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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Nov 18. 2021

커피와 책

독서하며 나를 기록하다

나는 지금 진한 원두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다. 지금 시각은 오전 9시 36분이다. 일이 없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요즘 단순 기억력이 좋지 않다. 친구는 내게 노화, 노화!라고 외친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덜컥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독서하기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우선 우리는 나이가 마흔이 지났다. 스마트폰 생활이 얼마나 우리를 바꿔 놓았는지에 대해 얘기했고, 시력이 나빠져서 책을 오래 두고 읽기 어려워졌다고 푸념했다. 


책을 멀리한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두고 깊이 있게 읽은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나는 요즘 '문학의 세계 첫 장을 필사하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읽고 싶어지는 책을 골라 첫 장을 블로그에 기록하는 일이다. 생각보다 펼침은 많지만 기록되는 책은 손에 꼽을 정도로 나와 눈 맞춤되는 책이 적었다. 아니면 내가 정말 좋은 책을 고르는 힘을 잃은지도 모를 탓이다. 


이 프로젝트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책을 어떻게 찾아 나서야 하는지 감을 찾아가고 있다. 이전에 내가 얼마나 책을 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졌다.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이유는 독서하면서 나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 나를 스며들게 하고 시간의 테두리에 나를 새기는 것처럼 느낀다. 내가 읽은 책의 겉표지, 제목만 바라봐도 책을 읽었던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이것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책은 어쩌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책과 사람에게 나를 남기는 일이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내가 '문학의 세계 첫 장을 필사하다'에 남긴 글이고, 그것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들을 기록해보았다.




내 인생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이것은 내 고백이다. 내가 고백 속에서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는다면, 그건 털어놓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불안의 서_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는 제목에서부터 내가 가진 불안이 나의 정신이 얼마나 얇은 유리 같은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내가 가진 이 불안한 마음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책이다. 불안이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벗어나고 말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런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이런 불안이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에 의해 어떻게 쓰이게 되었는지 그것이 무척 궁금하다.





책을 고르다 유독 헤르만 헤세의 책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았다. 헤르만 헤세의 매력은 좋은 선생님, 인생 선배 같은 느낌이 있다. 나는 <유리알 유희>를 읽은 지 오래되었는데 그 책이 헤르만 헤세의 결정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신이 가장 바라던 일, 안타까움, 희망, 미래, 그런 마음이 느껴졌었다. 그 책을 읽고는 헤르만 헤세의 유명한 문학책은 읽지 않고 미뤘다. 이전 책이 강렬하여서 조금 잊힌다면 읽어나가야지 하는 소소한 다짐을 했었다. 그러다 이번엔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를 접했는데 헤르만 헤세의 소박하고 겸손한 글을 읽고 나니 내 마음에도 잔잔한 물결이 일렁였다. 





여성작가를 특별히 여기지 않는다. 작가는 작가이지 성별을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배운 데로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더 그래서 눈에 담고 더 분석하고 그녀의 생각의 흐름이 무엇이 다른지 낱낱이 살펴보곤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세상이 어떻게 여성을 구분 지었는지 그래서 그 여성을 어떻게 이겨내고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글을 써왔는지 알게 된다. 페미니즘이 무엇이길래 단지 인간만 있을 뿐인데 그저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답답함을 남게 한다.





로맹 가리, 파스칼 키냐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로베르토 볼라뇨는 무척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너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느낌을 갖고 싶었는데 드디어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다른 책들을 살펴보았는데 조금 어렵다는 느낌도 받았다. 가끔 어떤 작가는 진입벽이 너무 높아 넘어갈 엄두가 안 난다. 영원히 넘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팔월의 빛>의 리나 , <파시>의 수옥은 우리의 시선을 끌고 가는 주인공인데 이 연약한 주인공이 꼭.. 희망을 찾길 바란다. 





책들이 많고 어떤 이들은 읽을 만한 책을 모아 요약하고 편집해서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것들을 취합하여서 통합적인 사고를 하며 연구하기에 이른다. 나는 갑자기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가 떠오른다 



<금각사>에서 나만의 결말로 여기는 부분이 있었다. 금각은 모든 무력의 근원인데 주인공 미조구치는 자신의 마음을 빼앗은 금각에게 작별을 고하지 않는다. 무력함으로부터 멀어지며 무의미함에 운명을 건다. 오로지 자신은 사라지고 출발에 대한 생각만을 한다. 이별과 출발의 통일적인 감정, 미지의 세계로 간다.


나는 단순히 통일적인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책은 하나하나 이면서 한 덩어리가 되기도 하고 나를 나눠 새기기도 하면서 하나로 완성시킨다. 글을 쓰는 작가들이야 말로 무엇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걸까를 생각하면 그것은 자신이 본 것, 깨달은 것, 우리에게 밝히고자 하는 것인데 그것은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사회적인 것, 인류애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것이다. 


2021.10.20 - 2021.11.17까지 내 손에 닿았던 책들이었다. 전부를 읽지는 못하여도 나는 그 책들과 작가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에 나의 생각의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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