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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Jan 03. 2023

프란츠 카프카 <실종자>

기묘한울림은 결코 우리가 정지시킬수없는 거대한 순환의 한 조그마한 부분

열일곱 살의 카알 로스만은 하녀의 유혹에 빠져 그녀에게 아이를 갖게 했다.


프란츠 카프카 <실종자>의 첫 문장이다. 카알 로스만의 가난한 양친은 그를 미국으로 보냈다. 뉴욕항에 도착한 그는  선상에서 칼을 방금 치켜든 것처럼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았다. 여신상 주위에는 바람이 한가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카알은 내릴 준비를 마쳤으나 우산을 선실 아래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해 중에 알게 된 젊은 남자에게 트렁크를 맡기고 자리를 급히 떠나 선실 아래로 내려갔다. 지름길은 제일 먼저 닫혀버려 다른 길로  헤매게 되었다.


프란츠 카프카 <실종자> 이야기의 전부가 위의 문단에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름 길였던 전망 좋은 미래는 제일 먼저 닫혀버리고 카알을 하찮은 일에 메이게 된다.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저질러 살던 곳에서 떠나와 불안과 초조한 상황 속에서 외삼촌을 만나게 되고 일이 순조롭게 풀려가는 듯도 보였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푸른기가 도는 검은 암석덩이들이 뾰족한 쐐기 모양을 하고 기차 쪽으로 다가왔다. 찢어진 것같이 보이는 어둡고 좁은 계곡들이 펼쳐졌다. 넓은 계곡 물이 구릉에서 큰 파도가 되어 밀려오면서 수천 개의 작은 파도 거품을 일으키며 기차가 지나가는 다리 아래로 쏟아졌다. 계곡물의 찬 기운 때문에 얼굴이 덜덜 떨릴 정도로 계곡이 가까이 있었다.'라고 끝마치고 있는데 카알이 지금 처한 상황과 그 심정이라고 느껴졌다.


작가로서의 카프카는 외부적으로 체코에서 독일어를 모국어로 삼는 외국인에 불과했고, 다시 독일에서의 삶은 유대인으로 소외당했으며, 내부적으로는 아버지에 기대에 미치지 못한 한심한 자식으로 치부받아왔다. 법학과를 나와서 체코의 노동자 상해 보험회사에 근무했지만 문학에 뜻을 두고 있어 일과 글쓰기를 병행했다. 3번의 약혼과 파혼은 독신주의자를 선언하며 글쓰기에 몰두하며 종지부를 짓게 된다. 카프카로서는 사랑하는 연인과 이루지 못한 아픔이 있지만 글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으려 했다.




프란츠 카프카 아메리카 는 실종자로 책명이 바뀜




세 개의 창문 너머로 파도치는 바다를 보았고, 경쾌하게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니 마치 기나긴 닷새 동안 줄곧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서로 엇갈려 지나가는 큰 배들은 육중한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중략) 이 모든 광경의 뒷면에는 뉴욕이 있으며, 마천루의 수십만 개 창문들이 카알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방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카알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실종자> p18




카프카는 <실종자>의 원고를 1911년에 시작하여 그가 30세 때인 1914년 10월에 끝냈다.  그의 사후 친구 막스 브로트에 의해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놓는다. 반세기 동안 <아메리카>라는 소설로 읽혀왔지만 1983년 독일의 피셔출판사에서 <실종자> 책명으로 출간되었는데 1914년 12월 31일 카프카 일기에서 이 작품을 '실종자'로 기록하고 있으며, 막스 브로트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실종자>는 작품 <성> <소송>과 더불어 카프카의 '고독의 3부작'이라 불릴 정도로 인간의 고립과 소외를 다루고 있다. <실종자>에서는 부모로부터 미지의 세계 아메리카로 추방당하고 친지와 공동 사회로 부터 계속 추방당한 나머지 인간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 존재가 실종된 카알 로스만이 주인공이다. <소송>에서는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재판관을 찾아 헤매다 결국 개죽음당하는 요세프 K, 마지막 장편소설 <성>에서는 '城'에 측량사로 초청받아왔지만 성과 성사람들로부터 이방인으로 차단되었다가 결국 생을 마친 K가 주인공이었다.


<실종자>를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든 생각은 실종자는 바로 '나'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100페이지까지 읽기가 더디어졌었는데 카알이 우연히 놓아둔 우산을 찾아 선실 아래로 가면서 트렁크를 맡긴다. 결국 애지중지했던 트렁크는 배에 두고 하선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도록 그 트렁크를 찾는지, 다시 찾으러 가는지 궁금해했었다. 트렁크가 카프카의 자아였을까 아니면 증명할 수 있는 어떤 증명서에 불과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읽는 과정에서 그 트렁크의 행방이 쓸쓸했고, 또 카알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짐 없이 열차를 탑승했으며 짐이라고는 유모차만이 유일했다는 사실이다.


카프카는 끊임없이 노예 1, 2, 3, 노예 1,2,3으로 계급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밀접하게 다가가 끌어안고, 뒹굴고, 떠나기 위해 애쓰고, 설득하고, 위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글쓰기에 있어서도 어떠한 큰 보상도 명예가 따르는 것이 아닐지라도 기꺼이 뛰어들어 자신의 어떤 증명도 이름도 없이 미래의 열차에 몸을 싣는다는 점이 카프카 답다는 생각을 했다.



뉴욕항




<실종자>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면, 카알은 우산도 찾지 못하고 마침내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는 지점이다.  그는 트렁크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알은 이 배의 기관실에서 일하는 화부를 만나 일등 기관사 루마니아인 슈발의 부당한 대우에 한탄하기 시작하고 카알은 선장을 만나 당신의 권리를 요구해보라 하지만 그를 바보취급하기 시작한다.


청소 중인  일, 이등 선실과 삼등 선실이 나뉘는 칸막이들이 제거되고, 카알은 와본 적이 없는 사치스러운 작은 문으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사복을 입은 남자, 항만청 직원들, 선장, 항해사, 경리주임, 사환 등이 있었다. 카알은 화부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경리주임의 책상으로 돌진해 거침없이 고발했고, 그 방에 있던 선장으로 보이는 자가 화부를 큰 소리로 불렀다. 카알은 경리주임에게서 화부가 직속상관 슈발의 불만과 터무니없는 요구 들로 이미 급료지불실이나 경리실 안에서 몇 번이나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순간에 자신은 처음 보는 애송이가 되었고, 화부는 뻔뻔스러운 불평분자가 되어버렸다.


카알이 볼 때 화부는 그가 할 수 있는 말을 모두 다 터뜨렸지만 전혀 인정받지 못했고, 그의 말투를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생각했다. 더 간단명료하게 불평불만의 사항을 정리해 중요한 순서로 차례차례 명쾌하게 설명하길 바랐다. 방안의 그들은 자신들의 중요한 업무를 방해한 쓸데없는 소동 때문에 격분했고, 폭발할 기세였다. 카알은 화부가 이 방안의 일곱 사람 전부를 제압하거나 반감을 품은 자들로 가득한 이 배 전체에 폭동이 일어나는 생각을 하면서 위안을 얻으려 했다.


카알과 화부는 면밀한 전투 계획 준비 없이 무모하게 다짜고짜  들어온 것에 불과했다. 반면에 슈발은 기계를 만지는 이 답지 않게 낡은 예복에 균형이 잘 잡힌 몸매를 하고선 거리낌 없고 늠름한 모습으로 화부의 임금지급표와 작업보고서를 끼고서 나타나 그 방안의 사람들을 대체로 파악해 냈다. 방 안의 그들은 슈발에게 우호적이었고, 화부의 반항적인 성격을 고치지 못한 게 슈발이 비난당할 일이라면 일이었다. 그는 사나이답고 명쾌하게 증인과 증거를 들고서 화부의 고발에 반박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것은 속임수, 모든 것은 명백했다.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만 해요.
 "예"와 "아니요"를 분명히 말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진실을 전혀 알지 못해요.
내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 카알이 화부에게 남기는 말 -




대나무를 든 남자는 상원 의원인 에트바르트 야콥으로 카얄의 외삼촌이었다. 카알의 인생항로는 전혀 다른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카알은 외삼촌이 조카의 사정_요하나 브루머라는 서른다섯 살 먹은 하녀에게 유혹당한 것_을 그들에게 말하며 친인척인 것을 밝힐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야콥에게는 카알의 부모가 보낸 구걸 편지와 그간 사정이 적힌 하녀의 편지가 손에 들려있었다. 카알은 자연스럽게 잊혔던 그 하녀를 회상했다. 상원 의원인 야콥의 조카인 자신을 비웃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화부의 일을 정의롭게 처리할 수는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또 밤의 꿈속에서도 이 거리는 항상 복잡한 교통으로 혼잡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리는 일그러진 사람들의 모습과 각종 차량 지붕들의 혼합물이었는데,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점에서부터 흩어졌다. 여기에서 소음과 먼지와 악취의 복합적이고 요란한 새로운 혼합물이 올라왔다. 이 모든 것을 한줄기 강력한 햇빛이 포착하고 사로잡았다. 그 햇빛은 수많은 대상들에 의한 줄곧 흩어져서 사라지고, 다시금 부지런히 다가오기도 했다. 현혹당한 눈엔 그 햇빛이 물체인 것처럼, 즉 마치 모든 것을 덮고 있는 유리판이 이 거리 위에서 금방이라도 되풀이하여 산산이 부서지는 것처럼 보였다. p46













그에게 비치는 만월의 청명한 밤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p68






카알에게 있어서 화부(그밖에도 클라라, 마크, 레널, 로빈슨, 대학생)란, 트렁크에서 멀어지게 하고, 계속해서 현실을 잊게 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갈망하게 하는 존재였다. 카알에게는 트렁크를 가져다주는 이와 그 트렁크와 멀어지게 하는 존재들 사이에 놓여 있다. 계급 중에서도 1등급인 사람들(해운의 일등 기관사 슈발, 폴룬더씨, 호텔 여주방장) 또는 가족과 친지(외삼촌)는 자신에게 트렁크를 찾아다 주는 이며, 자신의 증명을 씌우는 사람들이다. 3등급(화부, 클라라, 마크, 엘리베이터 보이, 타이피스트 테레제, 여가수 노예 로빈슨, 대학생)인 사람들은 그런 증명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람 들였다. 그 사이 2등급(그린씨, 마지막에서 한 단계 위급인 수위장과 들라마르쉬)은 1등급과 3등급의 사이를 이간질하며 떼어놓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폭력적인 인물이며, 상급의 인물인 해운의 선장, 호텔의 호텔장, 여가수 등은 진실을 증명하지 못하고 올바르게 구도를 잡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야콥과 카알은 선장의 도움으로 보트를 타고 안전하게 여객선을 떠나게 된다. 외삼촌 집으로 온 카알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빠르게 해나가 갔다. 외삼촌 야콥은 매사 잘 알아보고 관찰할 뿐 지나치게 사로잡히지 않았다. 특히나 이주자는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앞으로의 모든 판단이 혼란 속에 빠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카알이 영어 공부를 마치고, 상업 실무에 충분히 식견을 가지길 원했으며, 자신의 호의에 의지하여 점잖게 밥벌이하길 원했다. 그러려면 학업을 계속해서 대학에 들어가 모든 것들에 균형을 잡아 나가는 것이다.





1930년대 뉴욕 밤거리




자기 소유물이 된 아름다운 악기로 카알은 소음으로 가득한 하늘을 향해 열린 창 앞에서 고향의 옛 군가를 연주했다. 기묘한 울림은 결코 우리가 정지시킬 수 없는 거대한 순환의 한 조그마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카알은 상과 대학의 젊은 교수에게 영어 공부를 받았고, 백만장자의 아들 마크와 승마를 했고, 삼촌이 하는 중개업과 운송업을 하는 사업장을 구경했으며, 삼촌과 거래하는 그린씨와 은행가 폴룬더씨와 식사하며 상업적인 표현을 듣는 유익한 자리가 되어주었다. 폴룬더씨의 별장으로 초대받은 카알은 그의 딸 클라라를 만났다. 그러나 이미 선객으로 그린 씨가 있었고 그들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뉴욕의 독신자인 그린씨는 고의로 클라라의 몸에 손을 대고, 카알을 어린애 취급하며 모욕하고 있었지만 폴룬더씨는 참고 있었다. 카알은 폴룬더씨가 그린씨같은 나쁜 친구들 때문에 나쁜 길로 유혹당했고, 딸인 클라라에 대한 애착으로 타락했을 거라 여겼다. 그들의 사회적 관계는 레슬링 시합 같았고, 클라라 또한 인생의 대부분을 레슬링 기술을 배우는 데 보냈을지도 모른다. 약혼자 마크에게 지도받았을지도 모르고, 카알은 자신이 마크로부터 배운다면 클라라보다 훨씬 더 많은 발전이 있을 거라 여겼다. 그들이 자신에게 비치는 호의와 혐오는 점점 흐릿해졌다. 서먹서먹하고 적의가 느껴지고, 두려워졌다.


카알은 클라라가 위험하고 거역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자신이 떠나는 것도 자신의 방으로 가는 것도 저지당하는 상황이다. 카알은 한바탕 싸우기도 한 클라라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고 싶었다. 카알은 마지막으로 클라라를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고 되돌아갈 시간이 더디게만 느껴져 왔는데 옆 방의 마크까지 만나게 되었다. 폴룬더씨와 만나기로 한 자정이 되자 악수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튀어나갔다. 어둠 속에 벽을 짚고 나갈 때 그린씨가 나타나 삼촌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카알은 트렁크와 우산이 해운의 일등 기관사 슈발의 의해 찾게 된 것을 알게 된다. 외삼촌은 자정이 지나도록 카알이 그곳에 있을 때 이 편지를 전하도록 했고, 그린씨는 카알이 외삼촌에게 가려는 것을 지연시켜 그가 자정이 지나 편지를 받도록 했다.








카알은 하층민인 프랑스인 들라마르쉬와 아일랜드인 로빈슨과 허름한 여인숙에서 만나 함께 기계공 일자리를 찾아 버터포드로 떠나게 되었으나 그들의 최선의 계획은 캘리포니아 금광의 세광소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버터포드로 향하는 동안 외삼촌 야콥의 운송회사 이야기와 마크의 아버지가 뉴욕의 최고의 건설사업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카알은 작은 이득을 위해 두 사내와 헤어지는 것만은 할 수 없어 자신의 양복을 팔아 착복한 것을 추궁하지 않았다. 식사비를 지급하기 위해 비밀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수밖에 없었고, 거의 일 달러에 가까운 금액이 나와 그는 화가 치밀었고, 두 사내는 깜짝 놀랐고, 그 돈을 자기 돈처럼 여겼다.


먹을 것을 구하러 온 호텔에서 여주방장인 중년의 여자가 카알에게 호의를 보였으나 방해만 되는 두 사내를 생각해 한사코 숙박은 거절하고 식품만 챙겨서 나왔다. 그 여인의 염려와도 같이 카알은 두 사내와 언쟁을 벌이게 되었다. 트렁크는 열려있고, 부모님의 사진이 사라져 카알은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로 사진을 돌려준다면 트렁크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비열하게 굴며 카알을 비난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카알은 허탈하게 호텔로 돌아와 여주방장의 권유로 엘리베이터 보이가 된다.


람제스에 위치한 옥시덴탈 호텔은 50명의 하녀가 있고 그중 타이피스트인 테레제는 여주방장의 구술을 듣고 편지를 쓰고, 그녀를 아침 일찍 깨워야 하는 일 등을 했다. 깊은 밤 테레제는 카알을 찾아와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간다. 카알은 미국 뉴욕에서 외삼촌의 영향력에 발끝도 미치지 못하는 호텔 여주방장은 카알에게 독방은 주지 못하고 공동 침실에 배정되어 12시간 교대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한 침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없고 취미로 파이프 담배를 피웠댔다.









공동 침실 상황에 불만을 표시하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첫째로 대체로 모든 엘리베이터 보이가 그것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진지하게 불평을 표시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며, 둘째로 이 공동 침실에서 받는 고통은 엘리베이터 보이로서 자기 임무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며, 그는 여주방장이 주선해준 이 임무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카알은 두 여인에게 도움을 받았고, 그도 그들을 도왔다. 독방을 가진 테레제에게 하루는 그녀의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에게서 상업통신교본을 빌리고, 재고품 목록을 정리해 도와준 보답으로 여주방장에게는 만년필을 빌려와 틈틈이 교본을 읽고 연습문제의 해답을 만년필로 수첩에 적어나갔다. 동료들에게선 계속 영어로 도움을 청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방해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전환시켰다. 엘리베이터 보이는 20세 이상이 되면 다른 직업을 결정해야 했지만 누구도 그런 신경 쓰지 않고 대평 하게 굴었다.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들라마르쉬와 로빈슨이 점차 자신에게 접근해 왔다. 술 취한 로빈슨은 들라마르쉬와 또 다른 엘리베이터 보이 레널이 로빈슨을 시켜 카알을 호텔밖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카알이 몸이 안 좋은 로빈슨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공동숙소에 누이고 오는 잠깐 동안 엘리베이터를 제대로 인계하지 못하고 비우게 되어 큰 사달이 일어난다. 당장 이즈배리 웨이터장은 그를 해고하겠다고 통보하고 페오도르 수위장은 그간 카알이 인사도 안 하고 자리를 비우는 등 제멋대로였다고 고하고, 엘리베이터 보이장 베스는 뒤에서 의미 없이 히죽히죽 웃었다. 그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되려던 여주방장과 테레제만이 울상이 되었다.


공동숙소에서 로빈슨이 난동을 부리게 되면서 카알의 계획은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족족 부당함에 더욱 근접해 갔다. 카알은 결국 자신에게 "선의가 없다면 변호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라고 말했다. 그가 했던 모든 말이 나중에 본뜻과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선으로 보느냐 악으로 보느냐 하는 것도 판단의 방법에 달려 있었다. 여주방장의 호의로 카알을 호텔을 떠날 곳을 마련하게 되었지만 자신이 도둑으로 취급받은 채 떠나보내려 하는 데는 기뻐할 수 없었다.



'호텔의 모든 문들이 내 관할 하에 있고 모든 종업원들은 자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며 수위장은 떠나려는 카알을 붙잡아 세워 설교를 늘어놓고 어떻게 하면 더욱 수치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듯했다.



호텔에서 가장 큰 적으로 간주할만한 사람이 수위장이었다. 수위장의 고압적인 태도에 벗어나기 위해 카알을 호텔밖으로 뛰쳐나왔다. 거기에서 엉망진창이 된 로빈슨을 보게 되고 함께 택시를 타고 급히 떠났고, 틀림없이 사고나 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카알은 들라마르쉬가 있는 곳으로 로빈슨을 데려다주고는 떠나려 했다. 자신의 선의는 연속해서 자신을 깊은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어찌 손을 써볼 겨를 없이 택시기사에게 추가요금을 요구받고 지나가던 경찰관에서 수상한 사람으로 지목당하고 거기다 들라마르쉬는 카알을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둔갑시켜 붙잡아두려고 했다. 호텔로 다시 잡혀가 심문당하지 않기 위해서 카알을 다시 한번 도망치기 시작했다. 곧 끝날 것 같은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카알에게 유리한 점이라고는 오직 가볍게 입은 옷뿐이었다. 그는 알아가듯이 달렸고, 점점 더 심해지는 내리막길을 추락하듯이 내렸다. 카알에게 있어서 달리는 일은 지엽적인 것(부수적인 것)이었다. 그는 여러 가능성들 중에서 선택하기 위해 깊이 생각해야 했고, 항상 새로운 결심을 해야 했다.




카알이 엘리베이터 보이가 된 후 들라마르쉬와 로빈슨은 구걸을 시작했고 이혼하고 돈 많은 여가수 브루넬다의 하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 일이 고되고 아프기 시작은 로빈슨은 카알을 데려와 일을 부릴 목적으로 카알에 접근했었고  이제 거의 성공에 가까워져 왔다.  

"너는 우리 곁에 있게 될 거야." "너는 우리 곁에 머물 거야." 카알은 벗어나기 위해 그들과 싸워야 했다. 그것이 성공할지라도 그걸로 그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가 문제였다. 그는 일종의 구금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기 위해 불빛 쪽으로 가야 했다.


카알은 문이 잠겨있어 발코니로  나가 밖을 내려다보았다. 군중들을 관찰했다. 그는 구금상태에서 풀려나면 무엇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는 옆집의 대학생과 마주치기도 했고 대화하게 된다.

 "당신은 다른 일자리가 있어요?"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여기서 달아날 수 있다면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에겐 어떤 전망도 없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낮에는 판매원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한다고요?" "그러면 언제 잠을 자요?" "공부를 마치면 나는 잠을 잘 거예요. 우선 블랙커피를 마시죠." "언제 공부를 끝마치죠?" "아직 일 년 내지 이 년 더 걸려요. 공부에서 오는 만족은 조금밖에 없어요. 미래의 전망은 더 적어요. 내게 무슨 전망이 있겠어요!"




벌써 밤이 시작되네.
문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발코니로 나가야 했다.












카알을 놀라게 한 것은 그가 수레를 현관으로 밀고 갔을 때 거기에 널려 있는 더러움이었다. 물론 카알도 더러울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좀 더 다가가서 보면 그것은 쉽게 설명될 수 있는 더러움이 아니었다. 현관의 돌바닥은 비로 청소하여 거의 깨끗했고, 벽의 그림은 오래된 것이 아니었고, 인조 야자는 먼지가 조금밖에 쌓여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기름때투성이었고 역겨웠다. 모든 것을 잘못 사용한 것 같았고 어떤 청결함도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카알은 그 어떤 곳에라도 가면 거기에서 무엇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일을 시작하게 되면 그 일이 끝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브루넬다의 이사 편 p298에서



이 책을 2년 몇 개월을 방치하여 두고 드디어 읽어 내렸다. 카프카의 고독의 3부작 장편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단편들을 읽어나갈 생각이다. 가장 유명한 프란츠 카프카 소설 <변신>은 나에게 특히나 인상 깊었다. 단편에서의 즐거움을 상상하고 싶다. 사실 카프카의 감정이 어떠한 것으로 소설 속에 녹아들었나 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는 죽음 이후에 세상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이 없을 테지만 그가 정밀하게 관찰해나갔던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을지 그 가능성은 있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카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과 거의 흡사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자기에게 불리한 장소와 시간에 악습이 통과의례인 것처럼 전수되고 있었다. 카알은 다른 출구로 들키지 않고 달아날 수 있었다. 특별한 명령을 받을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특하기도 하고 답답한 냄새를 맡고 소리 지르려 해도 구금된 상태에서 자신의 희망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었다.


커튼을 걷어내고 지금 내가 위치한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보아야 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는지 모르게 카알이 들라마르쉬와 로빈슨을 대신하고 있고 브루넬다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브루넬다와 같은 상층의 사람들은 커튼을 온몸에 칭칭 감싸고 있어서 애당초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고 생겨나고 자리이동만 있을 뿐이었다. 대학생이 곧 카알이 되어 그를 돕는다는 것이 그다음의 수순이 된다.


카프카의 은유에서 벗어나면 이렇게 지독히 쩔은 소설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약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심신이 고달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어떠한 즐거움을 찾는 수나 있나 싶지만 동지애를 느끼고 다음세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아무것도 진전 없이 어떻게 손 써볼 수 없는 그 더러움에 진저리 칠지라도.. 커튼을 걷고 보면 다가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고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하고는 있다. 그 뒤에 따라오는 찬기운에 몸서리 칠 뿐이지만.


세상이 좋아졌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이 교묘한 형태로 남은 연속성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을 테다. 또다시 전복되고 나서야 정신 차리면 망망대해에 고독하게 혼자만 덩그러니 남을 수도 있을 테니깐 말이다. 카프카는 희망을 보았을까 그 희망을 보고자 했지만 그건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란 걸 안다. 무엇이 잘 못 되었다기보다 인간이 (문명을)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니깐.



p.s 다시 <소송> <성> 리뷰를 다시 돌아보고 왔는데 내 기준에서는 이것은 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이 열리지 않으면 발코니라도 나가 보라 하고, 여전히 문이 닫힌 채에 있다가, 다시 문으로 향해 걸어갔다는 순서가 카프카가 말하고자 한 바가 전부이지 아닐까 자체 결론을 내리고 싶어졌다.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이 거대한 순환을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싶기도 하다.






꿈과 같은 나의 내면의 삶을 서술하는 것이
다른 모든 것을 부차적으로 만들었다.
- 프란츠 카프카 -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1883년 7월 3일 ~1924년 6월 3일)
20세기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프란츠 카프카는 체코가 고향이며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계 상인의 여섯 아이들 중 맏아들로 태어난다. 소년기부터 스피노자, 다윈, 에른스트 헤켈, 니체의 옹호자였으며, 무신론과 사회주의를 신봉한다. 그의 작품의 세계는 아주 기괴하고 수수께끼 같으며,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그의 비평가 친구 막스 브로트를 만나 문학적 편집자적 후견인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그의 사망 후 작품의 공개되기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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