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Mar 23. 2018

요리소설, 다시 시작하는 <달팽이 식당>

올해의 독서시작 

대도시에서 분투한 끝에 겨우 남들처럼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게 됐을 즈음, 할머니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밤늦게 터키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밥상 위에 종이 냅킨으로 덮어놓은 도넛이 잔뜩 놓여 있고 그 옆에서 할머니가 잠을 자듯 죽어 있었다.

할머니의 야윈 가슴에 귀를 댔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입과 코끝에 손바닥을 대 보아도 전혀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살아날 가망은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서둘러 연락하거나 하지 않고, 적어도 하룻밤만이라도 할머니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할머니는 점점 차갑게 굳어 갔고, 그 옆에서 나는 밤새 도넛을 먹었다. 반죽에 겨자씨를 넣고, 계피가루와 흑설탕을 뿌린 그 달콤한 맛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참기름으로 부드럽게 튀긴 한 입 크기의 그것을 볼이 미어지게 입에 넣을 때마다, 할머니와 뜰에서 볕을 쬐듯 따스하게 보낸 .하루하루가 몽실몽실 거품처럼 되살아났다.

겨된장 항아리를 섞는 할머니의 파란 혈관이 도드라진 새하얀 손, 필사적으로 절구질을 하던 동그랗고 작은 등.
간을 볼 때 음식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에 넣던 귀여운 옆얼굴.

<달팽이식당> 중



영화 <달팽이 식당> 한 장면



달팽이 식당 


‘먹는다’는 것, 당신에겐 어떤 의미인가요?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을 잇는 맛있는 소설작사가 출신의 작가 오가와 이토의 데뷔작으로, 일본에서 40만 부 이상 판매되어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삶의 희망을 잃고 고향에 돌아와 달팽이 식당을 여는 링고. 손님의 취향과 인품에 대해 철저히 사전조사를 한 후 상황에 딱 맞는 요리를 내놓는다.


영화 <달팽이 식당> 한 장면


린코의 이야기, 링코가 요리사간 된 이야기, 링고의 꿈이 이루진 비하인드.
모든 걸 잃어버리고 나서야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어디에서 얻었을까? 겨된장이었을까. 그 항아리 꼬옥 껴안고 일어설 수 있었으니깐 아마도 그 겨된장을 만들어준 할머니의 기억이었을 테다. 


<<달팽이 식당>>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비밀 동굴 같은 장소
달팽이 식당의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



이런 유방산 깊은 곳에 누가 달팽이 식당을 찾아올까? 첫 번째 손님 린코(링고~)를 도와준 구마씨였다. 고마운 답례로 구마씨에게 석류카레를 무상으로 대접한다. 석류카레를 먹은 덕분일까. 구마씨는 소중한 만남을 잠시 이룬다. 그는 자신이 보답해야 할옆집 노부인을 린코의 달팽이 식당에서 대접하기로 한다. 마음의 문이 닫힌 할머니에게 린코는 어떤 요리를 선보여 줄까 내심 무척 궁금했다. 가끔 어떤 게 진짜 배려인지 모를 때가 있다. 린코는 고민 끝에 정반대의 요리를 선택한다. 

달팽이 식당은 우연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점점 유명해진다. 

영화 <달팽이 식당> 한장면
인생에는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훨씬 많다.
내 인생은 특히 그런 느낌....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메어오고, 
금방이라도 호흡곤란으로 
죽어버릴 것 같을 만큼 행복했다.

이런 식으로 넓은 하늘 아래에서 
누군가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자신의 모습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더욱이 이렇게 빨리,
오랜 세월 품어 왔던 
꿈이
이루어질 줄이야......




요리는 재료와 재료를 조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채소를 만드는 것도 가축을 키우는 것도 물고기를 잡는 것도 농부와 어부인데, 그들도 씨앗이라고 할만한 그것을 만들지는 못한다.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그 달 그 달 만들어내는 요리는 같은 요리도 다른 맛을 낸다. 더 풍요로운 맛을 낸다. 알고 보면 그 맛을 주는 것도 먹고 맛을 음미하는 것도 모두가 하나인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만나 우리가 되는 느낌이랄까. 너무 보고 싶었던 맛이랄까. 그리운 맛이랄까. 여한이 없다고 할까. 나는 아직 요리하는 것보다는 먹는 것이 더 좋다. ^^

린코는 달팽이 식당을 하면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것일까. 첫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 심정으로 엄마를 시집보내고, 키우던 엘메스의 모든 부위를 해체작업을 한다. 엘메스는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돼지고기 요리가 되었다.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자신에게 이어지지 못하고 하나는 건너뛴 사랑. 알고 보니 자신만 모르는 탯줄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석양에 비쳐서, 
순간 모든 풍경이 마멀레이드를 듬뿍 바른 것처럼 보였다.
현관 옆의 종려나무도 
석양빛에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오븐에서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앞으로 10분만 더 있으면 완성될 것이다.
먹고 나면 아주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요리를,
앞으로도 계속 만들자.
<달팽이 식당> 中







*
작가 오가와 이토(46세)는 평일에는 작가, 주말에는 요리사 팔방미인이다. ^^; 요즘 책 읽기 어려워서 방황하다가 요리책? 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네이버 블로그 이웃이신) 아라님이 소개해주신 <달팽이 식당>으로 스타트를 겨우 끊었다. 내 마음을 내가 어쩔 수 없으니... 3년 차 슬럼프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수단으로 읽는 실용서와 별개로) 소설을 읽을 힘을 나도 모르게 잃어버려서 도통 회복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부담 없이 읽는 연습을 하고 있다. 부담 없이 책을 즐기자고 생각하고 있다. (감성을 늘리는 중!)

요리책이라고 말했지만, 요리 소설인가? 음식 소설? 식당 소설? 여기로 가는 글은 무엇이라고 이름 지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다음 책 <카모메 식당>이다. 책과 영화 함께 보면 좋은 소설인듯싶다. 사실 상상했던 <달팽이 식당> 이미지를 찾다가 조금 달라서 코미디가 되어버린 것 같다. 에피소드가 조금 우당탕탕 괴짜 가족 같아서 피식 웃고 말았지만, 링고의 진지한 마음속 독백이 듣기 좋았다. 


*
<함께 보면 좋을 책>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http://roh222.blog.me/2205972696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