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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6. 2015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애수哀愁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슬픈 시름)

들판 끝, 단 하나의 볼 거리인 그 산의 온전한 모습을 엷게 노을진 하늘이 짙은 남빛으로 선명하게 그려냈다.(p76)



설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치유가 된다. 제목의 끌림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언젠가 꼭 읽어야지 생각했다. 그냥 한 장씩 넘기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이야기를 읽는 눈과 문장을 찾는 눈이 두 번씩 읽게 만들었다. 시마무라는 두 번째 설국행 기차에 올라탔다. 199일 만에 다시 그녀를 만나러 가고 있다. 왼손 검지손가락을 보며 고마코를 떠올렸다. 그 손가락 끝을 차창에 긋자 그녀의 눈이 또렷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눈은 건너편 요코의 눈이 비친 것뿐이었다. 어느 계절에 안 끌릴 수가 있을까? 시마무라는 요코에게도 끌린다. 

이 손가락만이 지금 만나러 가는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군(p10)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의 지명을 넣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자신과 독자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았고 지명이 있으면 자신이 정확히 묘사해야 될 것 같아 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만으로도 작가에 대해 조금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독 지명에 약해서기도 하고 정확한 묘사 따윈 자신도 싫다는 그의 분명한? 이유가 참 마음에 들었다. 작중 화자 시마무라는 서양무용의 인쇄물만으로 제멋대로 공상한 후 글을 써 기고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 책은 그의 감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시선이 머문 풍경은 거짓말같이 아름다웠다. 색의 번짐을 말로 표현하는 게 특히 좋았다. 터널을 빠져나오며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처럼...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 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 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머언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p40)



시마무라는 그녀들을 오래도록 훔쳐보는 남자다. 얼마나 세세하게 뜯어보는지 모른다. 요코의 눈과 불빛이 겹쳐진 순간을 보고 야광충이라하고 고마코를 투명한 육체 속에 갇힌 누에라고도 표현한다. 두 여인은 나름 사연이 있었다. 요코와 함께 기차를 탄 한 남자와 관계가 있다. 요코는 병이 든 그 남자의 새 애인이면서 병간호를 하고 있고 고마코는 항구에서 돌아온 그 남자 유키오와 거의 약혼한 사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마코는 일본 무용 선생의 병든 아들의 요양을 돕기 위해 게이샤로 나섰다. 그런 그녀의 자잘한 일을 요코가 돕는다. 요코는 먼 등불처럼 차가운 정적인 미를 고마코는 붉은 뺨이 떠오르는 동적인 미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겐 결코 헛수고일 리가 없다는 것을 그가 알면서도 아예 헛수고라고 못 박아 버리자, 뭔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p39)



게이샤-술자리 시중 손님 주문에 따라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돋우는 여자- , 고다쓰-이불 속에 넣는 화로- , 샤미센-세 개의 줄이 있는 일본의 전통 현악기- , 오비-기모노 위에 매는 허리띠-, 가부키-일본의 전통극-, 유카타-여름철이나 목욕을 한 후에 입는 홑옷- 등 일본에 대해 아예 모르지 않아서 이 단어들 중 샤미센 정도만 이름을 몰랐을 뿐 알고 있다. 일본의 아름다움을 모르지 않는다. 1930년대 세계공항은 일본에도 타격을 주었고 도시에서 시골로 귀향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마코가 여기에 해당했다. 일본 무용으로 성공하려 했으나 시골에서 게이샤로 살고 있다. 풍경 속에 퇴색되는 않은 일본 전통문화를 볼 수 있었다. 사실 그쯤의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불편한 마음을 지을 수가 없다. 작품은 작품으로만 보아야 옳지만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마냥 즐겁게 샤미센 연주를 하는 고마코를 그렸다.      

                                                             



"뭐야, 이건, 짜증 나게. 아, 나른해" 이 따윈 팔꿈치를 세게 덥석 물었다.

"전혀 아까운 건 아녜요. 하지만 그런 여자는 아냐. 전 그런 여자가 아니란 말예요."

- 고마코 -                                              



그가 처음 이 고장에 등산을 위해 오게 되어 19살 고마코를 만났다. 산뜻하게 사귀고 싶어서 요구하지 않겠다고도 얘기하고 남자의 뻔뻔스러움을 드러내어 다른 게이샤를 불러달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내와 좋은 말동무도 되고 춤도 배워 여자들끼리의 우정도 생각하지만 스스로가 그 정도가 넘어섰다고 느낀다. 이들의 관계는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건 나인지도 모르겠다. 고마코는 문학, 무용, 영화, 연극 등 도회적인 것을 동경해 유쾌하게도 그와 이야기하지만 이미 깨끗이 체념한 무심한 꿈이었다. 그녀는 일기를 쓰고 있다. 그는 그런 그녀가 고독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일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죠.(중략) 묵은 일기를 읽는 건 즐거워요. 뭐든 감추지 않고 솔직히 쓰니까 혼자 읽어도 창피해요.(p37)  
당신이 도쿄로 팔려갈 때 배웅해 준 오직 한 사람 아냐? 가장 오래된 일기에 맨 먼저 써놓은 그 사람의 마지막을 배웅하지 않는 법이 어디 있나? 그 사람 목숨의 맨 마지막 장에 당신을 쓰러가는 거야(p74)



이 눈의 고장엔 보통이 일고여덟 자-1자(尺)가 30cmm- 정도 많을 때는 열두세 자 넘게 눈이 쌓인다. 눈이 좀 녹더라도 이틀이면 여섯 자는 쌓이는 곳..   '그정도로 쌓이나' 라고 무심하게 묻는 시마무라의 말투는 매력이 없지 않아 있다. 물을 땐 꼭 눈이 아니라 다른 것이 쌓이는지도 알아보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만남은 그저 우연히 만나 헤어졌을 뿐인데 그 헤어짐을 실감한다. 지지미-바탕에 잔주름이 생기도록 짠 옷감-를 음력 10월부터 실을 잣기 시작해서 이듬해 2월 중순에 천 바래기를 끝내는 작업이다. 눈에 갇혀 마땅히 할 일도 없는 기간동안 하는 일이다. 사마무라는 지지미 산지에 가 볼 생각을 한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고마코가 간절히 다가오면 올수록 시마무라는 자신이 과연 살아 있기나 한 건가 하는 가책이 깊어졌다. 이를테면 자신의 쓸쓸함을 지켜보며 그저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뿐이다.(p133)



 살아가려는 생명력을 지닌 서로 다른 두 여인을 먼발치에서 안타깝게 주시한다. 봄, 여름, 가을 그렇게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런 계절을.... 온갖 곤충이 날뛰는 그 열정적인 계절을 보며 헛수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계절이 바뀌듯 자연도 스러지고마는 조용한 죽음과 순수를 들여다보는 남자다. 자신의 쓸쓸한 공허, 허무한 애수를 확인한다. 작가는 실제 니카타현 에치고의 유타와 온천에 3년간 머물렀고 <설국>을 13년간 집필했다고 한다. 그런 계절 그런 시간을 풍경을 글로 옮긴 시간이었다. 몽환적이고 슬펐다. 인간의 생명, 자연의 것, 먼 세계를 동경하지 않았을까....

시마무라는 그쪽을 보고 움찔 목을 움츠렸다. 거울 속 새하얗게 반짝이는 것은 눈雪이다. (p44)

                                   


                                                                                                                                

눈 내릴 징조다. 멀고 가까운 높은 산들이 하얗게 변한다. 이를 <산돌림>이라 한다. 또 바다가 있는 곳은 바다가 울리고, 산 깊은 곳은 산이 울린다. 먼 천둥 같다. 이를 <몸울림>이라 한다.(p137)

눈이 시려서 눈물이 나요.(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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