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자유롭고 싶은 사람...
(해가 짧구나, 해가 짧아.)
프란츠 카프카 <성>
밝고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왔다.
그 종소리는 마치 아련히 갈망하던 것을 실현하겠다고 위협하는 듯도 했다.
그 울림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커다란 종소리는 곧 울림을 멈추고서 약하고 단조로운 작은 종소리에 자리를 내주었다.
작은 종소리는 성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을에서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닿을 수 없는 그의 존재,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그의 거처,
아마도 K가 아직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외침에나 중단될 것 같은 그의 침묵,
결코 입증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내리꽂는 듯한 그의 시선,
그가 저 위에서 불가해한 법칙에 따라 그리고 있는,
그래서 K가 있는 낮은 곳에서는 결코 파괴할 수 없고
단지 순간적으로만 볼 수 있는 그의 권역을 떠올려 보았다.
아직 질문이 있어요.
당신은 그 얘기를 알고 싶은가요?
당신은 우리 일에 휘말려 들게 될 거예요.
아무런 죄도 없이.
지금 떠나야 할 시간이 다 되었어요.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아는 건가요?
이제는 정말로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호모 사피엔스가 오늘날의 지위에 오른 이유는 돈이나 국가, 법, 인권과 같은 허구를 신봉하기 때문이다.
돈이나 국가가 허구임을 깨달았을 때 세상을 보는 시각 어떻게 달라지는가?
기업이나 돈과 같은 허구 없이 인간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기업은 직원들과 옳다고 믿는 공통의 이야기가 있어야 존속하고, 돈은 많은 사람이 같은 가치를 믿어야 성립한다. 허구임을 알아도 우리는 그 가치를 끝까지 믿으려 할 것이다. 이것이 허구니 맹신을 멈추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허구에 대한 믿음을 거둔다면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끼리 협력하지 못할 것이다. 허구가 우리를 위해 기능하도록 해야지 허구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구별하는 능력을 잃었다. 그 결과 무수한 사람이 국가나 사회, 그리고 신이라는 상상의 산물을 위해 전장에 나가거나 수백만 명을 마구잡이로 학살했다. 이런 사태 이르지 않으려면 우선 눈앞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지 허구인지 구별하고 이를 이용할 과업을 고민해야 한다.
현실인지 허구인지 구별하는 최선의 방법은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고통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고통은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이다. 국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전쟁에서 패해도 괴로움을 느끼는 주체는 국민이다. 기업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거액의 손실액이 발생하면 기업이 아니라 그 조직에 속한 경영자나 사원이 초조해한다.
인간 사회가 잘 작동하려면 허구가 필요하지만, 허구를 도구로 보지 않고 그것을 목적이나 의미로 받아들이는 순간 초래될 고통은 실존하는 우리들의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초예측> 유발 하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