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로 망명 후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1968년까지 나는 체코 국내의 소설가였을 뿐 아무것도 외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 뒤에 작품들이 더러 번역이 되긴 했습니다만 체코 안에서 작가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는 프랑스를 작가로서의 조국으로 선택한 겁니다. 내 책들이 먼저 나온 곳은 파리였고 나로서는 그 상징적 의미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과거의 그 태도들을 기억하는가?
사람들이 견해를 바꾼다고 해서 화를 내는 건 아니다.
레닌이나 유럽 등등에 대해 태도를 바꾸는 이들은 그들의 비개인성으로 본색이 드러난다.
공산주의에 매혹되었다가 빠져나와 대항했고,
신자들의 박해에 항의했고,
추방된 현대 예술을 옹호했고,
허튼 선전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비판했다.
만약 이 항거들이 어떤 내면의 자유, 어떤 용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늘 속에서 진즉부터 자신의 재판을 준비해 오던
또 다른 법정의 환심을 사려는 욕구에 따른 거라면?
- 밀란 쿤데라 -
즐겨 권력을 조롱하며 보낸 세월들은 모두 잊어버렸는가?
삶의 추억을 오엘화化-단순한 정치선전의 열거로 축소-해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그들의 기억과 그들의 머릿속에서
가치를 상실해 버렸거나 완전히 말소되어 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어느 문장을 누군가가 더 잘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한데 그렇게 개선된 프루스트를 읽고 싶어 할 미친 작자를 어디에서 찾을까!
책이란 우리가 습관을 통해, 사회를 통해,
우리의 악덕을 통해 표출하는 자아와는
다른 자아의 산물이다.
작가의 자아는 오직 책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 프루스트 -
임종의 순간을 맞이한 어느 시골 노인이 아들에게
창문 앞 늙은 배나무를 쓰러뜨리지 말라고 부탁한다.
아들이 살아 있는 한 창문 앞에 서 있을 늙은 배나무를 떠올리며
현존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