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서 샌드라 거스, 메리케이 윌머스 저
소설의 서두를 제대로 쓰지 못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혹은 출판 기획자나 편집자에게 인정받을 만한 책을 쓰고 싶다면, 이 안내서는 바로 여러분을 위한 책이다.
편집자가 원고의 출간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곳은 소설의 서두다. 여전히 독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책을 구입할지 말지는 소설의 서두가 얼마나 뛰어난가에 달려있다. 출판 기획자나 편집자, 독자가 처음 몇 쪽만 읽어보고 책 전체 내용과 집필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서두의 힘이 약하다면 소설의 나머지 부분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책을 시작하는 처음 몇 쪽은 실제로 책을 파는 마케팅 수단이 된다. 독자가 어떻게 책을 구입하게 되는지 생각해 보라. 대부분의 독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구입한다. 책 표지 혹은 제목에 관심이 끌리면 표지에 있는 소개 글을 읽는다. 내용이 흥미로우면 독자는 대부분 책을 펼쳐 첫 페이지부터 읽어 볼 것이다. 소설의 첫 10퍼센트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 미리 보기를 다 읽은 독자가 그다음 내용이 궁금하면 마침내 책을 구입하게 된다.
원고를 거절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원고의 서두가 관심을 사로잡지 못했거나 작가가 서두에서 흔히 하기 쉬운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서두의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서두에 갈등이 전혀 없거나 잘못된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등의 실수이다.
독자가 계속해서 책을 읽게 만드는 서두는 다음과 같다.
1. 어디에서 이야기를 시작할지 결정한다.
2. 깊은 인상을 남기는 첫 문장을 쓴다.
3. 첫 페이지에서부터 독자의 관심을 낚는다.
4. 지루한 서두, 진부한 서두, 독자의 오해를 사는 서두를 피한다.
5. 서두에 프롤로그를 넣는 것이 과연 좋은 생각인지 판단한다.
6. 가능한 한 소설의 초반부에서 독자가 이야기에 감정을 투자하게 만든다.
7. 인물과 배경을 소개한다.
8. 이야기의 시점을 확립하고 시제를 설정한다.
9.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기세를 멈추지 않으며 이야기 안에 배경 이야기와 묘사를 엮어 넣는다.
10. 어떤 종류의 서두를 피해야 하는지 이해한다.
11. 이야기의 3막 구조를 이해하고 1 막을 이루는 구성 요서를 파악한다.
12. 독자가 계속해서 다음 장을 읽고 싶도록 장의 끝부분을 마무리한다.
초고를 쓸 때 서두를 완벽하게 쓰기 위해 지나치게 근심할 필요가 없다. 수많은 작가들에게 초고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과정이자 인물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책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책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고 서두에 해당하는 장을 어떻게 고쳐 써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서두 부분을 쓰고 다음으로 넘어간 후 나중에 다시 서두로 돌아오라. 아니면 첫 장을 건너뛰고 2장 혹은 나중에 나오는 장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도 좋다.
플롯을 짜는 작가와 즉흥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 모두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소설을 쓰는 데 있어 올바른 방식, 잘못된 방식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 있을 뿐이다. 글쓰기 방식을 플롯 짜기와 즉흥적인 글쓰기가 양극단에 존재하는 하나의 연속체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는 그 연속체의 어느 지점에 존재한다.
1막의 중요한 4가지 요소는 일상 세계, 격변의 사건, 소명의 거부, 되돌아오지 못하는 지점이다. 일상 세계 부분은 주인공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재빨리 보여주는 스냅사진 같은 것이다. 주인공은 어떤 부류이며, 성격의 특징, 결점, 목표 등을 보여야 한다. 주인공과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격변의 사건이 일어나 주인공을 염려하게 만들어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기고 알고 싶어 계속 책장을 넘기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마지막 장면은 거울에 비춘 듯 비슷하다. 순환 결말이라고도 부른다.
일상 세계를 흥미롭게 꾸미고, 사건을 암시하고, 주인공에게 목표를 부여하며, 갈등에 봉착하고 문제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는 인물의 결점이나 두려움, 잘못된 신념을 드러낸다. 실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독자는 금세 지루해할 것이다. 지금의 현상 유지 상태를 붕괴시키고, 주인공을 안전한 장소에서 끄집어내며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 필요가 있다. 격변의 사건, 모험에의 소명, 소동, 기폭제라 부르기도 한다.
책을 여는 첫 장면, 첫 문단에서 독자의 마음속에 일어난 의문 몇 가지에 답을 해주게 되겠지만 독자가 계속 책을 읽어나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동시에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소설의 1장 전체에 걸쳐, 그리고 이야기 나머지 부분에서 의문들을 이곳저곳에 흩뿌려 놓으라. 독자는 마치 빵 부스러기를 따라 길을 찾듯이 그 의문들을 따라오게 될 것이다.
첫 문장의 힘 - 샌드라 거스 저
이야기의 서두는 소설의 첫 단어에서 시작하며, 주인공이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하는 곳에서 끝난다. 예를 들어 살인 미스터리에서 탐정이 사건 의뢰를 수락하는 순간, 수잔 콜린스가 쓴 『헝거 게임』에서 캣니스가 조공인으로 자원하는 순간,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에서 루크 스카이워커가 오비완 캐노비와 동행하여 반란 연합에 합류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이다. p.20
하지만 사람들은 습관의 동물이며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주인공은 행동을 촉구하는 부름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는 처음에는 오비완을 따라 반란 연합에 가담하기를 거부한다. p.61
우리 마음속에 일단 어떤 의문이 떠오르고 나면 우리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아내고 싶어 하며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책을 읽게 된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예로 앤디 위어가 쓴 『마션』의 첫 문장을 살펴보자. --- 나는 완전히 망했다. p.88
적대자는 1막이 끝나기 전에 소개되어야 한다. 설사 1막에서 적대자의 모습이 직접 등장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존재를 사전에 암시해야만 한다. J. K.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그렇게 했다. 우리는 1권의 1막에서 볼드모트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가 해리의 부모님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117
샌드라 거스는 작가이자 편집자로, 자신의 글을 쓰는 한편 시간을 쪼개어 다른 작가들의 글을 고치고 다듬는 일을 하고 있다. 심리학 학위를 딴 후 8년 동안 심리학자로 일했고, 현재는 전업 소설가다. 그는 소설을 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먼북트레이드아카데미Academy of German Book Trade에서 편집자 자격증을 받았다. 지금은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출간하는 작은 출판사 일바퍼블리싱Ylva Publishing에서 선임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필명인 ‘재Jae’로 14편의 장편소설과 20여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재의 소설은 수없이 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아마존에서 여러 차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또한 샌드라는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제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기술을 되새기고 복습하면서 각각의 장면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계속해서 고쳐 쓰라.
첫 문장의 힘 - 샌드라 거스 저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세부 사항을 충분히 전달한 끝에 독자가 결론을 스스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인물의 오감을 통해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 그 사고를 목격하고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과 다친 사람들의 비명을 직접 듣는 일과 같다.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독자가 실시간으로 어떤 활동과 대화가 벌어지는 장면을 지켜보도록 만드는 일이다. 독자는 시점 인물의 경험에 깊이 동화한 채 소설 속 현재에 머물게 된다. 머릿속에 구체적이고 상세한 그림을 그려낸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극적 각색이다.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여 능동적인 참여자로 만든다.
독자는 소설 속 이야기를 직접 경험하며 인물의 고난 가득한 여정을 함께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 목표는 '말하기'가 아닌, 오직 '보여주기'를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묘사의 힘 - 샌드라 거스 저
독자는 계속해서 자신이 읽는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그저 제시된 결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해석해야만 한다.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면서 해답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때문에 독자는 이야기 속 세계에 사로잡힌 채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보여주기'에서는 독자에게 인물의 행동과 몸짓언어, 표정, 대화를 묘사한다. 그러면 작가가 인물의 상태를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독자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독자는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 싶어 한다. 시각뿐만 아니라 감각을 활용해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게 좋다. 부사나 형용사보다는 강한 능동적인 동사로 바꾸는 것이 낫다.
"혹시 콧잔등이 하얀 검은 새끼 고양이가 돌아온 걸 보지 못했소?"
'보여주기' 글을 쓰는 9가지 요령
1. 오감을 활용하라
2. 힘이 강하고 역동적인 동사를 사용하라
3. 구체적인 명사를 사용하라
4. 인물의 행동을 잘게 쪼개라
5. 비유를 사용하라
6. 실시간으로 활동을 보여주라
7. 대화를 사용하라
8. 내적 독백을 사용하라
9. 인물의 행동과 반응에 초점을 맞추라
독자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영화가 상영되기를 바란다. 장황하고 길게 묘사를 늘어놓지 마라. 현대 독자들은 바로 사건에 돌입하고 싶어 한다. 한꺼번에 정보를 길게 늘어놓는 대신 이야기 사이사이에 묘사를 조금씩 흩뿌려 넣어라. 가장 뛰어난 묘사는 정적인 묘사가 아니라 동적인 묘사다.
가장 뛰어난 묘사는 인물의 외모와 함께 성격까지 드러낸다. 배경에 대해 그저 사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이 그 배경을 어떻게 느끼는지 보여주라.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피하라. 말하지 않고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신체적 반응, 몸짓언어와 행동, 얼굴 표정, 대화, 내적 독백, 배경 묘사, 오감, 비유)이 있다.
독자가 반드시 알고 지나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보라. 그렇지 않다면 그 정보를 생략하라. 과도한 보여주기는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야기 속도가 느려진다. '말하는 것이 '보여주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 일 수 있다. 생략은 중요하지 않은 세부사항, 장면 전환, 되풀이하여 등장하는 정보, 반복적인 사건, 속도, 맥락, 서스펜스, 초고다.
글 솜씨를 키우는 유일한 방법은 글을 직접 써보는 것뿐이다. 글은 고칠수록 빛난다. 묘사의 힘은 오직 쓰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의 프로그램은 누구나 글을 쓰게 만든다. 고치도록 한다. 자기 세계를 글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 시작은 했지만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신이 없는 예비 작가, 현재 쓰고 있는 장면이 좀처럼 풀리지 않아 마음이 꺾인 작가라면 이 책을 곁에 두고 자주 펼쳐보라. 13개의 챕터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막혔던 문장이 짜릿하게 풀린다. 중요한 것은 좌절하지 않고 계속 쓰는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마주할 수 있는 온갖 어려움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시한다.
묘사의 힘 - 샌드라 거스 저
시점을 다루는 기술을 제대로 갖춘 작가는 독자가 주인공에게 공감하게 만들고, 독자를 이야기 안에 몰입시키고, 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부터 마지막 책을 덮는 순간까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영화보다 소설이 더 좋았다고 느낀 이유는 바로 시점 때문이다.
독자는 바로 이 시점이라는 렌즈를 통해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지켜본다. 시점을 그저 글쓰기 기술 중 하나 정도로 치부할 수 없다. 시점은 뛰어난 소설을 쓰기 위한 기초이자, 소설의 여러 핵심 요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토대 역할을 한다.
화자란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 혹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말한다. 화자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일 수도 있고,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인물들을 관찰하고 독자에게 소설 속 사건에 대해 전해주는 보이지 않는 존재일 수도 있다.
시점의 유형
대부분의 소설은 1인칭('나'라는 대명사) 시점이거나 3인칭('그' 혹은 '그녀'라는 대명사) 시점이다. 3인칭 시점은 다시 몇 가지 하위 유형으로 나뉜다.
1인칭 시점 : 화자는 소설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다. 독자는 이 인물의 느낌과 생각만을 접할 수 있다.
1인칭 관찰자 시점 : 조연급 인물이 화자로 등장하는 경우다.
2인칭 시점 : 화자는 외부의 관찰자. '너'라는 대명사로 독자에게 주인공의 역할을 맡기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시점에서는 오직 화자의 생각과 감정만이 드러난다.
3인칭 전지적 시점 : 화자는 소설의 등장인물이 아니며,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종종 독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존재다. 이 시점에서 화자는 모든 인물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3인칭 제한적 시점 : 화자는 소설의 등장인물이 아닌 중립적 관찰자다. 화자는 오직 한 인물의 머릿속만 들여다볼 수 있으며 오직 이 인물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만을 독자에게 말해줄 수 있다.
3인칭 깊은 시점 : 1인칭 시점과 마찬가지로 화자는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이다. 3인칭 제한적 시점과 마찬가지로 독자는 오직 한 인물이 생각과 느끼는 것만 접할 수 있다.
3인칭 다중 시점 : 이 시점은 3인칭 제한적 시점이 변형된 유형이지만 3인칭 깊은 시점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화자는 소설 속 등장인물일 수도 있고 중립적인 관찰자일 수도 있다. 화자는 각 장면마다 한 인물만의 생각과 느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작가는 장면이나 장이 바뀔 때 다른 인물로 시점을 전환할 수 있다.
3인칭 객관적 시점(3인칭 관찰자 시점) : 화자는 마치 카메라처럼 외부에서 사건을 지켜보는 중립적인 관찰자다. 따라서 소설 속 어떤 인물의 생각이나 느낌도 드러낼 수 없다.
각각의 시점에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 결국 내가 지금 쓰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조언도 실제 적용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자신과 자신의 소설에 가장 잘 맞는 시점 유형을 찾아낼 때까지 여러 가지 시점 유형을 찾아낼 때까지 여러 가지 시점 유형을 시도해 보아야 한다.
다른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어떤 시점으로 쓰였는지 의식적으로 눈여겨 보라.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고, 소설 속 세계에 대한 정보를 드러내고, 독자가 인물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저자가 시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작가들은 자신이 읽는 책에서 글쓰기 기술과 창의적인 표현을 발견할 때마다 따로 적어두기도 한다.
장편 서평이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보면, 소설 도입부와 꼭 닮은 경우가 무척 많다. 마치 서평가가 줄거리를 요약한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만 같은 도입부인데, 소설가 입장에서 보면 독자들이 서평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버릴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어떤 서평은 다른 종류의 이야기, 즉 서평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설의 특징을 언급하며 시작하는 서평도 있다.
다양한 도입부는 소설에 대한, 또 서평을 쓰는 행위에 대한 다양한 태도를 보여준다. 소설의 이데올로기가 있듯 서평의 이데올로기가 있고, 소설의 관례가 있듯 서평의 관례가 있다. 그런데 이 둘이 반드시 겹치는 것은 아니다. 정기적으로 글을 실어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한 서평가라면 자신이 느낀 점 위주로 소설을 설명할 것이다.
서평가들이 가진 공통점은 그들 모두 어느 정도 재창조, 즉 소설가들이 이미 빚어놓은 것을 새로이 빚는 일에 가담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흥망은 서평에 달려 있지만 서평가가 쓴 책에 대한 설명-언론사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빌리자면 서평가의 '스토리'-이 흥미로운가를 결정짓는 것은 책이다.
서평가는 오래된, 있는 그대로의 독서의 기쁨을 때로 잊는 것 같지만, 즐거움 그리고 작가가 의심과 혼란을 담아내기 위해 취하는 '고결한' 조치가 상충한다는 사실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예비 독자들은 소설이 가진 정신을 그대로 담아낸 서평보다는 이런 소설(요즘 전형을 탈피한 소설_여러 개의 플롯, 목록, 농담, 옛이야기 다시 쓰기로 이루어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알려주는 서평을 더 반길 것이다.
어떤 소설 안에 서평이 이미 담겨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서평 안에는 서평가의 소설이 담겨 있다. 이는 해석의 다양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소설을 소설적으로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이고, 그에 따른 훼방도 있다는 게 단점이다. 모든 인물의 우여곡절에 공감한다고 공언하는 서평가는 우리에게 자신의 감상을 지나치게 많이 이야기한다.
고급 출판물일수록 서평가도 자기 자신을 덜 내세우거나 혹은 덜 내세우는 듯 보인다. 대중 신문에 그는 솔직하고도 복잡하지 않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개인적인 고통, 소설을 대상으로 상을 하사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통 사람이 가진 보통 사람의 상식선에서 글을 쓴다고 여긴다. 더 진지한 학술지나 신문에 글을 싣는 서평가는 전문성을 보여줌으로써 본인에게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어떤 지면에 실린 것이건, 아마 서평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서평에서 다룬 소설 자체를 읽어보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평은 소설의 대체물로서, 서평을 읽는 이들에게 서평가의 경험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을 더해준다. 그렇기에 서평가가 소설 속에서 삶이 기록되는 방식에 흥미를 보이는 것이리라.
작가가 불분명하게 표현해냈다고 높이 평가받은 그 무엇을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것 또한 서평가의 할 일이다. 상세하게 진술하고, 근거에 기반을 두고 추정하는 것. 소설가는 설교해서는 안 될지 모르나 서평가는 매번 설교를 일삼는다. 반면 칭찬은 서평가들에게 무엇보다 어려운 과업이다.
서평의 결말은 소설의 결말과 다르다. 독자가 바라는 바와 서평가 자신이 바라는 바는 같다. 절제되고 두드러지지 않는 참신함, 소설의 장점에 대한 정교하면서도 정황적인 설명, 그리고 이에 대한 진실한 감상이다.
40여 년간 《런던 리뷰 오브 북스》를 이끌며 무수한 명저의 행간을 톺아본 윌머스가 마침내 다다른 결말은 이것이다. 세계는, 그리고 인간과 삶은 결국 그 하나하나가 고유한 서사이자 한 권의 책이며 그것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히 ‘읽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
서평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 여성 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에 대하여
아무리 읽었다고는 하지만 소설 쓰기는 정말 어렵다. 재미로 쓰기 시작한 글이 있는데 내 이야기는 시작과 동시에 멈춰버렸다. 어떻게 인물들을 움직여야 될지 전혀 모르겠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왜 내 인물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게 참 궁금하다. 그래서 이 책이 읽고 싶어졌나 보다. 전체적인 이야기 대략적으로 만들었고 서두에서 진전이 없었다. 어떻게 뭘 시도해도 쓰는 내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재밌는 그런 이야기가 술술 써지면 좋을 텐데.. 아쉽다.
여기에서 피해야 하는 서두 쓰기 예시가 있었는데 골고루 한 번씩 썼구나 싶어서 우스웠고, 머리로는 알지만 쓰기가 어려운 멋스럽고 강렬한 첫 문장 만들기, 인칭의 시점, 배경과 행동을 적절히 섞어 묻어가듯이 활용해야 한다는 점 등 다시 차근히 예시와 함께 연습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요즘은 글쓰기도 배우러 가는 마당인데 혼자 독학이라고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방통대 과제물 내고 점수를 받긴 했지만 좀 와닿지가 않았다. 다시 하려니 그것도 할 마음이 적극적이지 않아서 중단된 상태다.
짧은 엽편 소설이라도 써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시각적인 것이 우세라고 하지만 다시 블로그 게시물 수가 조용하게 늘고 있다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이 글이 아닐까. 꼭 작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독서와 글쓰기는 누구나 갈고닦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좀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포함이 될 테다.
작가가 보여주려 한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과 다르게 쓰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 책에서는 '보여주기' 기술을 연마하는 법까지 소개해 주고 있다. 말하기의 예시를 띄우고, 보여주기 빈칸에 직접 써보고, 다음 장에 보여주기의 답을 확인하고 고쳐 쓰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고 있다. 이렇게 하고 나면 한결 '보여주는' 법에 대해 몸으로 배우게 된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직접 쓰는 게 안되는 나로서는 몸으로 배우는 기분이었다)
소설 쓰기는 방통대 과제물로 두 번 제출했었다. 그중 한 번은 주인공이 나여서 움직일 수 있었는데 두 번째에는 새롭게 만든 주인공이어서 그 내면까지 파고들어서 성격, 가치관, 주변 인물, 배경,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만들어야 해서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시놉시스를 하나 만들고 서두를 쓰다가 그다음 장면 전환이 썩 내키지 않아서 주인공들이 멈춰버렸다. 무르익도록 두었다가 본 듯이 쓴다는 작가들의 말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챗 GPT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얼마 전엔 4.0버전까지 나왔다고 하던가. 딸의 생일 축하 PPT 마저도 사진과 글을 조합해서 멋지게 만들어내고, 내가 원하는 시인의 형식으로 시를 창작하고, 좋아하는 장르로 소설 쓰기를 하고, 회사 보고서 작성하기, 대학 리포트, 국회 연설문 등 그 사용이 무궁무진해서 따라갈 수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챗 GPT로 만든 책도 나왔다.
앨런 제이콥스가 말한 고전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라면 문제이지 고전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쓰는 사람, 읽는 사람이 정해져 있듯이 그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도 따로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카프카가 살아있다면 그다음 소설은 어땠을까? 챗 GPT는 그의 소설을 분석해서 그가 그다음으로 선보였을 책이 이쯤 될 겁니다 하고 만들어 낼까? 다음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카프카가 더 이상 없는 세상이 분명한 데서 오는 여백에서 더 무궁무진한 뒷이야기를 나름대로 상상하며 기꺼이 주어진 것들로 만끽하는 것이 아닐까.
시점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쓴다기보다는 글을 일단 써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썼기 때문에 이야기에 어색함 이 없도록 단지 그것만 염두에 두고 썼던 기억이 있다. 분명 시점에 대한 교과서적인 걸 읽은 기억이 있지만 머리로 아는 걸 딱 맞춰서 쓴다는 건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 읽고 나서 앞서 방통대 과제물로 쓴 2편의 글이 3인칭 다중 시점과, 3인칭 제한적 시점으로 쓴 글이란 걸 알았다. 뭘 알고 썼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쓰다 보니 쓰였었다. 지금 읽어보면 흥미롭게 읽히진 않고 설명하기 급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샌드라 거스는 시점마다의 장, 단점과 추천 장르, 참고 작품, 연습문제 등이 있다. 이것을 바로 읽는 것보다는 자신이 쓴 글을 두고 설명을 대입해 들으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것을 순서를 바꾸는 일이 어렵다는 걸 안다. 그래도 일단 소설 쓰기 해보고 어디에 시점을 두고 썼는지 차차 알아보길 추천한다.
3인칭 제한적 시점의 글
https://brunch.co.kr/@roh222/416
3인치 제한적 시점 / 장점
1) 인물에 대한 친밀감과 정보 전달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2) 1인칭 시점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글을 쓸 수 있다.
3) 인물의 목소리에 반드시 얽매일 필요가 없다.
4) 3인칭 제한적 시점에서는 독자가, 그리고 주인공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조성할 수 있다.
5) 같은 책 안에서 여러 시점 인물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3인치 제한적 시점 / 단점
1) 시점 인물이 알아차리는 것들만 보여 줄 수 있다는 제약이 있다.
2) 1인칭 시점보다 시점 위반을 피하기 한층 까다롭다.
3) 시점 인물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가라는 까다로운 난제가 있다.
3인치 제한적 시점 / 장르 - 현대 소설
독자가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길 바란다. 가능한 한 폭넓은 독자층을 끌어들이고 싶다. 3인칭 제한적 시점은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점이므로 어떤 장르의 소설이든 이 시점은 안전한 선택이 될 것이다.
3인치 제한적 시점 / 난제
시점 인물에 대한 묘사, 다른 인물의 눈을 통해 시점 인물의 모습을 묘사한다. 시점 인물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생각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마련한다. 대화를 활용해 시점 인물의 모습을 묘사한다. 시점 인물에게 신체적인 특징이 드러나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시점 인물이 다른 인물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게 만든다.
독자에게 묘사를 한꺼번에 무더기로 쏟아내지 않는다. 쓰고 있는 소설 장르의 관습을 염두에 둔다.
나에게도 서평의 역사가 있다. 블로그 시작 2005년이지만 서평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14년도다. 사실 2008년부터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썼지만 모두 비공개 처리를 했다. 끄적끄적 쓴 글들이 부끄러웠다.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이 나에게 터닝포인트였는데 읽고 한 문장으로 이어서 쓰는 방식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아직도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난독증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조병영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를 통해서 책을 읽지 못하는 트리샤 같은 아이였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되었다. 읽기 능력이 부족해서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어내기가 힘겨웠다. 지금은 평범하게 읽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메리케이 윌머스 『서평의 언어』을 만났다. 블로그 이웃분들의 서평을 보아와서 그 차이를 나름 느끼고는 있지만 이런 설명으로 들으니 서평의 다양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에게 서평이란 하나의 '명화'였다. 집요하게 작가의 글로서 압축하는 작업을 한다는 느낌으로 해왔었다. 다시 보면 그 감상을 복기할 수 있는 차원을 바랐다. 지금은 너무 한 책에 메이고 싶지 않고 좀 빠르게 여러 작품을 읽고 싶다. 하지만 아직도 하나의 서평이 되지 않고 요약과 감상으로 나뉘고 있어서 이 갭을 줄이고 싶은데 한번 든 습관이 잘 바뀌지 않는다.
책에 빠져들기 말고 비평이라는 점도 나에게는 어려운데 비평할 책이라면 우선 읽지 않을 것 같고, 나는 분수를 아는 사람인데 내가 꼭 비평을 해야만 하나 그렇다고 칭찬을? 감동을 치환하면 칭찬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썩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책은 책 그대로 거기에 있으면 족하고 나와 함께였어서 감사하고 더 바랄게 없는데 나에게 서평이란 어떻게 취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더 잘 표현하고 싶다면 표현하고 싶다. 그 책을 통한 세상을 보는 것이 나는 참으로 기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