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힐링이 포인트였다. 여행 가기 전 마음속 부채감을 떨치기를 바랐고, 출발만을 상상했다. 여행 계획은 쥐약인데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자평했다. 모호한 여정을 실현시키는 것이 여행 계획이다. 나는 한 달간 짧게 그것을 여러 번 세우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여행 계획의 묘미를 알아갔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날씨가 관건이었다. 되도록 걷고 싶었고, 나에게는 12월뿐이었고, 나는 마흔둘을 잘 보내고 싶었다.
당일이 되자 항공 온라인 체크인 중 취소되는 상상이 되풀이되었다. 불안과 초조를 한꺼번에 느끼기 시작했다. 5년 만의 특별한 여행이다. 여행 전날이 되어서야 셀카봉은 C타입 젠더 없이는 사용이 안 됐고 C타입 젠더를 사느니 그 값으로 셀카봉을 새로 구입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그 사람은 자신의 갤럭시 노트 펜슬을 떠올렸고 우리는 셀카봉을 들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셀카봉에 폰 연결선은 필요 없어져 칼로 잘라 내었다. 영구적인 것이란 이런 것!
전날 캐리어에 짐을 쌌다. 20kg가 안 넘을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출발하는 날조차 우리는 다시 돌아오는 날을 위해 청소를 시작했다. 씻고 정리까지 12시 10분. 우리는 모바일 탑승권을 받아 든 채 출발했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14시 45분. 우리에게는 시간이 충분했다.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했지만 예전의 기억이 쓸모없음을 느낄 때를 느꼈다.아, 국내선 쪽으로 진입했어야 했는데...
저번 주중만 해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비구름이 잔뜩 낀 날의 연속이었다. 부산 날씨, 제주 날씨를아침마다 아니 시시때때로 확인했다. 비가 왔을 때 취소할 예약이 무엇이 될지 여행마저도 취소해야 될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려했다. 여행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볍고 하찮게 여겼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그 쉬운 '괜찮아'란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나와 같이 불안하고 초조하면 여행을 어떻게 갈까 싶다. 걱정은 나 혼자 사서 하고 정작 해결을 자기가 한다고 그 사람이 투덜거렸다.
낮 기온이 오르고 있다지만 비가온 뒤라 여전히 바람이 찼다. 작은 구름 사이에 낀 해를 보며 순조롭게 비행을 했다. 체감상 타자마자 곧 도착이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안도했다. 예약한 모든 것을 취소하는 불상사는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제주에 대해 상상했다. 내가 지식으로 알던 제주는 그대로 일지 궁금했다. 제주에 대한 환상은 나에게도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는 곳이 제주라지만 나처럼 처음인 사람도 있을 테다.
부산에서 제주로 출발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행 계획을 나름대로 세우고 다시 의논하다 보면 그것을 허물기가 아쉽지만 여유 있는 다음 행선지가 더 마음에 들어서 잊히곤 했다. 다시 차곡차곡 쌓이는 여행노선, 그 시간들, 그 결을 다듬다 보면 이전의 아쉬움이 다소 누그러졌다. 어쩌면 이곳저곳 모든 곳을 가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여행을 어그러트릴지도 모르겠다. 한 방향으로 한 번에 한 걸음씩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예쁜 카페도, 예쁜 박물관도, 예쁜 공원도 필요치 않았다.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원했다.
우리가 가고자 한 곳은 결국 하루에 2군데로 모아졌다. 간단했다. 그곳에 간다. 걷는다. 돌아온다. 얼마나 많이 두 발로 이동하고 숨 쉬고 기쁘게 했는지 기록하는 일이 전부였다. 너무 간단하여서 제주를 제대로 둘러보고 오는 건지 의심이 들만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더 추가해서 빼곡했으면 여유 없고 피곤해질 뻔했다. 이튿날까지는 그날의 기록까지 해보려고 했는데 삼일 차에서부터 포기했다. 폰은 접어두고 걷기에 몰두하고 머리를 쉬어주었다.
제주공항에서는 차마 느끼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제주의 청량한 공기로 호흡하는 일이 가장 행복했다. 부산과 다른 공기 차를 느낄 수 있었다. 부산의 바닷바람은 거칠고 부산 사람만이 알고 있는 짠맛이 있다. 제주 또한 온화한 날에만 느낄 수 있을테지만, 바다 한가운데 섬이라 그런지 바닷물 냄새가 고이지 않고 통과하여서 청량함을 유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지에 닿아서 고여지는 바닷 짠내는 짭조름한 맛이 있다. 먹을 때까지 그 맛을 모르는 짠내. 이해하기 위해서는 살아봐야 하는 그 짠내.
제주는 바위 사이에 나무가 자라는 곶자왈처럼 초겨울 풀잎에도 이슬이 맺히는 자연 온실인 것처럼 가슴속에 오래 묵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여지지 않는 것도 아닌 청량하고 따뜻하게 품는 내음이 있다. 그 온화함으로 모든 것을 치유하면서 유지해내는 듯했다. 다시 곁에 있고 싶은 느낌. 있는 줄 없는 줄 모르게 곁에 다가온 듯한 제주였다. 다소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지만 이 정도는 봄바람, 꽃샘추위 같은 정도였다.
마흔둘, 먹부심
숙소서 짐 정리 후 루프탑으로 올라 제주공항 주변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평평한 지대 넘어 바다를 보며 제주에 왔다는 실감을 했다. 완전히 해가 저문 시간이 돼서야동문 야시장으로 향했다. 소문난 횟집이 있었으나 8시 마감이라 놓치고 말았다. 아쉽지만 다른 가게로 이동했다. 제주에서의 목표는 저녁마다 대방어 잔치를 벌이는 거였다. 다음날 우리는 그 횟집에서 내리 3일 동안 방어를 먹어 치우고 말았다. 특별한 주문은 '방어 두껍게 썰어서 주세요'였다. 마흔둘 먹부심에 뿌듯해했다.
아마 3배는 두껍게 썬 방어였다. 우리 동네 착한 횟집에서도 이 맛은 안나더라는 진실을 맛보고야 말았다. 싱싱한 방어는 제주에서 부산까지는 온다지만 오는 동안 그 아이들도 스트레스받고 질이 떨어지는 탓에 먹다가도 마지막 순간 방어의 비릿한 맛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데 여기 제주 방어는 진실로 싱싱했다. 먹는 내내, 마지막 한 점을 먹는 그 순간까지도 어떤 비린맛을 느낄 수 없었다. 깔끔한 맛 그대로 마지막 한 점까지 해치우고 나서 정말 배부르고 행복했고, 다시 이 방어를 먹으러 제주에 오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했다.야시장은 사람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서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왔다.
제주에 온 걸 실감하기 위해서 나는 지리적 위치와 내 삶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알아가려고 했으나 전혀 다름을 모르겠어서 진짜 제주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좀 더 도시가 아닌 곳에서 나는 제주를 발견할 수 있을까? 내가 상상했던 제주를 알려면 한 달 살기 정도는 해야 할까? 나는 영영 모른 채 제주를 떠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에 내일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름 소소한 자축을 하며 씻고 잠들었다. 더워서 땀 흘리다 난방온도를 낮추었다 밤에 기온이 떨어져 추위에 떨었다. 밖도 아니고 안에서 추위에 떨다니 첫날의 미스테이크!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