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Feb 19. 2016

나를 알아가다.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방향은 필요했다.
그 방향을 지금도 찾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나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 훌리아 -




나의 모태는 순정만화다-고 곧잘 말하곤 한다. 어릴 때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만화의 세상 만큼 흥미로운 세상이 또 있었을까 싶다. 지금도 무척 만화를 사랑하고 있다. 아니 그 마음 간직하고 있다. 잊지 않으려고 종종 그 시간들 떠올린다. 까다롭게 읽은 편이 아니다. 웬만하면 읽었다. 그래도 그림체를 아예 안 볼 순 없었다. 머리, 몸통, 다리로 보이는 그림을 읽으래야 읽을 수가 없었다. 그게 까다롭다면 까다롭게 선택한 부분이었다.


학창 시절을 사회인이 되어서도 10년 이상을 이어서 보았다. 뒤로 갈수록 재독이 많았다. 점점 그 만화가 그 만화로 보이고 점점 내 안에 고루함이 쌓여버려서 만화 아닌 다른 것을 찾게 되었다. 도서관을 찾은 게 20대 중반이라고 치자면 내가 학창 시절에 정말 문학이란 것과 아주 동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가장 나에게 읽기 쉬운  책부터 읽었다. 제인 오스틴 소설, 브론테 자매들의 소설, 찰스 디킨스 소설을 찾아 읽었다.


나의 20대는 무척 폐쇄적이었다. 개인사가 그랬다. 나에게 유일한 탈출은  책뿐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쉬워졌다고 나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나의 20대를 되돌리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 덮어두고 싶기도 하다. 흥미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냥 그렇다. 내가 영문학 책을 한 아름 들고 도서관을 나갈 때면 뒤따라 와서 유학 갈 생각이냐고 묻던 사람도 있었다. 몇 년을 그렇게 영미 문학 소설을 그저 읽었다.


30대에 이르면서 루이제 린저, 헤르만 헤세의 책과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가미된 역사소설을 찾아 읽기도 했다. 불멸의 이순신, 삼국지, 고구려 등을 읽었다. 그리고 느리게 오래 읽을 박경리 <토지>를 읽다가 흐지부지 책 읽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 가끔 나를 돌아보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글로 쓰고 싶어도 아직은 벽이  허물어지지 않는다. 아직은 이렇게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외국영화 10편



영화는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그때 인기 있었던 영화를  볼뿐이다. 다시 보기를 여러 번 한다. 쇼생크 탈출은 수십 번 보았다. 빌리 엘리엇, 타이타닉도 여러 번 보았다. 나에게 일관성이 있는 것이라면 '탈출'이라는 것이다. 나중에서야 내가 원하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났다. 내 안에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고히 상자 속에 가둬야만 했다. 유독 코러스나 빌리 엘리엇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애니메이션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던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특히 좋아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런 동심, 잃어버린 순수성의 잊힘을 슬퍼하는 지도 모르겠다. 나의 불안 중 하나는 '단절'이다. 그리고 문제점은 '경험의 부정'이다. 사실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래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받아 들이지 않고 지우려 애쓰는 나를 보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고 바로 고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가족의 사랑, 불멸의 사랑, 간절한 사랑... 이 모든 것이 좋다. 사랑 그래도 사랑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가장 하지 못하는 사랑은 나누는 사랑이다. 받는 사랑에 익숙한 미성숙한 사랑만을 알아왔던 것 같다. 지금도 역시 시행 착오를 겪고 있다. 한순간 이기적인 나로 돌아오고 만다. 금세 실수를 알아차리지만 쌓았던 신뢰 잃어버리고 만다. 다시 그 신뢰 되찾기 위해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독서에 차츰 흥미 잃어버렸을 때 나에게 운명의 작가가 나타났다. 프랑스 작가인 로맹 가리와 파스칼 키냐르이다. 브런치에도 별도로 메거진을 만들었다. 블로그에서 지난 1년간 그들을 파고 또 파헤쳤다. 그 시간이 나를 문학의 세계로 인도했다고 생각한다. 그전엔 그저 읽기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나에게 오아시스 그 이상이었다. 또 다른 탈출이 아니라 그저 해방이었다.







https://brunch.co.kr/magazine/romaingary


https://brunch.co.kr/magazine/pascalquignard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 나 스스로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을 읽으며 그 새벽에 의미를 찾으려 불명증에 걸릴 정도였다. 한  고비고비를 넘고 나서야 그제야 작가와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움은 계속해서 찾아왔다. 역사를 사회를 철학을 여러 가지를 되짚어야 했다. 내가 고작 책을 읽겠다는데 대체 왜 이런 것을 알아야 하느냐고 마음속으로 외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무지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작가는 나에게 그렇게 어깨를 두드려줬다. 사실 이 모든 건 그저 나의 망각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고픈 대로 나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느냐고 의뭉스러운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고작 책 한 권이라고...


2015년은 내 생애 주기에 2번째로 찾아온 운명적인 해라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문학을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많이 부족했다. 나는 나 좋을 대로만 읽는 것이 여전히 좋다. 어떤 철학서를 파고들 자신도 없고 문학의 거장들을 찾아 다 독파할 자신도 없다. 하지만 방향은 필요했다. 그 방향을 지금도 찾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나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가볍게 적기 위해서 시작한 글이 길어졌다. 여전히 나를 다 밝히는 데 주저하는 것은 나의 자존감이 바닥이란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더 든다면 다 비우고 내려놓고 나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by 훌리아

http://roh222.blog.me/220152212590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의 애니메이션 판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