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콧잔등이 하얀 검은 새끼 고양이가 돌아온 걸 보지 못했소?"
커다란 사슴은 천천히 뿔을 내리며 자신의 숲 한가운데서 잠든 아르두이나 여신 옆으로 와서 물을 마신다. 경사진 기슭의 조약돌 틈새에서 반짝이는 물을 핥고 난 다음 무릎을 꿇는다. 그러자 여신이 까만 두 눈을, 태양의 수호자인 까마귀보다 훨씬 더 새까만 두 눈을 뜬다. 눈에서 물이 흐른다. 그리하여 모든 게 이 물에 합류되어 물의 발원지인 기원의 어두운 호수로 흘러든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흐르는 신비한 물은 이따금 기원에 합류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살아있는 각자의 내면에서 그냥 마르기도 한다. 나는 내면에서 이 물이 말라버린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p59-60
그동안 아르트니 왕자는 줄곧 이폴리트 성인을 본보기로 삼았다.
이폴리트 성인은 자기 말들과 함께 바다에 빠져 죽고 싶어 했는데, 매끈하고 납작하고 겁에 질린 인간의 얼굴보다 말의 얼굴이 훨씬 아름답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아르트니는 어느 날 건장함에 매료되어 한 남자를 사랑했다. 어느 날 부드러움에 매료되어 한 여자를 사랑했다. 어느 날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말을 사랑했다. 어느 날은 코르도바에 있었다. 어느 날은 상스에 있었다. 어느 날은 레이카비크에, 어느 날은 글렌덜록에, 어느 날은 아클로에, 그다음에는 더블린에 있었다. 어느 날은 프륌에, 어느 날은 바그다드에 있었다. 어느 날은 로마에 있었다. 어느 날은 보스포루스(터키 해협)에서 레안드로스(그리스 로마 신화인물)가 마르마라해로 뛰어내리던 탑 앞에 있었다.
오늘은 그가 림노스 섬을 사랑한다.
하지만 떡갈나무의 도토리를 밀 낟알보다 더 좋아하는, 푸른빛 꼬리 깃털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까만 도가머리와 몹시 껄끄러운 목소리, 새하얀 선골부를 지닌 어치만은 어디든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갈고리 같은 부리를 벌려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날개가 이끄는 곳으로 그를 데려간다.
어쩌면 밤하늘에 있는 달의 여신을 사랑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남자들, 여자들, 선박들, 말들, 머리칼, 갈기, 돛, 검고 푸른 날개, 어치보다 단지 밤 그 자체를 더 사랑했던 건 아닐까?
솜 만의 샤먼 사르 "나는 방방곡곡 그의 얼굴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마치 그가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얼굴을 찾으러 다녔던 것처럼."
단지 사르의 머리카락 한 올에 조부의 초상이 새겨진 금화를 매달아 목에 걸었다.
아르트니는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야, 세상과 이렇게 작별하는 거지"라고 되풀이해 말했다. (그는 서슴없이 죽음의 여신보다 사랑하는 여인의 알 수 없는 얼굴을 더 좋아했다.)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p87-p89, p153-156(p165)
존재의 근본은 그저 나타날 뿐 그리고 다시 닫힐 뿐이다.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페누키아누스가 죽고 나서 부활절 일요일이 되자, 루키우스 수도사는 격식을 갖춰 페누키아누스가 만든 피리를 신에게 바쳤다. 그리고 리물루스를 위해 기도했다. 상아 마구리가 달린 검은 피리를 그리스도의 발밑에 놓아 수난곡을 연주하는 악기들 사이에 끼워 넣었다.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p183
지금의 눈은 눈부신 백색과 더불어 옛날의 야릇하고 머나먼 침묵을 가져온다.우리는 창을 열고 영원의 시간대로 빠져든다.
파스칼 키냐르 <눈물들> p234
내가 올빼미에게 말했다."아르트니,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