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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y 27. 2016

<배신당한 유언들> 밀란 쿤데라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로 망명 후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1968년까지 나는 체코 국내의 소설가였을 뿐 아무것도 외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 뒤에 작품들이 더러 번역이 되긴 했습니다만 체코 안에서 작가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는 프랑스를 작가로서의 조국으로 선택한 겁니다. 내 책들이 먼저 나온 곳은 파리였고 나로서는 그 상징적 의미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데라는 프랑스를 제2의 조국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리디 살베르의 소개로 알게 된 러시아 여류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가 마음에 남았다. 그녀는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후 백위군- 공산당의 적군에 대항하여 정권을 다시 찾으려고 왕당파가 조직한 반혁명군-편에 서서 그들을 찬미한 시집 <백조()의 진영()>을 발표하고서 핍박받는다. 1922년 국외로 망명, 프라하와 파리에서 살았다. 그녀는 이민사회에서도 프랑스 문단 및 문인들에게서 배척을 당했다. 자신을 원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생활고로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설 곳 없이 생을 마감한다.

마리나 츠베타예바 Marina Tsvetaeva(1892~1941) - 열여덟 살에 자비로 <저녁 앨범> 출판함.



Milan Kundera(1929~ )



과거의 그 태도들을 기억하는가?
사람들이 견해를 바꾼다고 해서 화를 내는 건 아니다.
레닌이나 유럽 등등에 대해 태도를 바꾸는 이들은 그들의 비개인성으로 본색이 드러난다.

공산주의에 매혹되었다가 빠져나와 대항했고,
신자들의 박해에 항의했고,
추방된 현대 예술을 옹호했고,
허튼 선전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비판했다.

만약 이 항거들이 어떤 내면의 자유, 어떤 용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늘 속에서 진즉부터 자신의 재판을 준비해 오던
또 다른 법정의 환심을 사려는 욕구에 따른 거라면?

- 밀란 쿤데라 -



배신당한 유언들 / 저자 밀란 쿤데라 / 출판 민음사 /발매 2013.03.29.



밀란 쿤데라 전집 제12권 <배신당한 유언들>에서는 여러 작가들 및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이 남긴 위대한 유언들을 소개한다. 라블레, 세르반테스 이후 발자크, 프루스트, 카프카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무대로 활동해 온 작가들뿐만 아니라 작곡가, 음악가, 번역가, 지휘자 등 깊은 울림을 전한 예술가들의 유언들을 살펴본다. 오늘날의 자의와 몰이해에 의해 변형되고 뒤틀리는 ‘배신당한 유언들’을 통해 예술 작품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 8부 안개 속의 길들 '자유를 잃지 않는 세계로 통하는 길'



스토이의 세계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힘과 환상과 지성을 가질수록 그만큼 더 그 자신이 되고, 그만큼 더 개인이 된다. 카프카의 세계에서는 독창성이 없어진 관료체제, 기술, 역사 같은 도구에 불과한 세계를 반시적인 세계로 개조했다. 개인의 자유를 위한 자리이다. 잠깐 열리는 창문, 금방 다시 닫혀 버리는 창문들이 있을 뿐이다. 그 창을 통해 어떤 빛, 바깥의 세계, 하나의 가능성, 한 가닥 은빛을 보내는 시詩가 있다.

오웰의 <1984>는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다. 이 소설에는 창문이 없다. 소설을 가장한 정치사상이며, 정당하지만 일그러져 있고, 상황이나 등장인물이 광고 포스터처럼 진부하며, 이념으로 작용하지 않고 나쁜 소설로 작용하면서 악영향을 끼친다고 쿤데라는 말한다. 인생을 정치로 축소하고, 정치를 선전으로 축소하는 것, 그 죄악들을 단순한 열거로 축소한 것은 전체주의 악과 다르지 않다고도 말한다.


즐겨 권력을 조롱하며 보낸 세월들은 모두 잊어버렸는가?
삶의 추억을 오엘화化-단순한 정치선전의 열거로 축소-해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그들의 기억과 그들의 머릿속에서
가치를 상실해 버렸거나 완전히 말소되어 버린 것이다.



사후 소송에 걸려든 이들, 소송 정신이 유물로 남아 보복하는 것이다. 친나치, 무솔리니 지지자들, 뮌헨 평화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에 동조했던 많은 철학자와 작가들 중 몇몇은 소송을 치른다. 혁명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혁명에 봉사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어쩌면 이들은 정직하고 용감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심판에 서 있지 않다면 말이다. 역사란 곧 인류의 무의식적이고, 총체적이고, 집단적인 삶이다.

획일화된 자기중심주의 상황에서 죄의식은 옛날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가 줄어들수록 충동의 자유가 확대된다. 도덕주의 내려놓고 생각해 보라 한다. 확신을 의문시하게 한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생각해 보라 한다. 자신의 법정의 힘은 어디에 있는지, 문화의 힘은 바로 여기, 생각하는 힘에, 실존적 지식, 지혜에 있다.



# 9부 이보시오, 여긴 당신 집이 아니오


어떤 예술 작품의 본질적인 것은 그 새로움(새로운 형식, 새로운 문체,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에 있으며, 몰이해에 맞닥뜨리는 것은 바로 이 새로움인 것이다. 곰브로비치 무명일 때 <페르디두르케>를 사르트르의 <구토>보다 일 년 앞서 간행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묻혀버렸다. 소설사의 제3기를 개척한 주요 작품 <몽유병자들>, <특성 없는 남자> 등과 더불어 <페르디두르케>도 포함되는데 곰브로비치는 실존적 문제들이 진지하지 않고 재밌게 나타난다. 오히려 희극 소설 옛 전통을 되살린 진짜 소설이다.


파악하기 어려운 미학을 지닌 예술들, 거의 무명이고 싸구려 예술가로 취급당했다. 자신의 모든 작품을 없애기로 한 카프카의 결심은 무엇인가. 이유는 카프카의 것은 아니지만 쿤데라는 모든 저자의 마음을 이렇게 해석해 본다. 1) 실패의 슬픈 유물을 세상에 남기고 싶지 않아서인데 (우리들의 생각은 그저 무의미할 뿐) 저자는 자기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 당신들이 아니라고 외칠 터라고.. 2) 작품은 사랑하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경우다. 미래의 처분을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었을 터라고.... 3) 예술의 운명인 불가피한 몰이해를 깨달았을 터라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어느 문장을 누군가가 더 잘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한데 그렇게 개선된 프루스트를 읽고 싶어 할 미친 작자를 어디에서 찾을까!




쿤데라는 다시 돌아가 파괴자 카프카, 창조자 카프카 그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에게 어떤 슬픔이나 엄격함은 몰라도 광기나 절망에 의한 맹목은 찾아볼 수 없다. 비장한 증거로 그는 죽음의 침상에서도 책의 교정을 보았다. 아마도 그는 재인쇄할 수 있는 것과 미숙한 작품, 사적인 글들을 구분해서 처리해 줄 것을 친구 브로트에게 요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절대적 숭배로 모든 글을 간행한 브로트의 행위는 금서 처분하는 것과 동일한 폭력행위다. 인간은 주체에서 객체로 변하는 것, 사람들은 이를 수치로 느낀다.





<아래 : 1~7부까지 리뷰>

# 1부 파뉘르주가 더는 웃기지 않는 날 中

http://blog.naver.com/roh222/220665216440


# 2부 성 가르타의 망령 中

http://blog.naver.com/roh222/220687630413


# 3부 스트라빈스키에게 바치는 즉흥곡 中

http://blog.naver.com/roh222/220692071245


# 6부 작품과 거미, 7부 가문의 천덕꾸리기 中

http://blog.naver.com/roh222/220712156204




책이란 우리가 습관을 통해, 사회를 통해,
우리의 악덕을 통해 표출하는 자아와는
다른 자아의 산물이다.

작가의 자아는 오직 책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 프루스트 -




<마무리>
못 다 읽은 책들을 자기 전에 성급히 읽어내렸다. 리디살베르의 <일곱 명의 여자들>, 밀란 쿤데라<배신당한 유언들> 다른 두어 권의 책과 함께 읽어갔다. 함께 읽는 책들 속에 어떤 연관을 찾았을 때 발견의 기쁨이 있다. 이미 나 이전에 누군가의 발견을 엿보는 느낌도 든다.

쿤데라의 체코와 러시아, 유럽의 바꾼 태도들이 어떠했는지 들여다보는 것으로 마리나 츠베타예바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츠베타예바가 백의군을 찬양한 시를 썼고 외면받고 핍박받은 사실은 사실일 수 있지만 그녀는 어떤 흐름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 더더욱 자기 자신이 되려고 했고 극한으로 몰려 타협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죽음을 선택하는 시간을 단축시켰을 뿐이었다.

그녀가 이방인으로서 할 수 있었던 것 시를 쓰고 편지를 쓰는 것뿐이었다. 그것마저도 빼앗겨버린 듯 생을 마감했다. 열정에 미친 여자들 중에 마리나 츠베타예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매달렸던 사랑, 17년간 주고받은 편지들 그것이 전부였을지 모를 한 여인이 참혹하게 쓸쓸히 죽어갔다.

쿤데라는 한 부유한 체코인 아가씨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그녀는 자신이 누린 특혜에 죄책감을 느껴 열렬히 공산주의 부르짖고 아버지조차 부인한다. 공산주의 사라지고 나자 그녀는 또다시 죄책감을 느낀다. 소송 두 번과 자아비판 두 번이라는 분쇄기를 거쳐 그녀에게 남은 것은 부인당한 인생의 사막뿐이라 짚어 준다. 그렇다면 츠베타예바의 인생이 비록 황폐했어도 여전히 자신의 심연을 간직했으리라 짐작해도 될까....

재밌는 상상 한 가지를 해보았다. 만약 카프카의 유언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아니 그렇게 지켜진 모르는 저자의 유언이 엄청 많다면 지상에 남은 작품은 유언에 살아남은 작품일 것이다. 저자와 상관없이 당신의 집을 빌려 쓰고 있다. 무단 침입이고 소송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쿤데라는 망자의 마지막 의사에 대한 복종은 신비적이라 한다. 모든 합리적, 실제적 성찰을 초월하니깐.. 망자의 현존을 추억 속에서 찾을 수 없다. 추억은 부재만 확인 시켜준다. 죽은 이의 현존은 아마도 그가 남긴 유언을 지킨 그 자리에 남아있을 터라고 한다.

임종의 순간을 맞이한 어느 시골 노인이 아들에게
창문 앞 늙은 배나무를 쓰러뜨리지 말라고 부탁한다.

아들이 살아 있는 한 창문 앞에 서 있을 늙은 배나무를 떠올리며
현존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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