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즐거워지는 순간> 책 제목을 본 순간 어떤 스토리를 생각하셨나요? "독서가 정말 즐거워질 수 있어?"라고 생각하셨나요? 아니면 "그렇지 독서는 즐겁지, 단지 시간이 없을뿐..." 이라고 독백을 하셨나요? 이에 부응하기 위해 브런치북 만드는 저는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독서가 즐거워지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고 잘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런 의문에 다시 목차를 점검하고, 내용을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독서를 하는 동안의 저의 상태를 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제 머릿속의 영상으로 뽑아 텍스트로 전환해 책을 한 권 만든다면 어려운 탐구과정 없이 얼마나 간편할까요?인류의 최고라 손꼽히는 작가들의 머릿속을 생생한 영상으로 뽑아 텍스트로 전환해... 사실 이과정없이 그대로의 영상만을 원할지도 모를일입니다만, 텍스트로 그 영상을 뽑아 내가 만든 영상을 본다는 것은 그것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아마 절대 같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하는 동안 몰입하는 저를 느낄 수 가 있습니다. 몰입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저는 사라지고 오로지 저자의 만든 세계에 머문다는 느낌, 저자의 생각하는 흐름을 문맥의 여기 저기에서 뽑아 다시 이해하고, 설명하진 않지만 저자가 내게 보여주려한 것, 말하고자 한 것을 피부로 스미듯이 느끼고야 맙니다. 이걸 말로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저를 찾음과 동시에 비우기를 한다고 여겼습니다. 어떻게하면 책을 더 잘 읽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를 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카프카의 <성>을 읽다가 진전 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읽어도 좋고, 읽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카프카의 <성>에 닿아있었고, 이미 들어선 곳이기 때문에 돌아 나올 순 없었습니다. 갈 수 있는 곳 까지는 가봐야 되지 않겠나 그런 막연함을 즐겼고, 버거워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2014년도 10월 부터 우연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감정이 흘러가게 뒀을 뿐이었습니다. 제대로 움켜잡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감동적이거나 재미거나 정보 습득에 치우친 단순한 독서였습니다. 작가와 작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가 말하려는 게 무엇이었을까?
'작가가 말하려는 게 무엇이었을까?' 그 점을 가장 염두에 두면서 읽는 게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도 알아가는 과정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넘치는 것보다는 가둬두는 글을 또 이미지로 보이는 글을 좋아하는 듯하다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를 알아가는 과정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읽고 싶은 데로 읽는 제가 제대로 책을 읽는지 의문이었습니다.
리뷰에서 너무 많은 걸 말하지 않으려고하지만 저에게 마무리 단계라 다 써버리고 말아요!
책을 분석하거나 비평하거나가 아닌 받아들이기, 이해하기, 빠져들면서 책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론 제 생각 따윈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결국 제가 느끼는 게 전부일 텐데 그 과정을 즐긴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무의미한 생각도 때론 합니다. 교훈적인 것도 발전적인 것도 바라지 않는 데도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즐겁다 여겼습니다. 부정할 수 없이 혼자만의 즐거움, 그 유희에 매료되곤 했습니다.. 반복적인 일상에 책은 저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주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더 많이 찾아서 읽어야겠다 고도 생각합니다만 그 점이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모르는 작가와 작품이 너무도 많다는 게 문제고 깊이 빠져들기가 버겁다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장르 불문 만화만 너무 많이 읽어서 문학책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늦은 독서 입문이었고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문학의 발판은 제인 오스틴 소설이었고 그 시대부터 관련된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되돌이켜보면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읽기에만 연연했습니다.. 브론테 자매의 소설을 좋아했었고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 특히 기억에 남을 뿐 모두 다 잊혀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역사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삼국지, 김탁환 작가 불멸의 이순신 등 역사소설을 이어 읽기를 했었습니다. 드라마적인 역사소설을 주로 찾아 읽었습니다. 박경리 <토지>를 읽으면서 아주 느리게 독서하기로 마음먹기도 했었는데 흐름이 끊기고 맥없이 독서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역시나 지금까지도 전작주의 독서를 하는 편이고 저는 무척이나 일관된 독서만 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책은 어려운 숙제 같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김탁환 작가의 작품을 간간이 읽었고 에세이 <읽어가겠다>를 읽는 것도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때때로 합니다. 기회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같다고나 할까요? ^^; 그가 소개한 젊음을 상기시키는 23권의 책을 통해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 로맹 가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입맛에 맞았고 저는 그들의 작품과 리뷰를 찾아 읽었고 좋은 이웃분들이 생겼습니다. 이웃분에게서 파스칼 키냐르 작가의 작품을 소개받는 운명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맛나서 아껴두며 먹었습니다. 중간에 독서가 흐지부지되고 놓아버렸다면 맛보지 못할 진수성찬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만남을 외면했더라면 인간적으로 저는 조금도 나아진 면이 없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우스운 생각도 했습니다.
저에게 책과의 첫 만남은 생경한 것이었습니다. 마쓰오카 세이고 일본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랬고 다른 사람들, 그들의 자녀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 저와 무척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어릴 적 기억으론 부모님께서 책을 사주신 기억도 읽어주신 기억도 전혀 없습니다만 있다고 하셔도 제가 기억나지 않으니깐 어쩔 수 없습니다. 대화를 많이 한 기억도 없다는 게 제가 무척 사랑받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지켜본 기억이 많았을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지켜보거나 기다리거나 하는 기억이 많습니다. 보통은 그와 반대겠지만... 그리고 저는 책 읽기를 가장 못 했고 두려운 것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거의 대부분 학창시절이 그랬습니다.
독서 입문기를 지나 이제는 어느정도 독서의 맛보기를 알았고 더 나아가면 제 입맛에 맞는 책이 엄청날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찾는 과정을 즐길 것인지 버거워할 것인지 제가 선택할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두 작가를 조금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파스칼 키냐르 작가를 소개하겠습니다. 그의 글은 한 문장이 거의 완성에 가깝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한 이미지를 각인시키길 좋아하는 또 좋아하는 콩트 같은 엽편소설처럼 짧게 표현하고 시작과 끝이 없는 걸 즐기는 그런 작가입니다. 언제나 언어 이전의 근원을 찾아들어가 저를 미로속에 던져 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다른 작가는 로맹 가리입니다.그의 글은 자신의 슬픔을 가둬둔 채 누군가의 슬픔을 거두려 하는 그런 처연함을 당당함으로 대신하는 그런 작가입니다. 제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입니다. 그들의 언어로 들어가 보는 것, 느끼는 것, 깨닫는 것들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더더더 원하기도 했습니다.
읽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쓰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쓰는 것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는 읽고 쓰면서 흩어진 저를 찾아낸다는 생각을 했어습니다. '이런 나도 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저 자신을 해체하고 비워낸다고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습작시는 숨기는데 탁월한 저만의 비법으로 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런 재미로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솔직한 사람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가 저는 무척이나 마음이 들어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정말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시는 참 이상합니다. 그런 저의 마음도 알아주는지 말하지 않아도 보여줍니다. 여전히 저의 글은 생각이 뒤섞여 쓴 글이라 여전히 충분치 못한 글이 되곤 말지만 저를 기대하게 합니다.
제가 독서하게 된 계기와 그동안에 쓴 리뷰와 제가 좋아하는 작가와 장르 그리고 제 습작시와 글을 제 블로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책들과 함께한 시간이 제가 될 수 있음에 참 감사합니다. 이런 시간은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어쩌면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이런 소중한 시간들이 찾아온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빨리 왔어도 만나지 못했고, 너무 늦었어도 이런 열정 갖지 못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잠시 미치듯이 앓듯이 좋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진행 중이고 잠시 터닝포인트이지만, 다시금 그런 미친 앓이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그 한가운데 제가 있으면서도 없다는 사실에 매료되고 말거든요. 아주 극히 개인적인 유희일지도 모르지만... 아니 선택된 많은 사람들이 지나온 길일 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