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Jan 26. 2020

카프카 <성> '삶의 승리가 아닌 끝없는 환멸의 울림'



나는 언제나 자유롭고 싶은 사람...
(해가 짧구나, 해가 짧아.)

프란츠 카프카 <성>



K의 행색은 30대 남자로 옷차림이 몹시 남루했다. 추어 브뤼케(다리목 여관)에 도착한 그는 조그만 배낭을 베개 삼아 여관 식당 옆 짚 매트에서 편히 잠들어 있었다. 늦은 시간 느닷없이 찾아온 성채 집사(말단의 보조 집사)의 아들 슈바르처는 성의 중앙 사무처를 통해 실제로 K가 토지 측량사로 오기로 되어 있는지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그는 K의 잠을 깨우고, 심문하여 따져 묻고, 직무에 따라 백작의 영지에서 추방하겠다고 위협했다. 착오가 있어 K는 순식간에 뻔뻔한 거짓말쟁이 떠돌이가 될 뻔했으나 결국 성으로 오기로 했던 토지측량사로 확인된다.



성의 사람들이 K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보기에 자신의 일(토지측량사)을 그들은 얕잡아 보고 있었다. 편지는 증명서처럼 K가 고용되었음을 마을 면장에게 통보됐으며, 그에게 지시된 일이 무엇이 되었든 K는 선택을 주저하지 않으려 했다. 마을 사람들과 이웃 주민이 되기 위해서라도 일개 노무자라도 되려 했다.K의 모든 일이 거기에 달려 있었고, 그래야 보이지도 않는 모든 길이 한꺼번에 열릴 것처럼 희망이 생겨났다. 다만 위험의 소지는 노무자 신분이 된다면 어떤 전망도 사라지게 될 것이란 두려움이다.





어디에나 얇은 층으로 덮여 똑같이 따라 그린 듯

어떤 형체라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눈으로 인해 (성의) 모습이 더욱 선명했다.


마을 입구, K가 머문 추어 브뤼케(다리목 여관)는 쌓인 눈이 오두막집들 창문까지 이르고 또 야트막한 지붕을 무겁게 눌렀지만, 저기 산 위에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경쾌하게 솟아 있었다. 성은 오래된 기사의 성도 아니었고 새로 지은 호화 건축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2층짜리 건물이 드문드문 솟아 있고 수많은 단층 건물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광대한 구조물이었다. P17





밝고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왔다.
그 종소리는 마치 아련히 갈망하던 것을 실현하겠다고 위협하는 듯도 했다.
그 울림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커다란 종소리는 곧 울림을 멈추고서 약하고 단조로운 작은 종소리에 자리를 내주었다.
작은 종소리는 성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을에서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성은 실망스럽게도 소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성 본체에 딸린 저 위의 탑은 단조로운 원통형 건축물이었다. 어떤 음산한 거주자가 지붕을 뚫고 올라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모습 같았다. 이튿날 K는 성을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나갔다. 성에서 멀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아침에 떠나 불과 한두 시간쯤 지난 줄 알았는데 날은 이미 저물어 칠흑같이 깜깜했다. 그는 오늘 중으로 도달하고 싶었지만 성은 다시 멀어져 갔다.



그곳 성의 일 처리에는 일관성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K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는 일관성이 없었다. 토지측량사로써 일이 없던 K는 조수에게 더 엄하게 명령을 반복했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성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지 못했고, 다만 제대로 된 일을 주기를 기대했다. 갈수록 자신의 상관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느끼지 못했고, 감사와 곤혹이 겹쳐지는 것처럼 부적절한 것, 두려운 것이며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렸다.





성으로 간다는 것은

웃음이 날 정도로 절망적인 시도...

삶의 승리가 아닌 끝없는 환멸의 울림...

낯섦이 던지는 어처구니없는 유혹 속에서 계속 가다가

계속 길을 잃고 헤매는 수밖에 없는 그런 곳...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이면 내가 선택됐나...


K는 자꾸만 고향이 떠오른다. 어릴 적 소수의 사내아이들만 광장 옆 오랜 된 묘지로 이어진 높은 담을 기어오르는데 성공했다. 그는 텅 빈 광장에 빛으로 충만한대 놀랍게도 쉽사리 그 담을 오른다. 어깨너머 땅속으로 꺼져 드는 십자가들... 지금 여기에 그보다 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승리감은 그에게 평생 의지할 만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 같았다.






여러 해 전 그 당시 토지 측량사를 한 사람 불러야겠다는 그 부서의 발상은 K에 대해 우호적인 것이었다. 그 후로도 그런 우호적인 것이 잇따라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엔 그들은 K를 나쁜 결말 쪽으로 유인하였고 추방하겠다고 위협한다. 추방하는 일 말고는 모든 게 매우 불확실하고 해결 불능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K는 자신의 토지측량사 자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성에서 온 고위급 사람들은 모두 마을 비서를 두고 있었고, 그 마을 비서들은 성의 고위급들 대리자로 가치조차 없는 K 같은 사람과 협상하기도 했다. K는 성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인 신분 높은 클람과의 만남을 기습적으로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야 만다. 성에서 온 사람도 아니고, 마을 사람도 아닌 K 에겐 클람의 마을 문서 보관소 안의 조서 만이 중요하며, 클람과의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공적 연결통로라 할 수 있었다.


K는 관청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라는 일이다. 사실 그의 유일한 소원이다. 그는 성의 대리인인 바르나바스에게 큰 희망을 걸고 있다. 바르나바스는 그 편지를 클람한테서 직접 받지 않고 서기한테서 받는다. 어느 날 어느 시간이고 아무 때나 전해지는 그 편지를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모르는 규정을 본의 아니게 위반하는 바람에 혹시라도 일자리를 잃게 되지나 않을까 겁이 나서 감히 누구에게라도 말을 걸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멀리 떨어져 닿을 수 없는 그의 존재,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그의 거처,
아마도 K가 아직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외침에나 중단될 것 같은 그의 침묵,
결코 입증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내리꽂는 듯한 그의 시선,
그가 저 위에서 불가해한 법칙에 따라 그리고 있는,
그래서 K가 있는 낮은 곳에서는 결코 파괴할 수 없고
단지 순간적으로만 볼 수 있는 그의 권역을 떠올려 보았다.





K는 실체가 보고 싶다. 자신의 추방에 대한 위협들을, 그들이 보이는 어떤 반응을 알고 싶다. 무얼 부탁할지 대면하고 싶다. 이곳에서 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어쩌면 심지어 법 자체에 대해서까지도 엄청난 악행이 자행되고 있다. K는 거기에 대항할 작정이다. 세상의 저항은 크고, 목표가 커질수록 저항도 커질 것이니, 하찮고 영향력 없는 K 이긴 하지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의 도움을 확보해 두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닐 것이니....



삶에 순응하고 견뎌낸 사람들이 있었고, 열정적이고 욕심 많은 거기다 끔찍하도록 충성적인 이들도 있었다. K는 그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K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내쫓는다는 뜻이다. K는 그 자리를 지키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 기쁨도 없는 승리였다. 그것은 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자유가 더 무의미하고 더 절망적이기만 했다.






입구는 열려있었는데 문은 달려있지 않았다.

(열린 문에 달린 것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뒤편의 닫힌 문을 향했다)

K가 원하는 것, 요구하고 있는 것, 도전한 일, 실현하고자 하는 것, 대항하려는 것....

K의 은밀한 의도는 무엇인가?

(                                                                     .)





아직 질문이 있어요.
당신은 그 얘기를 알고 싶은가요?
당신은 우리 일에 휘말려 들게 될 거예요.
아무런 죄도 없이.




걱정 없는 세월이 자기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르나바스 알고 있었다. 가족의 모멸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의 아버지는 어디서 건 희미한 싹만 보여도 희망을 키우려 했다. 어머니는 가족 모두의 고통을 다 떠안고 있었는지 모른다. 두 분은 관리들이 지나는 길목 거기 그 비좁은 자리에 주저앉아 서로 몸을 기대 채 얇은 담요 한 장을 뒤집어쓰고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그들의 자녀들은 몇 번이나 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백발노인이 되어서야 그는 거부당한 사실을 알게 되고, 모든 게 다 상실되었고 자신의 인생이 헛된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닮은 꼴로 함께 앉아 해가 지고 날이 새는 것도 잊고 있었다.

모든 게 성에서 비롯된 일



그날 아침에 이어 오전에 벌어진 일을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말이 나오자마자 이미 영원히 잊혀 버리는 셈. 가족으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오직 사건뿐이었다. 우리가 문제 되었다면 그건 단지 그 사건 속에 우리가 얽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 지나간 일은 언급하지 않은 채 그대로 놔두고, 어떤 방법이었는지 상관없이 그 사건을 극복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기만 했더라면,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게 어떤 성질의 사건이었든지 간에 다시는 그 사건이 거론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더라면 그것으로도 만사가 해결됐을 거다.




바르나바스의 누이 올가와 아말리아

올가는 달려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차안등의 빛줄기가 어둠 속을 가르며 쏟아져 들어왔다.

아말리아는 급히 다가오더니 올가를 옆으로 밀치고 거리로 나가더니 문을 닫아버렸다.

K는 이 집에서 나가는 다른 출구가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아말리아는 꿰뚫어 보는 이성으로 원인을 보았고, 모든 게 이미 결정되어 버렸음을 알고 있었다. 침묵하기만 하면 되었다.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살았고 견뎌냈다. 결코 놀라는 일이 없으며, 무서워하는 게 없고, 절대 조바심을 내지도 않았다. 무슨 일도 냉정하고 차분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반면 올가는 대담한 마음, 신중한 태도, 총명한 머리, 가족을 위한 헌신적인 자세를 가졌다. 바르나바스를 돕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시도하려 한다. 그 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아무리 나쁜 짓이라도 다 할 수 있다고 그것이 K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K는 두말할 것 없이 올가와 아말리아 중 한 사람만 골라야 한다면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올가일테다.) 그들 가족은 그들이 처한 운명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운명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지는 않았다.



지금 떠나야 할 시간이 다 되었어요.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아는 건가요?




대단한 승리라도 거둔 느낌, 샴페인 잔을 높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다들 알 수 있도록 싸움과 승리가 다시 한번 되풀이되었다. 아니 어쩌면 되풀이되는 게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벌어지는 것 같다. 이미 축하연은 열리고 있었고, 다행히도 결말이 확실했기 때문에 싸우는 중에도 축하는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



커다란 공간 속에는 K 혼자뿐이었다. 적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손님들도 어느새 다 흩어져 버렸다. 깨진 샴페인 잔만 땅 위에 뒹굴고 있어 K는 그것을 완전히 짓밟아 버렸다. 깨진 유리 조각에 찔려 뭄을 움찔하여 정신을 차렸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프리다는 이 교활한 연극에 함께할 적임자였다.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일. 우리는 승리자로 남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손에 넣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중심을 잃지 않고,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그녀가 실제로 갖고 있는 것이 그녀의 영향력이다. 클람은 이 아래로 내려오려고 스스로 노력해야 했다. 클람과 나란히 앉아있을 프리다.




봄이 되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하죠?

여기 겨울이 길어요. 아주 길고 단조롭죠.

글쎄, 언젠가는 봄이 오고 여름도 올 테니 그 모든 게 나름의 때가 있는 법이겠죠.

이틀조차 아무리 화창한 날이더라도 간간이 눈이 내리곤 해요.







아주 잘 휘는 버드나무 회초리 들고서...



TO. 프리다..


당신에겐 감당할 수 없는 힘들이 작용하고 있어.

적어도 그것에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

나는 당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왔을 뿐이야.

당신이 보기에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짜증스러운 일이나 끊임없이 쫓아다니는 사람일 테지.

우리는 각자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만났고,

서로를 알게 된 이후로 우리 각자의 인생이 전혀 새로운 들어서기도 했어.

당신의 눈길이 향하는 방향에 적당한 사람들이 배치되기만 하면

예전에 삶(실제적인 현재의 삶)이라는 착각에 빠졌지.

우리의 최종적인 결합을 가로막는 마지막 어려움이만 무시해도 될 만한 어려움에 불과해.




TO. K...


당신을 알고 나서부터 당신과 가까이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당신이 가까이 없으면 얼마나 쓸쓸한지 몰라요.

내가 꿈꾸는 단 한 가지 꿈은 내 말을 믿어요.

오직 당신이 가까이 있는 것들뿐, 다른 건 없어요.



이제는 정말로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성> 저자프란츠 카프카출판열린책들발매2015.03.15.





호모 사피엔스가 오늘날의 지위에 오른 이유는 돈이나 국가, 법, 인권과 같은 허구를 신봉하기 때문이다.
돈이나 국가가 허구임을 깨달았을 때 세상을 보는 시각 어떻게 달라지는가?
기업이나 돈과 같은 허구 없이 인간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기업은 직원들과 옳다고 믿는 공통의 이야기가 있어야 존속하고, 돈은 많은 사람이 같은 가치를 믿어야 성립한다. 허구임을 알아도 우리는 그 가치를 끝까지 믿으려 할 것이다. 이것이 허구니 맹신을 멈추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허구에 대한 믿음을 거둔다면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끼리 협력하지 못할 것이다. 허구가 우리를 위해 기능하도록 해야지 허구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구별하는 능력을 잃었다. 그 결과 무수한 사람이 국가나 사회, 그리고 신이라는 상상의 산물을 위해 전장에 나가거나 수백만 명을 마구잡이로 학살했다. 이런 사태 이르지 않으려면 우선 눈앞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지 허구인지 구별하고 이를 이용할 과업을 고민해야 한다.

현실인지 허구인지 구별하는 최선의 방법은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고통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고통은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이다. 국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전쟁에서 패해도 괴로움을 느끼는 주체는 국민이다. 기업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거액의 손실액이 발생하면 기업이 아니라 그 조직에 속한 경영자나 사원이 초조해한다.

인간 사회가 잘 작동하려면 허구가 필요하지만, 허구를 도구로 보지 않고 그것을 목적이나 의미로 받아들이는 순간 초래될 고통은 실존하는 우리들의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초예측> 유발 하라리









<마무리>


위협하고 추방하려는 자 누구인가? 끝없는 환멸의 울림 그것은 실현하겠다고 위협하듯 우리에게도 고통스럽게 들려오는듯하다. 카프카의 <성>에서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 성, 그 성 아랫마을 주민들은 기이한 불안감을 내비치며 움츠러드는 군상으로 무언가에 지속적으로 짓눌린 듯 기형적인 몰골로 희화화되어 묘사된다.



<성>집필하고 2년 후 카프카는 41세에 사망한다. 그는 34세에 폐결핵을 진단받고 5년간 요양에 힘을 썼다. 체코 북부, 이탈리아 북부, 슬로바키아 산지 등을 찾아 요양생활을 했고, 작품 활동을 못한 채 자전적인 글과 짤막한 산문, 편지와 일기 등이 전부였다. <성>은 카프카가 모처럼 다시 창작의 의지를 되살린 작품이었다. <실종자> <소송> <성>카프카의 3대 장편소설은 모두 미완성이다.



<성>의 이야기는 총 엿새에 걸쳐 전개되는데, 실제로 내가 읽어 온 시간이 너무도 길어진 탓에 카프카의 몇 세대를 거쳐온 느낌마저 든다. 인물들의 행동이 추상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을 정도로 과장된 연극을 한 편 보는 듯도 했다. 카프카가 말로 전할 수 없는 작품의 큰 그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카프카가 대항하려는 것을 찾으려 했다. 이 미완의 작품에서 그는 다 보여주었을까. 나머지는 어쩌면 이미 여기 이 세계에서 계속 쓰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으로 가까이 갈수록 멀어지고 만다. 이것은 처음부터 이미 복선처럼 암시되어 있다. K는 성에 들어가 베스트 베스트 백작을 만나기 위한 <열쇠>를 찾다 프리다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더 이상 클람을 만나기 위해서 프리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프리다를 위해 견디려 한다. 프리다는 차라리 이 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살기를 원하기도 한다. K와 프리다의 관계는 이런저런 가까운 관계 속에 이그러져 깨지고 만다.



그는 성의 토지측량사로서가 아니라 단지 학교 관리인으로 취직해 마을 주민으로 살아간다.K의 신분을 인정해 줬다고 해서 그를 지속적으로 공포속에 붙잡아 둘 순 없다고나 할까. K는 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치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거나, 적어도 그 일이 자신을 속박하지는 못할 거라는 듯한 태도였다. 카프카는 책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모든 것을 더디게 깨닫게 한다.



K가 몽상을 즐기고, 몽상이 K를 가지고 노는 동안.... 먼 미래, 물론 거의 상상할 수도 없이 아득히 먼 미래에는 모든 사람들이 능가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난다. 피곤한 그(여기에서 작가인 카프카라고 하자)가 그간 겪었던 많은 것에 대한 보상이라면 비어 있는 방에 멋진 침대에서 실컷 잠을 자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귓전으로 들리는, 거추장스러운 의식은 사라지고 자유를 가졌을 것이다.



카프카의 <성> 해석하다 터무니없는 망상을 이어간다. 우리들 방 안의 그 어둠과 그 침대들에서 비롯된 산물들일 뿐. 한 가닥의 희미한 진실을 보는 것. 엉터리로 전체를 추론하는 사고방식이 있더라도 기꺼이... 프리다가 왜 K를 떠났는지 K는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내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자리가 그렇게...



내가 당신의 프리다여서 고맙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당신을 등지고 돌아서 왔지만, 한순간 벗어났을지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어졌다. 당신의 잠을 깨우고, 당신이 문을 향해 걸어나갔을 많은 날들, 세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기쁨을 멈출 수 없다. 그들은 당신을 무척 그리워할 테다. 한마디의 말, 한순간의 눈빛, 한 번의 신뢰 표시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당신이 주었을지 어찌 알까.



카프카의 <성>은 미완성 원고로 그의 친구인 막스 브로트의 말에 의하면, K는 일곱째 날 마을에 거주하는 조건으로 성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가를 받지만 기력이 소진한 나머지 죽어 간다는 내용의 마지막 장이 빠져 있다고 한다. 카프카의 작품 해석은 너무도 많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K가 저항하려는 것과, 이루려는 것을 찾았다. 내 상상의 결합물이라 여기며 리뷰를 완성했다.



카프카의 <성>에 내 의식 한편이 머물러 있었다. 이러다가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절망도 생겨났었다. 읽기 싫어지는 소설이라고도 생각도 했다. 이렇게 우울한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내게서 찾게 하는 모든 작가들에게 절을 하고 싶다.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나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잃지 않는 것과 같았다.



2018년 4월에 <성> 책을 주문해서 읽기 시작해 2020년 1월에 독서가 끝났다. 중간에 공백기가 있어왔지만, 계속해서 성으로 향하는 K가 어디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는지, 그곳에서 벗어날 순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숨 막히는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언제나 주인공은 내 편이고, 응원하게 되지 않던가! 드디어 리뷰를 완성할 수 있어서 속이 시원하고, 역시 1년에 한편만 카프카의 소설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을 듯하다. <실종자>는 2021년에 시작하는 걸로!

이전 18화 프란츠 카프카 <실종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