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 소설
지금 우리는 그제와 어제와 오늘의 유행이
모두 혼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공전公轉'-한 천체(天體)가 다른 천체의 둘레를
주기적으로 도는 일-하는 듯한 느낌,
공전을 이길 힘.....
엔진이 동작을 멈추고 무동력 회전으로
비탈을 내려가는 느낌,
그 끝은 어디일까?
파트릭 모디아노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 저자 파트릭 모디아노
올여름 들어서만큼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과거는 전부 시간 속에서 어슴푸레해졌다. 기억들은 비눗방울처럼, 잠에서 깨면 날아가버리는 꿈의 조각들처럼 차츰 그에게서 빠져나갔다. 고독한 오후가 더디 흘러가는 날이면, 다라간은 전화벨이 울리고 어떤 부드러운 목소리가 만남을 청해오는 꿈을 꾸곤 했다.
너무 오래 고독하게 살다보면 타인에 대해 의심도 많아지고 까다로워져 오판할 우려가 커진다. 그는 석달 전부터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못 지낼 것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 잃어버린 수첩을 받게 되고 그들의 인생에 개입해 정신의 유연성을 되찾는다. 길모퉁이에서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양, 생애 최고로 가뿐한 느낌을 받는다. 아직 수용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
단어를 하나 발견하고 자신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에 자신도 모르게 찰칵하고 시동이 걸렸다. 잊고 지낸 삶의 편린 하나가 서서히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것 같았다....말言들이 그를 인도했다. 다른 옛 이름들 사이에서 이 이름을 다시 보면 그 이름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과거 당시에는 퍽 흔했던 이름, 현재의 이름, 서로 뒤섞이며 구분짓다 과거와 현재 둘 중 하나가 열렸다.
뷔퐁 같은 작가가 되어 꽃과 나무에 대해 쓰겠다.
그해 가을 뱅센 숲, 연무가 젖은 땅의 냄새가, 낙엽이 흩뿌려진 골목길
11월이 지나도록 이파리들을 그대로 매달고 서 있는 나무
우리의 시선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꽃송이의 꽃잎들에 멈춘다.
밤 11시가 가까운 시간, 그 조용한 실재-소사나무 혹은 사시나무-
뷔퐁 백작 조르주루이 르클레르은 프랑스의 수학자·박물학자·철학자·진화론의 선구자이다. 어린시절에는 아버지의 강요로 법학을 공부했지만, 후에 식물학,수학,천문학 등도 배우게 된다. 그는 꾸준히 연구를 하며, 수학 및 과학논문을 발표했다. 수학 분야에서는 Franc-Carreau게임이나 뷔퐁의 바늘 문제 같은 것등을 해결하였다.
건초 더미에서 찾아야 할 바늘 같은 이름, 인생의 한 시기에 관해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오래된 유년의 한 해, 반 세기가 넘는 세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보자고 마음먹는다. 길을 잃고 본령으로 들어가지 못할 불안과 우려로 검지로 글줄을 훑었다. 가느다란 이음줄 하나가 보이는 것 같았다. 더이상 다라간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그 이름을 찾게 한다.
지난 시절 가까웠던 사람들의 목소리 등 뒤에서 들려온다면....사소한 기억들 꿈을 꾸고 얼굴이 보였다. 누군가는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테다. 내가 그를 붙잡고 있다. 순진한 척하는 말투로 이렇게 되묻는다. '선생님 책을 전부 읽고 뒷조사도 했어요!, 어떻게 해서 그 이름을 책에 쓴 걸까요?' 라고 되묻는 이 말투 어디서 많이 보았던 말투다.
수첩의 회색 표지에 자신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가 유일하게 마음에 쓰였다. 오래전 퇴장해버린 단역들의 이름들, '자료'에 의한 취조, 추궁을 받는다. 그는 두서없이 따라붙는 그 삶의 편린-한 조각의 비늘-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 또한 불법으로 주인의 방을 점거하고 자물쇠가 채워진 다이얼을 돌려 전화를 거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새벽 다섯시
동이 터 그림자들을 흩어버리리라.
어슬핏한 빛만 유리를 통과할 뿐
누구의 얼굴인지, 누구의 윤곽인지는 구분할 수 없다.
노란 제비 두마리가 수놓인 검정 새틴 드레스
전생에 입었던 옷을 입고 누웠다.
그들은 존재한적도 없고 자신은 수첩을 잃어버린적 없이 집필실에 홀로 남아있는거라면... 다라간은 퍼즐 조각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처럼 불안과 결핍을 느꼈다. 모험을 감행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늙어버렸기 때문에 누워있는 편이 좋았다. 기억에서 멀찍이 떨어뜨려놓고 싶은 그것, 수십 년 세월이 아주 먼 거리를 두고 가로 놓여 있는 그것은 바로 '나'였다.
책을 쓴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등대 불빛을 쏘거나 모스부호를 띄워 보내는 일과 같다. 저자의 수중에 벗어나 실제 존재한 적 없던 사람이 되고 무無로 환원되고 말지만 마지막 기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이름을 이곳저곳에 흘린다. 그리고 남몰래 삽입한 현실의 한 조각, 오직 한 사람만 해독할 수 있다.
흔적 찾았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은 다른 시대에 속한 사람들 컴퓨터 속에서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익명의 군중 속, 유명 인사 뒤에 숨어버렸다. 속독한 복사물을 돋보기를 써 해독해볼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빛도 닿지 않는 저 심처에 파묻혀 있던 기억이다. 과거에서 떨어져 나와 더는 과거에 속하지 않는 새것 같았다....
<만남의 시간>
차가운 망각의 밤 속으로 저물어버렸다.
영원토록 홀로 남아 기다릴 이 환영에게 되돌아온다.
이 환영은 감옥살이를 했다.
당신에게 오기까지,
내가 얼마나 이상한 길을 지나와야 했는지....
작가는 환영을 쫓는다. 자신이 그럴만한 이유를 가져와 묻는다. 요상한 길을 배회하다 결국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야 만다. 길모퉁이에서 어떤 얼굴을 마주칠 때, 대화중 느닷없이 등장한 어떤 단어나 음악 속 어떤 음을 듣기만 해도 그 이름, 아니 그 환영은 그의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 그러나...그런일은 갈수록 뜸해졌고 갈수록 짧아졌다. 들어왔다 바로 꺼지는 신호등 불처럼.
파트릭 모디아노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를 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의 소설은 푸르스트적이다. 스탕달 '내가 사건의 실상을 알려줄 수는 없다. 그 그림자만 보여줄 수 있을 뿐.' 이란 글로 시작되고 있다. .(중략)그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p103) 부분을 읽은 후부터 더욱 해독할 틈도 주지 않고 이미 엉켜 있는 문장들 위에 또 다른 문장들이 나타나 앞의 것들을 덮어버렸다....
저자가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해에 발표한 소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스러운 시대에 부모님의 부재와 동생의 죽음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자신의 고독과 불안을 헤아리며 그때를 잊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는 저자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작가의 말이 대신하여 준다. 그 목소리 가져와 이야기한다. 타인의 삶이 내가 되는 순간도 모른 채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난다. 다라간은 진짜 삶에서 훔쳐온 일화를 제외하곤 자신의 첫 소설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다만 폐기한 첫 스무 쪽에 관해서는 그가 마음에 품은 그 소설의 시작이었다.
잠들어 있는 작가를 깨우는 일을 상상하곤 했다.(모디아노는 다음작품을 기대할 수 있다) 나쁜버릇이다. 어떤 것도 묻지 않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묻는다. 대답은 언제나 내 안에서 찾으라고 꽤 사나운 표정으로 흘겨보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아니면 넌더리를 치든가. 다 쓸데없는 일로 치부받는다.
나에게 모디아노의 첫 소설이었다. 이렇게 헤매게 하다니... 사실 책의 중반 이후는 어떻게 읽었는 지 기억할 수 없다. 길을 잃었다. 육십 대 장 다라간과 청년 다라간, 어린 장의 만남 사이의 비밀을 캐는 추리소설? 알고 보면 그저 제대로 된 기억 하나 갖지 못한 어린 장의 모습뿐이었다. 작가가 시간과 무관하게 사건들을 그리면서도 일의 순서를 알 수 있는 표시들을 곳곳에 배치해놓고 이내 뒤섞어버리다 덜컥 이야기 끝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