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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20. 2017

지금 벌어지는 것이 희극이라면  함께 연기해주리라

프란츠 카프카 <소송>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순간 모든 것이 끝장난다.


K는 엄연히 법치국가에 살고 있다. 어디든지 평온이 지배하고, 모든 법률이 엄존하는 상황이다.  당신은 K, 요제프 K, 최고의 하숙인 K, K 부장(은행 부행장 아래 서열 3위)이다. 죄 없는 요제프 K, 심문 받는 대신 그들이 모인 집회에 출두하여 모욕을 당하는 것이다. 감시인, 감독관, 예심판사, 상급 판사, 최상급의 판사, 정리, 서기 ,경찰관과 보조인력을 거느린 조직. 이 거대한 조직의 의미는 무엇일까?

조용히 있을수록 결과는 더 좋을 거라는 K의 태도는 항상 매사를 편하게 생각했다. 최악의 일도 닥쳐온 후에야 믿으며, 사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도 미리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는 경험에서 뭔가를 배우는 쪽은 아니어서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했다가 곤욕을 치뤘다. 그는 사람이 30년 정도 세상을 살다보면, 놀라운 일에 단련이 되어 그리 심각해지지 않는다고 여겼다.

K는 그들의 생각 속으로 몰래 파고들어가 그들의 생각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돌려놓거나 ,아니면 차라리 그들의 생각에 익숙해 지고 싶었다. 자살의 가능성? 사태 전체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 최상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칫 저들에게 붙잡혀 꼼짝 못하게 돼버릴지도 모른다. 일단 굴복을 당하게 되면 그래도 아직은 저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일의 순리를 따라 안전한 해결책 선택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당신은 체포되었을 뿐이오. 그게 전부요.
나는 당신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고,
또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하며, 물론 일시적이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이제 헤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이 체포된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장에 나가 일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습니다.
당신 일상생활도 방해받지 않을 겁니다.


애당초 진 것이나 다름없는 소송은 갑자기 나타나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염치도 없고 배려심도 없는 구경꾼들은 특유의 호기심을 보이며 계속해서 모든 것을 지켜볼 테세다. 건이 잘 해결되고 나면 이전으로 복귀될까? 일정기간이 지나면 해당 소송이 끝나든 말든 모든 것이 처분될테다. K의 유일한 기회는 결백을 주장하는 것일까 자백하는 것일까?

K에 비해서 자유로운 몸인 감시인은 그와 아무 관계도 없는 말단 직원이며, 감독관은 체포사실을 알리는 한심한 의무를 가졌을 뿐이다. 그들이 고용한 가장 비인간적인 직책을 가진 이는 태형리(감시인 처벌자)다. 죄가 있는 건 조직 자체이고, 죄가 있는 사람들은 고위 관리들이다.  옆 방을 거쳐 다음 방, 문은 이미 양쪽 다 열려 있었다. 모두가 가담하고 있는 '무의미한 일'의 규모가 너무 방대하다. 한순간 K는 그들 모두를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변호사와 다름없는 K였다.

율리우스 거리 초입에 잠시 들어서서 보니,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거의 똑같은 형태의 건물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회색의 고층 임대주택들이었다. 사람들은 골목 건너편의 이웃들과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이렇게 주고받는 중에 K의 머리 바로 위에서 큰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골목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상자 위에 한 남자가 맨발로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연약해 보이는 한 소녀가 잠옷을 입고 펌프 앞에 서서 물통에 물이 쏟아져 내리는 동안 K를 쳐다 보았다.


율리우스년은 시간의 단위로, 365.25일(31,557,600초)이다.
율리우스년은 천문학에서 주로 천체의 공전 주기를 나타낼 때 쓰인다.
1광년은 진공중에서 빛이 1율리우스년동안 간 거리이다.
100율리우스년을 1율리우스세기,
1000율리우스년을 1율리우스밀레니엄
또는 1율리우스천년기라고 한다.



<사인Sin과 다면체와 별과 패턴>

K는 계속 창가에 있었다.안마당은 조그만 사각형 모양이었다.안마당을 돌아가면서 사무실들이 들어서 있는데, 창문들은 이제 모두 컴컴했고 맨 위층의 창문들만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K는 애써 컴컴한 마당 한쪽 구석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는데, 거기에는 손수레 몇 대가 서로 맞물린채 모여 있었다.

K의 창가, 마당 한쪽 구석 손수레 몇 대, 또다른 건물 맨 위층 달빛받아 빛나는 창은 삼각형 모양의 단면을 그린다.두 개의 쇼윈도 사이에 난 비어 있는 벽의 일부처럼 느낀다.

커다란 창문 두개를 통해 들어온 달빛이 바닥에 있는 작고 네모난 두 개의 면을 비추고 있었는데, 방 안에는 묵직하고 오래된 가구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들이 내려다 본 그 자리는 K가 욕망을 품은 레니와 함께 누워 있던 바로 그 자리인 것이다.


<불과 글>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것'은 이쪽과 저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텅 빈 공간에 위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읽기가 불가능한 지점'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그 언어 속에 거주하면서 그 언어를 끊임없이 다루고 다스리는 무언가와 같다.



우리 모두 구해줄 수 없다면 적어도 나만이라도...



K의 예측할 수 없는 소송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소송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불가능을 말해주었다. 이 거대한 조직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사소한 장애는 다른 곳에서 손쉽게 보완하여 이전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전보다 더 단호하고, 더 주의 깊고, 더 엄격하고, 더 악의적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들은 희망의 덫으로 K를 기만하고 모호한 위협으로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법 앞에서 순종적이길 바랐다.

K는 처음에는 뷔르스트너 양, 그다음은 법원 정리의 아내, 변호사를 시중드는 자그마한 아가씨 레니를 만난다. 그녀들을 따라다니는 인간들. 그녀들은 감시당하고 모욕당한다. 욕망을 품은 그녀들은 K가 유일한 보금자리이다. 열쇠 들고 K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것은 누구일까? 큰소망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것은 누구일까? K의 소송을 방해해준 유일한 존재는 누구일까? 어떤식으로든 자신을 도와주려했던 이들은 누구일까?

K에게 남은 희망은 무엇일까? 자금은 고갈되고,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에 거의 힘을 쏟지 못했다. 그에게는 세 가지 종류의 석방 가능성이 있다. 1) 실질적인 무죄판결, 2) 외견상의 무죄 판결, 3) 판결 지연 이다. 판사들은 이미 이런 체포를 예상했다. 체포는 이어지고 계속 그런식이다. 인위적인 작은 범위 내에서 계속 맴도는 형식이다. 문제의 핵심은 유,무죄 판결이다. K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다.



출구가 어디죠?
여기가 출구라고 수없이 말해줘도 꼼짝도 하지 않더니..



그들은 어둑어둑한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 깨닫지 못하고 무지하면서 그토록 교활하고 대담한 자 누구인가.  K가 손에 쥐고 있던 연필을 빼앗아 청원서를 쓰려고 했던 그 메모장에 그림을 그리고, 그들은 '그것'의 말을 끈질기게 가로막으면서 모든 말을 간단히 요약해 알려주었다. 손에서 사전을 빼앗아 방해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법의 문에서 꺼질 줄 모르고 흘러나오는 광채를 알아볼 뿐이다.

끊임없이 입술을 움직여 '그것'은 K의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더니 소리 내어 웃고는, 누군가를 언급하며 '일찍 얼어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아보고 싶은 유혹, 샘물이 솟아나듯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알아듣는데.. 입술이 가려져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그것은 한번은 팔을 들어 올리고 손을 가볍게 내흔들면서 무언가를 묘사하려 하기도 했다. '그것'은 말을 계속 하면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이 모든 것이 K를 중심축으로 해서 돌아간다. 정작 K는 청원서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시간이 별로 없다. K의 동의를 전제로 한 것, 결정권은 오직 K에게 있다. 좌석과 출구 사이에 있는 빈 공간을 향해 다가간다.



출생증명서를 들고 방 한가운데 서서
계속 문 쪽을 바라보았지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카프카의 세상>
자유는 무한하지만 그만큼 무력하다. 사생활을 보호해 주는 비밀 따위는 없고 우리는 더 이상 비밀 요구조차 않는다. 사생활은 더 이상 사적이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 대 사람의 대립이 아니라 사람 대 행정으로써 대립된다. 그것은 인간의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다.  소송은 길어지고 삶은 갑작스레 끝이 난다. 자신의 의지 없이 무관하게 모험에 이르렀다. 행정의 실수, 기계의 오류, 예측 불가의 결과뿐이다. -밀란 쿤데라 <커튼> 중에서 -

카프카의 세계에서는 독창성이 없어진 관료체제, 기술, 역사 같은 도구에 불과한 세계를 반시적인 세계로 개조했다. 개인의 자유를 위한 자리이다. 잠깐 열리는 창문, 금방 다시 닫혀 버리는 창문들이 있을 뿐이다. 그 창을 통해 어떤 빛, 바깥의 세계, 하나의 가능성, 한 가닥 은빛을 보내는 시詩가 있다. - 밀란 쿤데라의 <배신당한 유언들> -

카프카는 예언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저 뒤쪽 어디에"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봄(見)이 미리 봄이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 했다. 그에게는 사회 체제의 가면을 벗기고자 하는 의도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실제 사생활을 통해 알 수 있게 된 메커니즘을 조명했던 것이고, 훗날 역사의 흐름에 의해 이 메커니즘이 커다란 무대 위에 올려지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

카프카 소설은 시적이고 자유로운 모든 상상력에 열려있다. 쿤데라는 그의 한 문장이 환상으로 빛나고 놀랍다며 감탄스러워한다. 그는 카프카의 '소설이라는 시'가 서정성과 관계있고, 작가의 고해며, 작가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인다고 느낀다. 그 마술적인 세계는 모든 현실적인 동시에 비개연적이고 작가의 주관적 세계다. 소설의 방향은 장면이 기본 구성요소를 가지며 자유로운 환상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생각>
카프카.... 이것이 카프카라면, 카프카 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150페이지까지 읽는데 계속 멈춰야만 했어요.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나 있을까? 의문스러웠고, 읽기를 포기하고 싶다고도 생각했어요. 어디에서도 힌트를 찾기 어려웠고, 답답했어요. 이런식의 독서는 옳지 않아요. 이 책을 설명하기란 쉬울 수도 있을테죠. 도서관에서 책의 제목을 읽어가면서 걸어요. 제 눈에 들어온 <사인과 다면체와 별과 패턴>이란 책 앞에서 멈췄습니다. 이미 <불과 글>이란 책은 왼손에 들려진 상태였어요. 제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었어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밀양>의 엔딩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데 저는 그것을 말로 옮겨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제가 가진 말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조르주 아감벤이 쓴 <불과 글>이란 책이 저에게 도움을 줬어요. 읽고 싶은 페이지를 우연히 펼쳤는데 제가 찾던 메시지 같았어요. 억지로 끼워맞춘 의미일까요? 3월 16일 카프카를 다시 읽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부터 모든 것이 카프카로 연결되어있었어요. 모든 것이 카프카를 위한 것 같이...

훌리아 푸드룸를 하면서 요리사의 맛 감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어요. 제가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의 느낌은 백지와 같았어요. 레시피를 찾아서 따라하기 밖에 되지 않았어요. 요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요리사의 입장을 생각했습니다. '볶음인데 이것과 이것의 양념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요리사는 맛의 설계사입니다. 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기억해두고 있어요. 다음은 원하는 맛을 창조하기 위한 설계를 시작합니다. 조리방법, 맛을 극대화하기 위한 식재료 혼합, 양념 등이 순차적으로 나열되고 합쳐집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모두가 예술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카프카는 소설이라는 시를 창조했습니다. 그가 뿌린 별빛을 줍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는 낙담스럽지만 그래도 거기에서 넘쳐흐르는 별빛이 있었어요.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내가 있던 방을 다시 읽어봤어요. 카프카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는 황야의 풍경 그림을 책상 맨 아래 서랍에 넣은 후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카프카의 <소송> 주인공 요제프K
영문도 모른 채 체포당한다.
분별 있는 단 하나의 태도는 상황에 적응하는 것.
요제프 K는 결국 개죽음을 당할 터인데.
마치 그는 죽어도 모멸감은 살아남듯이...

더 이상 이름을 가질 권리가 없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 누구인지 모른다.
의식이 방황하는 그런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수만 명이 강제수용소에 수감된다.
그곳, 그들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

- 나의 삶인가? 아니면 연극인가? -







<다시 생각>
이 문을 열고 들어닥칠 누군가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 무어라 말을 이어야 할까요? 저는 답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별 수 없던걸요?'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K의 소송을 방해하기 위해서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카프카의 <소송> 170페이지 쯤에서 조르조 아감벤이 쓴 <불과 글>이란 책을 동시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글이 많아서요. 카프카의 글을 읽으면서 제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을 아감벤이 납득되는 글로 옮겨적은 듯 했습니다.



불과 글   저자 조르조 아감벤


죄와 벌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와 일치한다.

인간이 감수하는 벌뿐만 아니라 4만 년 전부터(즉 인간이 말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인간을 상대로 끊임없이 진행되어온 재판 또한 사실은 말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을 취한다'는 것 스스로와 사물들의 이름을 밝힌다는 것은 스스로와 사물들을 알고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죄와 벌의 구속력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차원에서, 지상의 모든 법률 조항들 가운데 최후의 법령은 이런 식으로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언어가 곧 형벌이다.
언어 속으로 모든 것들이 돌아가야 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죄의 분량에 따라 쇠해야 한다"

재판이 하나의 '신비'라면, 이 위로받을 수 없는 신비는 다름 아닌 이들의 제스처와 행위와 말들의 복잡한 그물망 안으로 죄와 벌을 모두 끌어당긴다.

구원도 속죄도 없는 신비,
그 안에서 죄와 벌은 인간의 존재 속에 고스란히 체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신비는 반대로 인간에게 어떤 초원적인 지평이나 이해 가능한 어떤 의미도 제시하거나 부여하지 못한다. 신비는 포착 불가능한 제스처와 고유의 과정과 비밀스러운 공식으로 존재할 뿐이지만 이제는 인간의 삶과 너무 가깝게 밀착되어 있어서 삶 자체와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과적으로 초월적인 것에 대한 어떤 어렴풋한 인식도 어떤 종류의 정의 실현도 허락하지 않는다.

재판은 항상 진행중
인간이 인간적으로 변한 뒤에 비인간적으로 남는 일을, 인간적인 차원에 들어섰다가 벗어나는 일을 결코 그만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사실상 인간적이면서도 아직은 인간적이지 못한 존재의 신비, 동물적인 또는 더 이상 동물적이지 않은 존재로서의 신비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한, 그가 판사이면서 동시에 죄수로 등장하는 재판의 판결문은 결국 증거가 충분히 명백하지 못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할 것이다.

<불과 글> p26-35 중에서...



한 해에 카프카의 책은 한 권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 한 권을 1년 내도록 되새김질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떤 몇 몇 장면이 무척 실제 같았어요. 푹 빠져 읽기도 했어요. 그 자리에 제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 마저도 카프카의 예상 안에 들어있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읽는 것도 숨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디까지나 저의 상상입니다만 그랬어요. 100페이지에 사활을 거는 편인데 150페이지가 넘도록 저는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마지막까지 모를거란 예감이 들어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이 리뷰는 저의 탐사일지입니다. 제가 어떻게 읽어나갔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리뷰를 쓰면서 2번의 마무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울렁거림이 좋았어요. 문맥이 뒤섞이면서 결국 찾았다는 느낌이 좋았어요. 다시 그렇게 읽으라면 읽을 수 있을지 이제는 제 머리를 믿을 수 없지만요. 그때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신비로운 경험이라고 저는 느꼈던것 같아요. 그래서 카프카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놀랍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러니깐 변호사, 제조업자, 화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139페이지서부터 샤프를 들고 밑줄을 긋기 시작했어요. 책에 밑줄긋기를 즐겨하지 않는데 이제는 마음가는데로 긋고보자고 생각했어요. 접어둔 페이지가 늘어서 매  페이지를 다시 읽는데 시간이 너무 들었거든요. 어서 읽어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한 선택이었어요. 그런데 더이상 밑줄의 의미가 없이 그냥 읽게 되었어요. 읽으면서 여기 마무리를 짓는 일만 남았어요.





<마무리>
카프카의 <소송>은 그의 미완성 작품입니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변신>을 읽고 그의 장편소설을 처음 읽게 되었어요. 20세기는 위대한 작가를 많이 배출시켰습니다. 이번 세기의 위대한 작가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카프카는 20세기의 위대한 소설가 중 한사람이 분명해 보입니다. 소설을 입체적으로 그린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카프카의 장편소설은 <실종자> <소송> <성> 고독의 3부작이 있습니다. 올해는 <소송> 한편으로 끝내고 싶어졌어요. <리스본행 야간열차> 1권을 그렇게 1년 동안 음미했던것 같아요. 어서 마무리를 짓고 싶네요..

<소송> 해설편 참고 : 카프카의 친구 브로트는 카프카의 유언을 저버리고 세상에 그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 첫 작품이 <소송>이었습니다. 출간되자마자 독자와 비평가들을 사로잡고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비록 미완성 작품이기는 하지만 가장 완결된 느낌이라 평합니다. 이유는 카프카가 '마지막 장'을 미리 써두었기 때문인데요. 그는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미리 써두고, 중간 부분은 느슨한 연관 속에 비연속적으로 써나가는 집필방식을 취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카프카는 1914년 7월 펠리체와 파혼을 하고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 상태에서 1914년 8월 ~ 1915년 1월 까지 <소송>을 집필하다 중단합니다. 그는 연거푸 펠리체와 약혼하고 파혼하기에 이르는데 아마도 창작활동이 위협이라 여겼던듯합니다. 그에게 '또 다른 소송'이나 마찮가지였을까요? 1914년 8월은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동맹국 독일(빌헬름 2세 황제)과 오스트리아(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는 전쟁을 일으킵니다. 카프카는 작품에서 우회적으로 '빌렘'과 '프란츠'란 이름을 감시인으로 등장시킵니다.

<소송>은 보편적인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은유 같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제프 K는 왜 소송을 당했는지 모른채 처벌과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의식하게 됩니다. 카프카는 '존재로서 개인'은 하늘 법정에서 죽음으로써만 속죄가 가능하다는 의미를 내세우는 유대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많은 해석자들이 요제프 K의 실질적인 죄를 찾습니다. 그의 죄는 무엇이었을까요?

해설편은 많은 해석자들의 발자국 같았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해석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카프카의 행성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파헤치고 싶은 욕망이었을까요? 저도 거기에 뛰어들어 매달리기까지 했으니... 다를바가 없겠죠. 모두가 달에 첫 발을 딛은 암스트롱이 되고자하지만, 암스트롱이 정말 달에 첫 발을 딛였을까요? 거기엔 발자국 조차 남지 않았을것만 같습니다.




<다시 마무리>

카프카의 다정함이 저를 만족할 줄 모르는 끈질긴 사람이 되도록 했습니다. 해석들은 종종 글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 전부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점 너무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음을.. 글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말하여 주는 듯했습니다. <종말>로 가는 길이 더디어 어서 읽어내고 싶었습니다.

K의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청원서를 쓰고자 애를 썼지만, 완성시키지 못합니다. 저항하는 것은 소용없다는 사실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에 집중합니다. 이성을 끝까지 유지하며 스스로에게 꼭 해야할 말을 남깁니다. 자신의 조그만 힘마저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는 자가 이 마지막 과오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말을 남깁니다....



달빛에 반짝이며 출렁거리는 강물이
작은 섬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갈라져 흘렀는데,
섬 위에는 교목과 관목의 낙엽더미가 눌러 다져지는 것처럼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낙엽더미 아래에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안락한 벤치가 있는 자갈길이 나 있는데,
K는 여름이면 여러 차례 그 벤치에 와서
몸을 쭉 펴고 앉아 쉬곤 했다.



훌리아 문학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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