이 말라버린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p59-60




우리의 기적 같은 삶에 대하여


옛날이야기에서는 기적이 자주 언급된다. 그것은 오늘날에는 옛날처럼 느닷없이 발생하는 기적의 빈도가 줄어서가 아니다. 옛날처럼 우리가 그런 사건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뿐더러, 공동생활의 반복된 임무 수행에서는 정말로 마음을 뒤흔들 만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탓이다. 사건을 가정일기에, 업적록에, 연대기에, 내밀 일기에, 역사책에, 비망록에 기록하지 않으므로 놀라움의 기억 역시 희미해진다. 그래서 기적이 우글거려도 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고행자가 천국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사실상 오늘날 그들은 자신의 해방감을 증언하지 않는다. 동족을 불신해서이다. 무엇하러 자신의 행복을 누설하겠는가? 동족의 질투심을 유발할까 두려운 터에. 그래서 은밀하게 고독에 몰입한다. 고독을 유지하며 단 1초도 평온을 잃지 않으면서 죽음의 순간까지 평온 자체의 밀도를 높여간다. 내면에서 파도가 일어도 눈꺼풀까지 올라오는 법은 없다. 그들은 아마도 고대인보다 더 강렬하게 행복을 사랑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누리게 될 엄청난 기쁨을 속세로부터 더욱 지키려고 한다. 





아르트니는 무엇보다 

고독을 선호하는 

노련한 대가였다. 



그동안 아르트니 왕자는 줄곧 이폴리트 성인을 본보기로 삼았다.
이폴리트 성인은 자기 말들과 함께 바다에 빠져 죽고 싶어 했는데, 매끈하고 납작하고 겁에 질린 인간의 얼굴보다 말의 얼굴이 훨씬 아름답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아르트니는 서슴없이 아르테미스를 사랑하노라고 선언했다. 마침내 아르트니는 야생 본연을 사랑하는 이가 되었다. 기원에 더 끌렸기 때문이다. 평생 동안 멈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 그는 세이렌의 섬을 두 바퀴 돌고 나서 떠났다. 잠시 후 키를 놓아버렸다. 배가 물결치는 대로 흘러가게 두었다. 바람 부는 대로 가게 두었다.





<눈물들> -Ⅰ 하이델베에르만에 대한 책



아르트니는 어느 날 건장함에 매료되어 한 남자를 사랑했다. 어느 날 부드러움에 매료되어 한 여자를 사랑했다. 어느 날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말을 사랑했다. 어느 날은 코르도바에 있었다. 어느 날은 상스에 있었다. 어느 날은 레이카비크에, 어느 날은 글렌덜록에, 어느 날은 아클로에, 그다음에는 더블린에 있었다. 어느 날은 프륌에, 어느 날은 바그다드에 있었다. 어느 날은 로마에 있었다. 어느 날은 보스포루스(터키 해협)에서 레안드로스(그리스 로마 신화인물)가 마르마라해로 뛰어내리던 탑 앞에 있었다. 

오늘은 그가 림노스 섬을 사랑한다.
하지만 떡갈나무의 도토리를 밀 낟알보다 더 좋아하는, 푸른빛 꼬리 깃털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까만 도가머리와 몹시 껄끄러운 목소리, 새하얀 선골부를 지닌 어치만은 어디든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갈고리 같은 부리를 벌려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날개가 이끄는 곳으로 그를 데려간다. 

어쩌면 밤하늘에 있는 달의 여신을 사랑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남자들, 여자들, 선박들, 말들, 머리칼, 갈기, 돛, 검고 푸른 날개, 어치보다 단지 밤 그 자체를 더 사랑했던 건 아닐까?

솜 만의 샤먼 사르 "나는 방방곡곡 그의 얼굴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마치 그가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얼굴을 찾으러 다녔던 것처럼."

단지 사르의 머리카락 한 올에 조부의 초상이 새겨진 금화를 매달아 목에 걸었다.
아르트니는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야, 세상과 이렇게 작별하는 거지"라고 되풀이해 말했다. (그는 서슴없이 죽음의 여신보다 사랑하는 여인의 알 수 없는 얼굴을 더 좋아했다.)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p87-p89, p153-156(p165)





역사가 니타르

책에 글을 쓰는 사람

책 그 자체이다.




프랑크족의 역사를 말해주는, 소위 프랑크 왕들의 '용비어천가'라고 할 만한 책들을 쓴 것은 그레구아르의 후계자 프레데게르, 아인하르트의 계승자 니타르가 최초의 작가였다. 글쓰기란 전혀 축복하는 게 아니다. 불행을 기록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자들은 쓰면 안 될 것을 쓰기때문에 불행할 테다. 이것은 사실이다. 창작하는 이들의 남다른 시선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몸 깊은 곳에서 발원된다.



아르겐타리아 성사는 '스트라스부르 서약'의 다른 말이다. 842년 2월 서프랑크 왕국의 샤를 2세와 동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 2세 사이에 맺어진 군사동맹을 말한다. 문서는 초기 프랑스어(로만어)와 고고지독일어로 작성되었으며, 그해 12월 서프랑크 샤를 2세의 명에 따라 작성된 사본이 현재 전해진다. 최초로 프랑스어로 씌어진 문헌인 까닭에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니타르는 '세 형태의 언어로' 엄숙하게 선언된 서약을 세 언어(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자신의 책에 기록한다. 숫자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 문자로 변환되는 광기 어린 순간을 지켜보는 것, 이것은 기적에 속한다. 반(半) 언어란 없다. 추위 속에서 사람의 숨결이 언어를 완전히 바꾼다. 아무런 실마리도 없는 공(空)에서, 순전히 우연하게 일이 발생한다.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바뀌는 것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 giamboscaro, 출처 Unsplash




존재의 근본은 그저 나타날 뿐 그리고 다시 닫힐 뿐이다.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페누키아누스(주술사, 현자, 마법사)의 가르침




페누키아누스 : "나는 이해하기보다는 관찰하는 게 더 좋아요."


루키우스 수도사 : "읽는 것부터 시작하시게."




페누키아누스 : "올빼미가 당신에게 건네는 노래를 당신의 자신의 수의가 찢어지는 것처럼 느껴보세요."


루키우스 수도사 : "영혼이 찢어지는 그 순간에 영혼은 사고라오."




페누키아누스 : "나는 판단을 내리기보다 사고하는 게 더 좋아요. 느끼는 것은 두 눈을 감는 거지요."


루키우스 수도사 : "그런데 사고하면서 자네는 계속 꿈을 꾸 수 있다네. 사고하면서 계속 어둠 속에 있을 수 있고."




페누키아누스 : "수컷 딱따구리는 나무줄기를 두드리는 걸 좋아해요.(중략) 그래서 즐겨 먹는 애벌레를 많이 품은 나무를 좋아하고요. 나는 식별하기보다 느끼는 게 더 좋아요."


루키우스 수도사 : "자네는 사랑할 준비가 된 것 같네."




페누키아누스 : "말똥가리는 노래하지도 두드리지도 않아요.(중략) 좌우간 갑자기 나뭇가지에 매달려 우는 작은 고양이 같긴 해요."


루키우스 수도사 : 자신이 사랑했던 고양이(찢겨죽은 고양이)가 생각나서 그는 울고, 또 울었다. p156-p160




르 리메유(이름 : 리물루스) 라 불리는 아이 이미 핏기 없는 시신이었다.


작은 티티새  : "루키우스 수도사님, 저를 잘 보세요. 제가 정말 티티새인지, 아니면 수도사님 말씀대로 어린 소년인지 말이에요." 


루키우스 수도사 : 그는 자신의 죽은 새끼 고양이를 알아보았다. p181




페누키아누스가 죽고 나서 부활절 일요일이 되자, 루키우스 수도사는 격식을 갖춰 페누키아누스가 만든 피리를 신에게 바쳤다. 그리고 리물루스를 위해 기도했다. 상아 마구리가 달린 검은 피리를 그리스도의 발밑에 놓아 수난곡을 연주하는 악기들 사이에 끼워 넣었다.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p183



© worldofmagic, 출처 Unsplash




지금의 눈은 눈부신 백색과 더불어 옛날의 야릇하고 머나먼 침묵을 가져온다.우리는 창을 열고 영원의 시간대로 빠져든다.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p234








마무리. 


파스칼 키냐르 책 처음 도입부를 뛰어넘기가 어렵다. 일단정신이 돌아와야 한다. 읽을 수 있는 정신이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서 다시 펼쳐들었을 때 파스칼 키냐르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잊고서 돌아와 보지 못하면 그 책은 그대로 덮일 수밖에 없을 테다. 독서하면서 독서에 길들여지면서 다시 파스칼 키냐르 책을 펼쳤다. 아르트니와 니타르, 그녀의 어머니 베르타, 외할아버지 샤를마뉴, 그들의 아버지 앙길베르 백작, 니타르의 옛 스승 루키우스 수도사를 기억해 내며 한 장씩 넘겼다.


아귀스는 어깨 위의 새를 통해 자신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감지했다.(p15) 아귀스 불을 밝히고 강에서 노젓기를 거부하나 아바스의 왕조 제5대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 강요에 따귀를 맞고 키를 잡았다. 돌아오자 바그다드의 형리인 마즈루르가 늙음 뱃사공 아귀스의 목을 베었다.(p79)


책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부분, 기억의 파편을 모아두었다. 다음 몇 페이지에서 느닷없이 솟아나 연상하게 된다. 그 이야기 그렇게 이어지고 한 인물의 이야기를 마친다. 이 책은 그런 인물들의 집합체 같았다. 어디까지 기억하고 연상할 수 있을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내가 기억해 낼 몇 인물들로 한정된다.


숲 한가운데서 잠든 아르두이나 여신, 여신의 까만 두 눈, 눈에서 물이 흐른다, 물의 발원지인 기원의 어두운 호수로 흘러든다. 기원과 언어가 곧 아르트니와 니타르이다. 하나에서 둘로 쪼개어진, 그러나 처음부터 하나였던 그들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다. 


아르트니는 니타르의 두개골이 갈라져 대서양의 물결 속에 머리부터 거꾸로 떨어진 이후로 애도의 눈물을 흘린다. 아르트니는 니타르보다 33년을 더 살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슬픔의 원인을 찾는다. 자신이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 사르가 다가와 '왜 당신은 아르트니로 살지 못했어?'라고 묻는다. 얼마 후 아르트니가 죽었다.


지의는 이끼다. 이끼와 부스러기의 중간쯤인 지의는 죽은 동물들의 유골이나 인적 드문 곳에 방치된 전사자들의 바싹 마른 두개골에 서식한다. 황금빛 지의들은 신의 두상을 좋아해서 핥거나 모조리 먹어치운다. 삶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역할을 부여하는 까닭에 우리는 죽지도 못한다. p184 유년기의 눈물로 충분하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흐르는 신비한 물은 사실은 살아있는 각자의 내면에서 그냥 마르기도 한다. 


루키우스 수도사의 최후는 알지 못한다. 그는 나무하러 숲속에 갔다가 실종되었다. 그는 말년에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예외 없이 자유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300년이 흐른 후 수도원에 나타나 "혹시 콧잔등이 하얀 검은 새끼 고양이가 돌아온 걸 보지 못했소?"라고 수도사들에게 묻는다. 




내가 올빼미에게 말했다."아르트니, 드세요."






다시 마무리.


오랜만에 파스칼 키냐르였다. 새로 출간된 책들 몇 권을 보아뒀다. 시간이 좀 흐른 후에 읽어봐야지 생각했다. <눈물들>은 읽을 수 없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2021년 11월에 겨우 42page 만 읽고 잊은 채 있었다. 시간이 그렇다. 항상. 


쌍둥이는 먼저 생겨난 쪽이 뒤에 나온다 하여 먼저 태어난 쪽이 동생, 뒤에 태어난 쪽은 형이 된다. 우리의 정반대이다. 기원이 아르트니, 언어는 니타르라고 생각하면 좋을듯하다. 이 책은 프랑스어의 빅뱅(세 언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과 니타르 형제의 씨줄과 날줄처럼 직조된 작품이다. 프랑스어를 최초로 기록한 니타르는 실존 인물이다. 아르트니 역시도 실제 하지만 형인지 동생인지 쌍둥이인지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p256


파스칼 키냐르는 실제 했던 인물들에게 소설화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니타르와 아르트니는 한 인물이고 그 자신이기도 했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자연의 관조' 도가 사상에서 말하는 무위자연, 자연과의 합일 p259을 지향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독서하면서 독서에 길들여진다고 나는 정말 독서에 길들여져 있구나 싶었다. 요 며칠 새 그 어느 때보다 독서에 적합한 뇌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책의 1/3만 이해했다고 짐작하고 있다. 1/4, 1/5일일 수도 있다. 차근히 읽고 음미하다. 그 다음은 단번에 넘치듯이 읽어버렸다.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었는데 그것도 어디까지나 내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키냐르의 다음 책을 기대하고 있다. 다시 한번 더 깊이 빠져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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