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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Jun 03. 2016

게리 쿠퍼여 안녕 - 로맹 가리 '디에고를 위하여'

뭔가를 위해서나, 뭔가에 맞서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그런 사람.
끝에 가서는 언제나 승리하는 사나이.
어떤 영웅.

혼자 걸으며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
언제나 결국에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사람.
Gary Cooper.



로맹 가리는 1956년 미국 영사로 발령받으면서 할리우드에 진출, 1961년 레슬리 블랜치와 이혼. 외무부에 십 년간의 휴직 요청하면서 외교관 직 포기한다. 1963년 진 세버그와 결혼. 아들 알렉드르 디에고 출생한다.  그가 아메리카 대륙을 상당히 깊이 알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가 발표한 연이은 작품은 중앙아메리카에 관해 예측한 <별을 먹는 사람들,1966>, 베트남 전쟁의 시기 미국에 고하는 작별 <스키붐 1964 / 게리 쿠퍼여 안녕, 프랑스판 재출간 1969>, 미국 흑인인종차별, 인권에 관한 <흰 개, 1970>였다.

<게리 쿠퍼여 안녕>은 로맹 가리가 어린 아들 디에고를 생각하며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하니 작품의 의미를 떠나서 디에고에게 남긴 그의 유언이 떠오른다. 1978년 <영혼 충전> 집필할 당시 진 세버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그는 새 유언장을 작성했다.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로 결심하고 이 말을 명시했다. 레슬리 블랜치와 진 세버그를 경제적으로 돕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자신이 없는 빈자리를 언제나 다음 세대에 이렇게 남긴다. 현존의 의미를 디에고에게서 찾듯이.

로맹 가리는 길 잃은 이상주의자들을 하라키리-할복-라 표현하고 있다. <게리쿠퍼여 안녕>의 배경은 1963년에서 1968년까지이며, 젊음이 불타올랐던 ‘68년 5월 혁명’을 암시한다. 프랑스에서 지독한 냉소로 악명을 떨쳤던 잡지 《하라키리》가 창간된 해는 1960년, 체 게바라가 처형된 뒤 마을 교회당에서 주민들에게 비참한 모습으로 전시된 해는 1963년, 미시마 유키오가 도쿄의 어느 연병장에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할복을 자행한 해는 1970년이다. 이 책의 주인공 레니는 20세기 사회 전반을 지배한 냉소주의의 정점에서 탄생해서 당시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Adieu, Gary Cooper!



로맹 가리 (왼쪽)와 그의 아들 디에고, 미국의 영화 배우 진 세버그 1979년  9월 14일 장례식에서, 파리의 몽 파르 나스 묘지에 모여 | 출처 : AFP / JEAN-CLAUDE 델마 Make Money Online : http://ow.ly/KNICZ


당신 자식이 당신의 아이인지 아닌지가 뭐 그리 대수로운 문제지?
내가 꼭 아이를 하나 가져야 한다면, 오히려 내 자식이 아닌 아이가 낫겠어.
그러면 서로 싸울 일도 없을 테고,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야.
이 세상엔 내 자식이 아닌 아이들이 쌔고 쌨어!


게리 쿠퍼여 안녕    저자   로맹 가리                                                 

출판    마음산책                                                 

발매   2016.03.15.                                                 



진짜배기 눈인 만년설, 초록과 분홍빛이 일렁이는 융프라우 권곡, 너무도 순수한 냉기 문득 정상에 도달한 것 같다. 사방의 눈은 밤에도 달빛과 별빛에 계속 반짝거렸다. 레니는 스무 살, 미국을 떠나 스위스 산으로 올라와버렸다. 그저 바라는 것 없이 홀로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순수하게 빛나는 곳, 어떤 것 혹은 어떤 존재 바로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 곳을 레니는(산은) 알고 있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고통만을 준다. 세상은 더 가까워졌고 고통은 넘치도록 채워졌다. 그저 별들이 그리웠다.

산장에는 '수수께끼'에 걸려든 각국의 스키 건달들이 있다. 그중 미국인이 가장 많았다. 고도 2,400미터 요새에서 불법적인 강습을 하며 버텼다. 이 산맥은 인간과 종교를 피해 숨어들었던 곳이었다. 끊임없이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사람과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정을 맺었다. 그들은 소외를 선택하고서 반자연주의자, 반유대주의자, 반사회주의자, 철저한 불운아가 되었다.

진정한 눈의 방랑자인 그들은 오직 해발 5500미터에서 출발하여 25일 동안 내려오는 지독한 도정을 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저 아래 사람들이 조급해 보이기만 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만년설을 향해 해마다 더 높이 더 높이 자랄 뿐이었다. 그들의 세상인 눈 속에서는 그들만의 규칙이 있지만 저 아래에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흰 산은 정말 세이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제12서에 등장하는
바다의 요정으로 새의 특징을 가진 여성- 같은 존재다.

당신을 부르고, 당신에게 약속한다. 정상들을. 하늘을.
조금만 뭣하면 생각이 신을 향하게 된다.

그것은 고도의 문제다.





1964  스키붐(영어판)/ 1969년 게리 쿠퍼여 안녕(프랑스어판)


오랫동안 삶에 속아 더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말들이란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이니까.

스무 살, 그 긴(?)세월을 끌고 다니는 사람일지라도,
정말 깨끗함과 가까이 있다고 느끼려면 몸을 좀 얼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의, 적당한 때 멈추기)



겨울철에만 비로소 사람 구경을 할 수 없는 도정, 마치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가는 동안 너무도 깊은 고독 속에서 보름을 보낸다. 자기 자신도 더는 느껴지지 않는 상태, 사방의 어떤 느림, 어떤 영원만이 느껴지는 상태다. 각자의 사생활은 신성하다. 살아볼 가치가 있는 삶, 잠시 동안 빛의 지속은 재충전이 된다.

청년 게리 쿠퍼-미국 서부극 스타(영화배우)-를 닮은 레니는 금발에 키가 188센티미터나 되는 미남이다. 그 같은 부랑배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고 보호 본능을 일으켰다. 모험 냄새가 풍겼다. 고도 2천 미터 아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곳에서는 제발 심리학, 사회학, 너 자신의 것을 드러내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들은 베트남전쟁 따위 관심이 없었고 누구도 자신과 관계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종적을 감출 궁리만 했다.

우리 세대는 앞 세대보다 오랫동안 버티지 못할 테다. 지독한 냉소만 있고 그 뒤엔 아무도 없다. 소외에 어떻게 도달하느냐가 문제다. 우린 모두 수십억 년 전에 대양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그전에는? 우리가 여기 있는 게 누군가를 웃겨주기 위해서일까. 이 모든 게 다 뭔가. 잘 지낼수록, 잘 지내지 못하는 것. 자살률 최고, 번영의 효과다.


우린 헤어져야 해
한창 아름다울 때, 아직 지속되고 있을 때 헤어져야 해.
일을 지속시키려고 해서는 안돼, 그건 비인간적이야.
마음에 상처를 안고 헤어져야 한다고.
언젠가 우리가 아무 일 없었던 듯 그저 조용히 헤어진다면 아주 더러울 거야



그 시대나 이 시대나 양심적 병역거부란 미친 소리다. 이 세상으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없음을 너무 잘 안다. 우리들은 모두 길 잃은 세대다. 지금은 히틀러도 스탈린도 아니요 세상 사람 모두가 문제다. 밥은 먹어야 하고 검은 앙주(천사)는 내려다본다. 심리에 굴복하고 별 이유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반복한다. 세계 인구라는 항아리의 맨 밑바닥에 가라앉은 모습, 공기가 없는 고도 제로의 똥 바닥이다. 혁명을 거부하고 종교적 침묵을 수행한다. 타인들의 공포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세상의 진짜 공포다.

권력에 취한 중독자들은 인류 처분권을 가진다. 약자의 면책특권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우리에게 세상의 새로운 끝이 필요하다. 거대한 철학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보라. 무슨 일이든 시작이 필요하다. 세상을 건설한 건 강자들이다. 그들을 상대로 한계가 있을 테고 안되면 외면할 수밖에 없을 테다. 세상살이에서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믿을 수 있는 뭔가를 가져야 한다... 특히 죽음의 문제... 인생에는 어떤 논리가 있다. '어떤 절망' 이 모든 것은 우리보다 훨씬 전부터 여기에 있었다.

중독 치료가 우선이다. 무의미의 비극이 분노 밖으로 절대 살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인간에겐 어느 누구도 사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다. 죽는 법이라면 몰라도. 이 세상엔 전쟁과 굶주림만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어디론가 갈 수 있는 것일까. (다른 곳은 없다) 그가 집착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였다.

당신을 태우고 가는 것은 밤이다.
주변에 솟아오르는 것은 별들이다.
밤에는 눈으로 뒤덮인 별들이 있다.
별들은 당신 주변에서, 분설이 날리는 당신의 자취 위에서 반짝거리고,
당신은 은하수를 가로질러 미끄러진다.

모든 성운이 당신의 발아래 있고
모든 공간이 당신 것이며,
당신은 절대적 고요와 침묵뿐인 곳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이제 당신 주변엔 아무도 없고
오직 자연뿐이다.
은하수위, 눈 속, 파도, 하늘을 가로지른다.
별 무리가 분설 위로 튀어 오르며 미끄러진다.







<마무리>


로맹 가리 작품 중 재독하고 싶은 책이라면 지금에 나는 <새벽의 약속>과 <하늘의 뿌리>다. 제법 긴 시간을 함께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번역되지 않은 나머지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목표다. 지난 1년간 이어 읽으면서... (이 말은 아무리 해도 모자라다.) 꼭 꿈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 가지로 읽는 힘을 주어서 참 고맙다.

디에고는 진 세버그의 천진하고 나약한 모습이 동시에 보이는듯하다.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하기도 한데 거기까진 알아보지 않았다. 우연히 알게 되거나 누군가 이야기해 준다면 고개 끄덕끄덕할 참이다. 차례로 갑작스럽게 이별한다는 것, 이별을 예감하고 있다는 것... 분명 좋은 일은 아닐 테다. 그런 무거운 유언은 거부라는 걸 모르나 보다. 이 책은 모든 사랑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해 헤어지는 것을 바랐고 또 절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것을 바랐다.

그곳 '두 번째 코르디예라'를 스키를 타고 내려갈 최초의 인간 이스라엘인 이지 벤 즈위 또는 산장의 그들이 모두 작가의 분신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했고 스무 살 레니만이 자신을 닮을 스무 살 디에고를 그리는 듯싶었다. 오랜만에 그의 특유의 풍자 섞인 말을 들으니 정신없었다. 따라가기 어려웠다. 읽는 법 잊어버리고 말았다. 끊임없이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사람, 심리학에 달통한 사람, 영어를 단숨에 익히고 떠들어댔던 그 아닌가.

로맹 가리는 여기에서 전혀 형제애와 인류애를 운운하지 않았다. 그딴 것은 저기 멀찌감치 던져버렸다. <하늘의 뿌리>에서 코끼리에게 또는 흑인들에게 가져야 했던 마음은 사라졌다. 개인은 곧 잡아먹힐 먹이로만 존재한다. 이 세상은 처녀와 물고기가 가득한 하나의 광대한 인구요. 심리요. 마다가스카르다. 더 이상 죽고 죽이는 게임에 질려버린 듯 저 높은 산맥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고 홀로되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둔다. 떼로 몰려올 인간이 두려운 듯이.

그런 그도 결국 사랑에 꼼짝 못한다. 새끼들을 먹이는 암 호랑이 같은 여자. 새끼들을 보호하는 여자를 견딜 수 없이 사랑하게 된다. 좀 인간답게 사는 것, 물러서는 법 없이 아메리칸드림을 건설한 그런 부류 같은 여자, 늙지 않는 여자 진 세버그. 그녀의 끝이 절망이라도 그 절망이 이미 앞서 있어왔던 것인데 어쩌겠는가. 그들은 아주 먼 곳에서 아마 아주 확실한 것. 어딘가에 분명히 있는 그것을 찾았을 테다. 모두가 찾아가는 것일지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있는 것, 사물은 자기들끼리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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