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소설을 둘러싼 일곱가지 이야기 중 1, 2부 발췌
우리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 중 하나가 무의미 아닌가?
바로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 아닌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러한 운명은 우리의 행운일까, 불운일까?
우리의 굴욕일까, 혹은 그와 반대로
우리의 위안, 탈출구, 이상향, 피난처일까?
-밀란 쿤데라 -
예전에 수영을 하면서 물에 몸을 담그려고 할 때
느꼈던 것과 유사한 감정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어깨를 구부리고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열차 밑으로 떨어졌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중
민족 문학은 오늘날 더 이상 커다란 의미가 없다.
우리는 세계 문학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임무다.
- 괴테 (독일)-
미학적 가치에 대한 무관심
프랑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 100권 선정 (언론인, 역사가, 사회학자, 출판인, 작가 30명 대상)
1위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11위 드골 <전쟁 회고록>
14위 라블레
<18~19세기 소설>
22위 적과 흑
25위 보바리 부인
32위 제르미날
34위 인간 희극
50위 위험한 관계
100위 부바르와 페퀴세
순위 밖 <파르마의 수도원>, <감정교육>, <운명론자 자크>
<20세기>
7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2위 카뮈 <이방인>
순위 밖 베케트와, 이오네스코
미학적 가치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모든 문화를 지방주의에 떼밀어 버린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프랑스 밖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위대한 작품들이 순위에서 매우 뒤처졌다. 소설 예술의 창시작, 독창성은 세계문학의 커다란 콘텍스트 속에서 일 뿐이다.
그 위에 향수를 뿌렸을 것 같은 빵
- 무질 -
키치라는 용어는 그것이 지칭하는 개념처럼 매우 근대적인 것이다. 키치는 1860년대에서 1870년대 사이에 뮌헨의 화가와 화상의 속어로 사용되었으며, 하찮은 예술품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1910년대에 이르면 느슨하고 널리 유통되는 호칭으로서 국제적인 용어가 된다.
키치의 발생 배경은 미학적으로는 낭만주의 예술에서, 사회적 배경으로는 19세기 중반 부르주아 사회의 형성과 예술의 상업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말에는 유럽 전역이 이미 급속한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파급 속도도 빨라 중산층도 그림과 같은 예술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에 따라 미술품이나 그림을 사들이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키치는 바로 이러한 중산층의 문화욕구를 만족시키는 그럴듯한 그림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하던 개념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미적 논의의 대상으로서 문화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현대에 이르면서 고급문화나 고급예술과는 별개로 대중 속에 뿌리박은 하나의 예술 장르로까지 개념이 확대되어 현대 대중문화·소비문화 시대의 흐름을 형성하는 척도를 제공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