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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19. 2018

도서관을 졸업하다.

내 마음속의 도서관을 짓다.

01. 도서관이 나의 책장이었다.


늦은 독서 입문,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독서를 빙자한 도서관 출입이 시작됐다. 도서관을 다닌 지 10년 동안 많은 책을 펼쳤다. 시간에 비해 읽은 책은 많지 않다. 대신 셀 수 없을 정도로 책을 구경했다. 나는 끝까지 읽은 책 보다 쉽게 덮어버린 책들이 많았다. 그래서 구매하는 것보다 언제든지 반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좋았다.


만화책을 15살 때부터 쉼 없이 읽었다. 점점 횟수가 줄어들면서 완전히 이별했다. 어쩔 수 없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펼쳐보지 못한 책들이 가장 궁금했다. 책은 내가 원하면 원할수록 (질문하면 질문할수록) 더 많은 것을 내놓았다. 내 경력이 늘어나고 나이도 들면서 책은 패턴을 바꿔가며 나를 따라왔다. (아니 반대로 내가 책을...)



* 나에게 책이란?

http://roh222.blog.me/220152212590



책은 내가 몰랐던,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런 세상을 보여주었다. 난이도는 가파르게 높아져만 갔다. 한 권의 책을 몇 주, 몇 개월간 대출받기도 했다. 그런 수고로움이 전혀 수고롭지 않았다. 우리 동네 도서관 종합자료실 4층 입구에서 왼편으로 돌아 직선으로 쭉 이어진 각종 신간을 두루 살피며 제목만 읽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또다시 오래된 책장을 찾아 그 앞에 우둑하니 서서 오래도록 책을 찾아 나섰다. 숨바꼭질 하듯 낚아채 담아왔다.


도서관과 나의 추억은 소소하게 많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다. 출발하기 전의 '나'다. 어떤 책을 만나게 될지 설레었다. 항상 긴장돼서 배가 아프긴 했지만, 그 식은땀마저도 추억이다.


책과 대화하는 나
질문할수록 풍경(책의계절)이 달라졌어요.
- 훌리아 -



02. 다시 시작해야 할 때, 그런 순간을 알아채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몇 개월간 나는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책을 가져오지만 다시 그대로 돌려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쓰기 위해서 읽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앞으로 읽어나갈 것이다. 다만 나에게 변화가 생기려고 한다는 것을 느낀다. 권태로움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감정은 권태로움과 구분되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에밀리 와프닉 <모든 것이 되는 법>을 읽었다. 다능인들의 고민과 해결방법이 소개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내가 꼭 다능인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다능인의 목적 달성 후 권태로움과 구분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관심 있게 읽어 내려갔다. 이미 목적 달성을 이루면 더 이상 열정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대신에 구분해야 할 점이 있었다.



*에밀리 와프닉 <모든 것이 되는 법> 리뷰

http://holia-81.tistory.com/278



당신은 자신의 열정 분야들을 통합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분리해둘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함에 따라, 우리 생산성 전략들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 에밀리 와프닉 -


계속 해오던 리뷰가 글쓰기가 설레지 않았다. 열정을 잃어버렸다. 되도록 한 가지를 오래 하고 있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지만, 이번 권태로움은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내 문제는 자신감이 부족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나여도 괜찮은지 묻고 싶다.



* 책과 함께 하고픈 나의 마음을 표현한 글

http://roh222.blog.me/221252818940



책은 나에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안내자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따라가려고 애썼지만, 만족할 수 없다는 사실, 허무함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소소한 즐거움이 전부가 아니었나 보다. 내가 책에서 얻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괴상한 욕심이 되어버렸다. 다 알면 납득은 하고, 세상을 바로보기나 할 수 있을까.


책과 나의 기능적인 문제라면 단순해질 수 있다. 책과 작가를 분석하고 내 생각을 덧붙이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발견해보는 것이다. 이 세상에 새로운 생각이란 없다지만 바랄 수는 있는 문제는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투정 부리는 중일까. 누구에게? 나에게? 책에게?


그래서 대체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거야?


03.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도서관에 대출한 책을 반납하고, 하던 대로 책들을 살폈다. 하지만 잡아든 책은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정말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었다. 펼치고 텍스트를 읽을 수는 있지만, 나의 무지가 조금은 문제를 해소할 순 있지만, 정말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정해야 했다. 이런 마음이 든 것이 10년 만이다. 강산이 변했나 보다. 내 마음의 풍경이 변했다.


오래도록 함께할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나만의 책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책을 소중하게 여길 준비가 되었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나는 책을 아끼지 않았다. 그냥 네모난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읽는 것과 책은 별개였다. 사물에 지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책을 대출하지 않고 돌아서서 후련했다. (이제는 그럴 때도 되었지?)라고 생각했다. 꼭 어디에 메여있는 사람처럼 빠짐없이 다닌다는 게 (사서도 아니면서) 출근하듯이 다니다니 참 (너두) 여유 없었다. (난)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 여유 없음을 책으로 풀었다. 책에게 미안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눈물짓고 말았다. 시원섭섭함이었을까. 지난 나를 두고 와서 일까. 나도 모르게 영원히 이별하는 것처럼 돌아섰다. 그리고 이 마음을 꼭 글로 남겨야지 생각했다. 이런 나를 언젠가 꼭 잃어버릴 것 같으니깐, 기억하고 싶다.



04. 나만의 책장 만들기(내 마음속의 도서관 짓다)


나만의 책장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을 때, 나는 작은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된다. 지금도 그렇다. 성급하게 이루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긴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가지고 있던 책도 동생에게 주었는데 그것은 돌려받고 싶지 않다. 순수하게 지금부터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내가 가는 길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마주치는 책을 소중히 할 참이다. 이제는 만나고 싶은 때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내 손길 닿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내 마음속의 도서관을 실제로 옮겨놓는 과정도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마음이라면 충분하다. (어쩌면 이미 나는 나만의 도서관을 만나보았지 싶다. 꿈속에서 ^^)



지금 구입한 책 2권 소개


로맹 가리 <징기스 콘의 춤>, 프란츠 카프카 <성>


구입할 책 (아직 출간전)

파스칼 키냐르의 말 (사진 이미지 _ 마음산책 책표지)



로맹 가리, 파스칼 키냐르, 프란츠 카프카는 내가 전작 읽는 작가들이다. 로맹 가리와 파스칼 키냐르는 거의 끝에 다다랗고, 프란츠 카프카는 그다지 (번역된) 작품수가 많지는 않다. 지난 책들을 다시 책장에 끼워 넣을 것인지 내 마음속에 둘 것인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나만의 책장에 둔다면 물론 기쁠 테다. 하지만 사서 모으는데 힘을 쓰고 싶지 않다는 결론이다. 저절로... 모든 게 저절로 이뤄지기를 바란다.





로맹 가리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romaingary


파스칼 키냐르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pascalquign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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