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Jul 21. 2021

<경희>나혜석 '눈에 보이는 대로 그 명칭을 불러본다.

...... 그러면 내 명칭은 무엇인가'

나혜석의 단편소설<경희> 근대문학 신여성에 대하여


작가 나혜석



나혜석은 한국 근대 여성문학에 상징적 인물이다. 근대미술 최초 여성 서양화가였고, 여성작가였으며, 최근에서야 여성해방론자로 평가받고 있다. 19세기 말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신교육을 받고 17살의 나이에 도쿄의 사립 여자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졸업 후 귀국한다. 그녀는 도쿄 여자 친목회에서 출간한 『여자계』에 단편소설 「경희」를 실어 발표하고 이후 1919년 3.1독립 운동 활동을 하다 검거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당시 20살이었던 나혜석은 문학과 미술을 동시에 활발히 활동하며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그녀의 첫사랑은 근대 시의 개척자인 최승구였다. 그는 조혼 상태였으며 학비 문제조차도 해결 못하는 등 현실 문제에 번민하다가 나혜석과의 결혼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폐병으로 그만 죽고 만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지만 한편으론 애인의 죽음으로 심하게 괴로워하며 마음을 앓는다.


나혜석은 신여성의 표본으로 여러 문학적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이 20살에서 22살이었다. 1920년 나혜석은 24살에 행정가인 김우영과 결혼한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규원」, 「원한」등 계속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30대 초반에 이르러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 중 최린을 만나 열애에 빠지고 김우영과 이혼하게 된다. 이혼후 금강산 해금강에 머물며 그렸던 다수의 작품을 화재로 잃고난후 나혜석은 충격으로 수전증이 생겼다. 1934년 그녀의 나이 38살에 남편 김우영과 조선사회를 고발하는「이혼고백장」을 발표한다. 거기에 불륜 상대인 최린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내고 사회적으로 큰 파란을 일으킨다. 1936년 「현숙」, 1937년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간다. 사회적 비난과 냉대를 겪고, 경제적으로 궁핍하였던 그녀는 1948년 쓸쓸하게 말년의 생을 마감하고야 만다.


신교육을 받고 신문물을 받아들여 깨어난 사고를 하였던 여성이었으며 3.1운동 활동을 할 만큼 애국심과 자립심을 갖춘 지식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10년대 「경희」를 출판한 나혜석은 1세대 신여성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근대소설 속에서 신여성은 반봉건적이고,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교육의 필요성을 대두하고 있다. 『여자계』에 실은 단편소설 「경희」 또한 구여성을 설득하고자 소설 속에 신여성이 받는 오해와 진실이 무엇인지 스스로 자각하여 깨닫게 만든 소설이다. 실천적 삶을 살고자 하는 그녀 자신의 바람이기도 했다. 단편소설 「경희」의 결말 부분은 기도로 끝마친다. 작가의 바람도 그 기도 속에 담겨 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나혜석 단편소설 <경희>




**

시대적 배경


조선은 갑오개혁 전후 개화기 맞이한 후 신교육을 받고, 사회 전반에 자본주의 사회로 거듭나게 된다. 나혜석은 19세기 말 그 시기에 태어나 신교육을 받고 20세의 젊은 나이에 신여성을 대표하는 실천적 삶을 살아가는 단편소설「경희」를 쓴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을 상실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자발적인 저항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작가 나혜석은 3.1독립 운동 활동을 하다 검거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작품 「경희」의 시대적 배경은 1910년 그 이후이며 봉건주의 조선사회에 근대 계몽이 일어난 시기라 할 수 있다.


작품 속 「경희」에서 주인공 경희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일본 유학을 다니며 신여성다운 면모를 드러낸다. 일본어를 번역하고 재봉틀을 다룰 줄 알았다. 신교육을 받아 사회에 진출하고자 결혼을 미루고 학업을 완성하고자 한다. 작품 속에서뿐만 아니라 시대적 배경이 그러했다. 신교육을 받은 여성이 늘어나고 목소리를 높이고자 했으며 독립운동에서도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실천해 나갔을 때다. 한편으로 봉건주의 조선사회의 구시대의 관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편견에 사로잡혀 여성의 사회진출이 볼썽사나운 일처럼 부정적인 시선을 견뎌 내야 했다. 같은 여성으로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고정관념이 더욱 가시밭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작가 나혜석조차 단편소설「경희」를 통해 구 여성들의 인식을 바꾸어 신여성으로서의 삶이 어떠한지 현실적으로 동의하게 하기 위한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

줄거리


일제강점기 19살의 경희는 일본 유학을 다니는 여학생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집으로 돌아오면 경희가 하는 일은 일본 여자에게서 배운 재봉틀 바느질로 자기 오라버니 양복 속적삼에 조카들 양복, 모자를 짓고, 일어로 된 재봉틀 바느질법에 대한 번역서를 만들고 재단을 기록하며, 다락방을 쓰임에 맞게 정리하고, 김치를 담그고,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어 부모님 일손을 덜어드리려 한다. 조선사회의 그 시대에는 여학생이 공부해서 무엇 하는지, 왜 일본까지 가서 공부를 하는지, 졸업을 하면 무엇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여학생은 바느질도 못하고, 빨래를 아니 하고, 살림살이할 줄 모른다는 편견이 사회 전체에 난무했으며, 그저 잘난 체하는 사내 같은 학생쯤으로 여겼다. 거기다 계집을 일본까지 보내 공부시킨다는 것은 당연히 부모가 욕을 먹고, 흉보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경희의 오라버니는 지금 세상에 여자도 남자와 같이 많이 가르쳐야 누구에게나 존대를 받을 수 있다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그녀를 시집보내는 것을 늦추고 알뜰히 경희 보살펴 주고 격려한다. 경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의 할 일을 잘 찾아 해내고, 신여성에서 대한 잘못된 견해를 바로잡고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길 바라게 된다. 경희 어머니는 일본 사람인 재봉틀 회사 감독관이 찾아와 고개 숙이며 찾아와 딸이 졸업하거든 회사일 보아 달라 청하고, 공부 많이 할수록 존대 받고, 월급을 많이 번다는 사실을 믿게 되어 딸을 자랑스레 여기게 된다. 자신이 순종적인 삶을 살아왔으며 억울했던 시절이 보상받기라도 한 것처럼 대리만족하게 된다.


경희는 공부를 마치기 전까지는 시집가지 않겠다고 했으나 경희 아버지는 19살에 시집가는 것도 늦은 나이라 여겨 혼처가 생겼을 때 놓치지 않으려 강제로라도 결혼을 시킬 결심을 한다. 경희가 결혼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부유한 판사 집안 맏며느리가 되어 안락한 삶을 사느냐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찾아 욕심내서 쟁취하여 신여성으로 살아가느냐 스스로 자문자답하여 고뇌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려 한다.





김우영(1886 - 1958) 일제강점기 변호사 및 관료로 화가 나혜석의 남편, 나혜석(1896 - 1948) 과 자녀들 사진 딸의 이름에 자신의 성을 달아 '김나열'이라 작명함


왼쪽부터 나혜석, 남편 김우영, 동생, 오빠, 친구 허영숙



나혜석과 김우영은 부부동반 세계 일주 여행(2년간)을 떠나기 전 사진(오른편) - 친일 활약, 조선총독부 지원 여행






봉건적인 조선사회는 여성이 오롯이 희생하도록 강요받는다. 경희의 어머니는 ‘비단 치마 속에 근심과 설움이 있으니’란 말을 경험하여 살아온 여인이다. 본인도 부귀하게 태어나 살아왔으나 남편 이철원이 젊었을 때 방탕하여 첩이 두셋씩 되어 속을 썩였다. ‘사내가 첩 하나도 둘 줄 모르면 그것이 사내냐’ 말하던 시대라 여자가 남자에게 잘못이라 말하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했다. 경희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서울 학교를 다니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와 자기 주도적으로 살림살이를 살피고, 재봉틀 기술을 배우고, 점잖고 높은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졸업 후에는 경제적으로도 윤택하고 더욱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것을 믿게 되어 대리만족하며 자랑스레 여기게 된다. 본인은 순종적으로 삶을 살아와서 그것 아닌 삶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딸이 차근차근 이루는 교육 받고 신여성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니 세상 보는 시야를 넓히게 된다. 소극적이었던 마음이 조금은 당당해져 사돈에게도 경희를 잘하는 일을 자랑하게 된다.


경희의 오라버니와 형님은 경희의 학업을 지지하며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공부하며 경험을 쌓길 바라고 그녀의 소소한 일상들에 귀 기울인다. 집안의 종손으로 교육을 받는 것이 당연했지만 경희 오라버니는 딸인 경희도 남자와 같이 동등한 교육을 받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진취적인 가치관으로 구시대적인 관습을 타파하려는 의지가 있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집안의 종 시월이조차 경희가 쉴 새 없이 몸을 놀리는 것을 알고 있고, 일을 함께 해나가자 하니 좋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 자신의 자식에게까지 선물을 챙겨주는 씀씀이에 감동하여 더욱 작은 아씨에게 잘해주려 마음을 쓴다. 이것만으로도 경희가 신여성이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뿐 아니라, 신여성을 존중하며 지위 고하를 떠나 경희의 사람 대하는 자세에 인간적인 대우를 느낀다. 신분이 낮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대 받을 이유가 없음을 상기하며 더욱 힘을 낸다. 반면 ‘여편네는 동서남북도 몰라야 복이 많다’는 말은 할머니와 큰어머니와 사돈 마님 모두 일치하게 말하는 대목이며 그녀들은 구시대 관습에 흔들림 없이 믿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에 신여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여성이 공부하는 것은 고생스럽고 사내조차 배워서 쓸모가 없는 것을 여자인데 더 무엇 할 것이 있으며, 부잣집에 시집가서 자식 낳고 사는 것이 제일 재미난 일이라 여기며 그녀들이 배운 데로 자식들을 가르치려 한다. 여학생만 보면 트집 잡고 싶어 하고 많아지는 신여성이 눈꼴시여 보이며 그들은 더 이상 바꿀 생각이 없어하니 답답함이 가득하여 불평불만을 쏟아낼 뿐이다.




**

신여성의 가치


나혜석의「경희」는 경희를 통해서 신여성이 받는 오해와 진실을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이야기가 드러나도록 그려지고 있다. 가까운 지인에서부터 간혹 마주치는 타인들 속에서 신여성이 사회의 지탄받는 모순을 답답해하며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여성 스스로 자각하여 깨어나길 바란다. 작품「경희」에서는 신여성의 가치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책정하고 있을까 이를 수치로 매길 수 있고 정당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은 경희의 어머니가 신교육을 받은 경희를 일본 재봉틀 회사 감독이 직접 와서 존대해 주고, 월급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말하는 대목이다.




일본서 졸업하고는 기어이 자기 회사의 일을 보아 달라고 하더래요. 처음에는 월급 일천오백 냥은 쉽대요. 차차 오르면 3년 안에 이천오백 냥을 받는데요. 다른 여자는 제일 많은 것이 칠백 쉰 냥이라는데 아마 그 애는 일본까지 가서 공부한 까닭인가 보아요. 저것도 그 애가 재봉틀에 한 것입니다. (중략) 종일 한 달 30일 악을 쓰고 속을 태우는 보통학교 교사는 많아야 육백스무 냥이고 보통 500냥인데 “천천히 놀면서 일 년에 병풍 두 짝만이라도 잘만 놓아주시면 월급을 꼭 사십 원씩 드리지요” 하는 말에 김부인은 과연 공부라는 것은 꼭 해야 할 것이고, 하면 조금 하는 것보다 일본까지 보내서 시켜야만 할 것을 알았다.

보통의 여성들이 700냥 받을 때 경희는 1500냥부터 시작해서 2500냥까지 급여가 늘고, 보통학교 선생이 500냥에서 620냥 받을 때 경희는 40원을 준다고 한다. 근대시대 화폐단위 개혁으로 구화폐와 신화폐를 겸용하여 사용했다. 10냥이 1원일 때 경희는 15원, 25원, 40원의 급여로 다른 이들이 받는 5원에서 7원 정도의 급여의 3배에서 8배 이상으로 대우를 받는다는 의미다. 신교육을 받고 거기에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경희는 일본어를 번역하고 신문물인 재봉틀을 다루고 다른 이들을 교육할 수 있으며 그 생산가치는 수작업보다 훨씬 웃돌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 생각된다. 많이 배웠기에 그만큼 생산 가치도 크다는 것이다. 경희가 졸업 후 전망 있는 회사에 취직이 언제든 가능했다. 신여성은 이러한 사실적인 부분만 보고서도 크게 와닿는 부분이 있지만 봉건적인 조선사회는 쉽사리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여학생이 시집 안 가고 공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림살이할 줄 모르고 그저 잘난 체하는 사내 같은 여학생쯤으로 여겨 그 부모까지 욕한다. 이렇게 사회 전체의 편견이 두껍고 인식을 바꾸기 어려워 신여성인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답답해한다.





나혜석 <수원 서호>



**

주변 인물 들의 성격


조선사회는 신문에서조차 타락한 여학생의 고발이 이어지며 민심조차 흉흉하다. 떡장수 어멈은 경희가 낮잠 자지 않고 무엇 하는 것 처음 보았다며 너스레를 떤다. 여학생은 으레 바느질이며, 밥도 할 줄 모르는 허수아비로 알았지만, 그 떡장수 어멈은 논리정연하게 경희에게 가르침 받아 자신의 잘못된 소견이 부끄러워 꼬리 감추고 만다. 이 밖에도 경희 어머니가 자신의 딸의 요모조모를 따져 일련의 일들을 사돈 마님에게도 전하니 그 사돈 마님도 내외시키던 손녀딸들도 공부 시키겠다고 결심한다. 잘못된 견해를 바로잡아주고 시대가 변하고 교육을 받는 여성이 앞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지성인으로 존중받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 강조하니 정말 그러한가 싶어 자신이 생각을 바꾸려 마음먹는다.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된 생각 바로잡아 다음 세대에 자손들은 어려움 없고 잘 살기 바라는 마음을 갖고야 만다.


집 안을 잘 아는 지인 수남의 어머니는 경희 어머니를 부러워한다. 자신의 일을 척척해나가는 경희가 부지런하고 민첩한 지혜롭고 의지가 있는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남편을 잃고 과부로 수남을 어렵게 키워냈는데 이제 며느리를 보아 행복하게 사는 날을 고대했으나 새 며느리는 17살에 시집와 8년이 넘도록 바느질도 밥하는 것도 못다 하고 가르치는 대로 망쳐놓으니 복장 터져한다. 자신의 어머니며 수남 어머니는 경희를 선망하며 대리만족한다. 집 안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교육받은 경희가 주도적 모든 일을 해나간다는 믿음이 생겨난다. 여성의 삶이 누구에게 의지되어야만 살아지는 삶에 진력이 나서 여성이 스스로 강하고 다부지길 바란다. 그저 시대가 자신의 팔자가 사나워 주어 진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에 낙담할 뿐이다.


경희 아버지 이철원은 딸을 공부시키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 딸을 시집보내지 않고 버티기 어려워한다. 딸의 혼사를 미루기에 늦은 나이라 여기며 더 이상 문벌 있고 재산 있는 혼처를 얻을 수가 없을 것만 같고 딸에게 불길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불안해한다. 딸이 부유한 집안 맏며느리로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시부모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세상만사 그만이라 여기며 딸 경희에게 늦추지 말고 시집가라 엄포한다. 그는 자신의 소신보다는 주변의 평판을 우선 살피고 있다. 딸을 흉볼까 걱정하고 딸을 어서 시집보내고 가족의 안위가 평안하길 바란다.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불행뿐 일 거라 여겨 세상 보는 시야가 좁고, 딸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권위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나혜석 <녹동 풍경>




나혜석의 단편소설「경희」는 근대소설 속에서 신여성상을 명랑하고 유쾌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구시대적인 관습에 사회가 경직되어 쉽사리 신여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와중에 경희라는 인물이 그 속에 어떻게 행동하고 나아가야 할지 내면을 상세히 그려나가고 있다. 신여성이 되기 이전에 그저 인간적인 동등한 대우를 받으려는 작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경희는 당장 직면한 결혼 문제로 자신의 의지가 꺾이고 있다. 사회 전반의 인식 또한 그녀 혼자만의 힘으론 이겨내기란 역부족함을 알고 있다. 대단한 여장부쯤 되어야 세상이 알아보고 인정해 줄만한 것이 되지 자신같이 작은 재주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고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 대목이다.



나 같은 것이 무얼 하나. 남들이 하는 말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가. 아아 과연 사람 노릇 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남자와 같이 모든 것을 하는 여자는 평범한 여자가 아닐 터이다. 사천 년래의 습관을 깨뜨리고 나서는 여자는 웬만한 학문, 여간한 천재가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 나폴레옹 시대에 파리의 전 인심을 움직이게 하던 스타엘 부인과 같은 미묘한 이해력, 요설한 웅변, 그런 기재한 사회적인 인물이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 (중략) 아아 이렇게 쉽지 못하다. 이만한 실력, 이러한 희생이 들어야만 되는 것이다.




「경희」는 당당하고 세련된 겉모습이 신여성의 전부가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여성의 모습과 거기에 경제적으로 여성이 자립할 수 있느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로 여기고 있다. 살림살이하며 가족 건사하는 것이 전부였던 존중받지 못한 여성들의 구시대는 흘러가는 강물처럼 이어져 왔다. 그 여성들의 삶이 그저 순종적이고 폐쇄적이고 억압된 삶이었을까. 그들이 일군 삶의 뿌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모든 걸 뒤엎는 자기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다음은 경희가 큰 번민에 휩싸이는 대목이다.



 경희는 생각할수록 그네들이 장하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도 시집가기가 어려운 것이 도무지 이상스럽다. 그 부인들이 장한가? 내가 장한가? 이 부인네들이 사람일까? 내가 사람일까? 이 모순이 경희의 깊은 잠을 깨우는 큰 번민이다. 그러면 어찌하여야 장한 사람이 되나 하는 것이 경희의 머리가 무거워지는 고통이다.




신여성상을 담은 여성문학의 선구자였던 나혜석은 신여성의 모습을 자기 모습을 투영하여 작품 속에 담았다. 자기 의지에 기반 한 반봉건적인 모습, 자유연애하고 남자와 같은 동등한 교육을 받아 여성으로서 뜻을 펼치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보겠다는 목소리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잘라서 말하려 하는 모습이 역력하기도 하다. 작가 나혜석은 신 앞에 기도드리며 자연만물 앞에 모든 것 있는 그대로 임을 표현하고 있고 경희 역시 스스로 ‘나’ 경희임을 신께 맹세하고자 한다. 다음은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인간의 고뇌하는 모습을 우연한 모습에서 자연의 이치처럼 깨닫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대목이다.



뜨거운 강한 광선이 별안간에 왈칵 대드는 것은 편싸움꾼의 양편이 육모방망이를 들고 자…… 하며 대드는 것같이 깜짝 놀랄 만치 강하게 쪼여 들어온다. 오색이 혼잡한 백일홍 활년화 위로는 연락부절히 호랑나비 노랑나비가 오고 가고 한다. 배나무 위의 까치 보금자리에는 까만 새끼 대가리가 들락날락하며, (중략) 저것! 저것은 개다. 저것은 꽃이고 저것은 닭이다. 저것은 배나무다. 그리고 저기 매달린 것은 배다. 저 하늘에 뜬 것은 까치다. 저것은 항아리고 저것은 절구다. 경희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그 명칭을 불러 본다. 옆에 놓인 머릿장도 만져본다. 그 위에 개어서 얹은 명주이불도 쓰다듬어 본다. 그러면 내 명칭은 무엇인가? 사람이지! 꼭 사람이다.




작품 속 경희는 동등한 교육을 받고 자유의지에 따라 충만한 삶을 살며 존중받고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경직된 봉건주의 사회에서 그 뜻을 펼치기 어려워지고 나약한 마음에 흔들리고 결혼을 마지못해 해야 될성싶은지 본인도 알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다. 그런 여성이 작품 속 경희뿐 이였을까. 작가 나혜석의 삶 또한 신여성으로서 활개 하지 못하고 낙담하기가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작품 속 경희는 나혜석의 의지를 다짐 받기 위한 고백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근대사회의 여성문학이 꿈틀하기 시작했다. 여성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아 나선다. 아버지에서 남편, 아들로 이어지는 여성이 그들의 부수적이고 의존적인 삶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살 권리를 찾을 방법을 탐구하고 있다. 그 시작이 교육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성의 공간은 집이다. 안채, 사랑채, 안방, 사랑방, 안마당, 대청마루, 부엌 등이 작품 속에서 등장한다. 집 구조의 가장 안에서부터 경희는 등장한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집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여성에게 집은 생의 처음이자 끝이다. 가장 안락하지만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다. 구 여성은 나의 집을 남편의 뿌리를 아들과 손자에게 이어갈 수 있도록 큰 버팀목이기도 한 곳이다. 여성은 이러한 연속성, 자신의 숙명, 희생을 감수하여 지켜나가는 곳이다. 경희는 자신의 집, 자신의 출발점에 서있다. 여성이 창조하는 인간 그리고 죽음 거기에 고통까지도 만드는 게 여성의 존재이기도 하다. 주거라는 공간이 집이라면 인간이 처음 만든 공간은 어머니의 자궁이다. 작가 나혜석은 경희라는 주인공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있으며 독자인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과 마주하길 고대하고 있다.





나혜석 <강변>




작가는 작품으로만 보아야 한다. 하지만 작가 나혜석은 근대적인 교육을 받아 봉건적인 삶을 거부하고 사회적 주체적인 여성으로 현실과 소설 속에서 드러난다. 현실에서 막히고 뿌리 뽑히고 흔들릴 때마다 어떠한 다짐을 했을까. 소설 속 경희의 모습에서 작가 나혜석으로 모습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 작품 속에서 근대시대 신여성 상이 어떤 오해들과 맞서고 투쟁하였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갖은 편견들과 질투와 억압 속에서 새롭게 다짐할 만한 의지를 어디에서 가지고 왔을까. 문학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여성들의 동질감, 공동체적 인식 변화가 점점 일어나 통합적인 사고에 다다르고 조금은 앞서 써 내려간 사람, 선구자들이 바로 작가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나혜석이 있었다.


<경희>에서 공간적 배경은 여성의 공간이다. 여성의 삶의 연속성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이어졌던 삶에는 여성의 침묵만이 남아있다. 여성의 공간에는 그 이어짐의 연속이다. 한 번도 의문하지 않았던 사실들 누구도 변화시키지 못했던 삶 그저 침묵하고 인내하였던 삶이었다. 세상이 바뀌어도 바뀔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공간에서 이룬 것들이 무엇일까. 부수적인 삶으로 그친 것은 아니다. 그네들이 있었기에 모든 것은 합을 맞춰 성과를 낸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여성들에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동등하지 못하다고 못 박았고, 인내하는 삶을 강요했다. 안락한 여성들의 세상에서 밖은 어떠한 세상으로 비추었나. 그것은 구시대적인 관습이 가르친 세상이었다.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세상 알아서도 안 되는 세상이라고 가르치고 순종했으며 그런 삶으로 생을 마감했다. 넓은 세상은 여성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 공간을 벗어나서 한걸음 나아간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나혜석은 생각했다. 경희의 한 걸음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작가 나혜석의 한걸음 또한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그녀들의 모습을 시대의 한편에서 보는 듯했다. 내가 한걸음 가보았으니 당신도 한걸음 나아가보지 않을 텐지 묻는다. 작가 나혜석은 단편소설「경희」를 통해 여성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실적으로 비추며 경희가 자기 자신을 마주하여 보도록 한다. 그러면서 작가 자신과 독자에게 같은 것을 바란다. 이전의 삶이 인간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위인만큼 대단하지 아니하여도 어떤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나의 어머니의 공간에서 나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작가는 작품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나. 그 시작이 교육에 있으며 한 사람의 바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대하여 여성을 삶이 고립되지 않고 열리길 바란다. 작가 나혜석은 그러한 실천적인 삶을 살아내고자 자신을 받치듯 작품 활동을 그치지 않고 내보인다. 사회의 지탄과 손가락질은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말년이 쓸쓸하고 외롭게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녀가 후회 한 톨 하였을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의 당당함을 되새기는 여느 독자 한 사람이 없었을까 분명히 존재하고도 남았으리라 생각한다.




나혜석 (자화상)




** KBS 한국 사전 - 나는 말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나혜석 (2008.10.11 방송)


https://youtu.be/VuHr0OdGFjg


- 경성을 뒤흔든 이혼고백서, “정조는 취미다” 1934년 8월 잡지 [삼천리]에 실린 글이 경성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화가 나혜석이 기고한 ‘이혼 고백서’. 나혜석은 이 글을 통해 자신의 결혼생활과 이혼 후의 삶을 밝히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다. 1년 후 그녀는 보다 파격적인 주장을 외친다.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오, 오직 취미이다”
- 조선 여자 유학생, 봉건을 말하다 “현모양처는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장려한 것이다” 1914년 도쿄여자미술학교에 입학한 나혜석. 그녀는 유학 생활을 통해 근대적 여성상을 받아들이고 유학생 잡지에 현모양처를 부정하는 파격적인 글을 싣는다. “현모양처는 이상을 정할 것도, 반드시 가져야 할 바도 아니다.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부덕(婦德)을 장려한 것이다”
- 어머니 나혜석, 금기를 말하다 1920년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 첫아이를 낳은 그녀는 ‘화가’와 ‘어머니’라는 위치에서 고뇌한다. 그리고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육아의 고통에 대해서 입을 연다. “잠 없고는 살 수 없다. 이런 것을 탈취해가는 자식이 생겼다 하면 이에 더한 원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는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 정의한다” 모성은 천성이라고 규정하는 남성들의 기존 관념을 거부하는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그녀는 모성은 인간으로서 자식과 관계를 맺으며 쌓아가는 경험적 인간관계라 주장했다.
- 이혼녀 나혜석, 제 권리를 요구하다 “조선 남성은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여자에게 정조를 요구합니다” 1927년 파리 랑송 아카데미에서 미술 수업을 받던 나혜석은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중 하나이며 천도교 대표였던 최린과 추문에 휩싸인다. 이로 인해 남편 김우영과 이혼하게 된다. 여자에게 재산 분할이나 양육권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나혜석은 돈도 명예도 자식도 잃은 상태로 이혼하게 된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정조관념이 남성과 다르다는 것을 절감한 그녀. 이에 나혜석은 정조 유린이라는 명목으로 최린을 고소한다.
- 인간 나혜석의 홀로서기 “나는 평생 처음으로 자기 힘을 의식하였고, 행복했습니다” 사회적 금기를 깨는 말들로 인해 나혜석은 사회로부터 고립된다. 가족과 친구 주변인들 모두가 떠나간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말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1948년 12월 10일. 나혜석은 서울 시립 자제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행려병자로 사망한다. 사회는 그녀에게 침묵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혜석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끊임없이 세상에 말을 걸고자 했다.

출처 : KBS 한국 사전(59회) - 나는 말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나혜석 (2008.10.11 방송)






나혜석은 53세에 길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 가진 것은 헌 옷 한 벌... 그녀가 남긴 것은 이름 석 자뿐이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회의 비난을 받았던 여인이었다. 경희를 보았을 때 명랑한 소녀를 만난 기분이었다. 지금 읽어도 어색함이 덜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품 속 주인공 경희의 그 모습 그대로가 작가 나혜석이었다면... 어떠한 결과라도 그녀를 매도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그녀의 뜻대로 이루어졌기를 바랐다. 실제 하는 삶이 고달팠어도 길 위에서 그녀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을 것만 같았다.


21세기 그녀가 바란 세상이 되었을까. 생각보다 진전은 느리다는 것이다. 여전히 여성은 어떤 보이지 않는 굴레에 갇힌 듯 스스로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지금의 행복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심하고 있는 순간 모든 연극은 끝나게 된다. 여성부 폐지를 논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여성에게 '자유'라는 두 글자에 얼마만큼의 지분을 갖고 있을까 이만하면 되었으니깐 더 생각하지 않는 정체에 다다른 것만 같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근대문학을 보면서 느끼는 점을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는 건 지루한 일일 수 있다. 의도하지 않고는 평생 읽지 않았을 나혜석의 작품이었다. 내가 방통대 국문학과를 다녔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어떤 계기로 내가 만나게 될 작가와 작품이었다. 절대 이런 계기 없이는 깊이 있게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로 그러했을 것이다. 나는 경희만을 읽고 나혜석을 알게 되는 이 자체로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혜석을 떠올릴 수는 있을 것 같다.


잠시지만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의 삶을 떠올리고 감사함을 느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