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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r 30. 2024

다시 읽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이 이야기는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끝을 맺는다.


이슬라 네그라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

(그의 독백이라면...)



"그 수신인이 누구죠?"

"창처럼 꽂혀 있다고요?"

"도자기 고양이보다 더 고요해요?"

"뭐라고요?"

"그게 뭐죠?"

"예를 하나만 들어주세요."

"참 쉽군요. 비가 온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쉬운 건데 왜 그렇게 복잡하게 부르죠?"

"제기랄, 나도 시인이나 되었으면."

"제가 시인이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있잖아요."

"바로 그게 문제라니까요. 시인이 아니라서 그것조차 말할 수 없는걸요."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예를 하나 들어주세요."


여기 이슬라 네그라는 바다, 온통 바다라네.
순간순간 넘실거리며
예,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하지.
예라고 말하며 푸르게, 물거품으로, 말발굽을 울리고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하네.
잠잠히 있을 수는 없네.
나는 바다고
계속 바위섬을 두드리네.
바위섬을 설득하지 못할지라도.
푸른 표범 일곱 마리
푸른 바다 일곱 개가
일곱 개 혀로
바위섬을 훑고
입 맞추고, 적시고
가슴을 두드리며
바다라는 이름을 되풀이하네.

p30


"이상해요."

"시가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시를 낭송하는 동안 제가 이상해졌다는 거예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요. 시를 낭송하셨을 때 단어들이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네, 그래요. 바다처럼 움직였어요."

"그리고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이 움직여서 멀미가 났거든요."

"그럼요! 제가 마치 선생님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같았어요."

"(제가) 무엇을 만들었죠?"

"(메타포) 하지만 소용없어요.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인걸요."

"선생님은 온 세상이, 즉 바람, 바다, 나무, 산, 불, 동물, 집, 사막, 비........"

"...... 기타 등등! 선생님은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제 질문이 어리석었나요?"

"너무 이상한 표정을 지으셨어요."



(지극한 사랑 I)


"선생님에게 온 편지가 있나요?"

"전보요?"

"(다른 편지들) 나중에 가져갈게요."

"얼간이라니요, 국장님. 선생님을 두 번 볼 수 있잖아요."


"제가 운이 좋았네요. 전보예요!"

"(일찍 일어난 것) 상관없어요.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아주 운이 좋았어요."

"선생님, 저 사랑에 빠졌습니다."

"치료법이라고요? 치료법이 있다 해도 차라리 아프고 말겠어요. 사랑에 푹 빠져버렸단 말이에요."

"뭐라고요?"

"베아트리스라고 해요."

"(단테!) 네?"

"그 시인의 이름을 적어요. 단테."

"(단테 알리기에리)아체(H)로 시작하죠?"

"아마폴라 할 때 아(A) 요?"

"(아마폴라나 아피오) 뭐라고요?"


시인은 초록색 볼펜을 꺼내서 청년의 손을 바위 위에 놓고 멋진 필체로 적어주었다.


"저 사랑에 빠졌어요."

"저를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도와주셔야 해요. 소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소녀가 제 앞에 있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 같아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거예요."

"거의 못했어요. 어제 저는 선생님 말씀대로 해변을 거닐고 있었죠. 바다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는데도 단 하나의 메타포도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주점에 들어가서 포도주 한 병을 샀어요. 그래요. 포도주를 판 사람이 그 소녀예요."

"베아트리스요. 한참 동안 소녀를 쳐다보았고, 사랑에 빠져버린 거예요."

"아니에요.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었어요. 십 분쯤이나 소녀를 쳐다본걸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전혀 아무것도는 아니에요. 네 마디쯤 했어요."

"'베아트리스 곤살레스'라고 그랬어요."

"'베아트리스 곤살레스'라고 대답하기에 그냥 따라 했죠."


"잠깐만요, 선생님. 간단한 시 한 수에 그렇게 절절매서 어떻게 노벨상을 받으시겠어요."

"그럼 소녀에게 뭐라고 말할까요? 선생님은 이 마을에서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세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 말도 엮어낼 줄 모르는 어부들일뿐이란 말이에요."

"어부들은 다 물고기 대가리죠."

"비교할 만한 가치가 없어요. 베아트리스는 어머니보다 훨씬 더 예쁘단 말이에요."


"스웨덴에서 온 게 아니죠. 그렇죠?"

"금년에 선생님께 노벨상을 줄 것 같나요?"

"그럼 전보는 어디서 온 거죠?"

"나쁜 소식이에요?"

"쌈박한 소식이잖아요."

"틀림없이 당선되실 거예요.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저희 아버지한테는 책이라곤 딱 한 권뿐인데 바로 그게 선생님 거예요."

"그게 어떻다니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아버지인데도 선생님 책을 가지고 있다는 건 우리가 이길 거라는 걸 뜻해요."

"(우리가?) 당연하죠, 저는 하늘이 무너져도 선생님을 찍을 테니까요."

"선생님, 만일 제가 베아트리스와 결혼하면 결혼식 때 대부가 되어주실래요?"



시인은 자신의 집과도 같은 바다의 향기를 맡으며 말하였다.



천둥이 몰아치듯 정치가 나의 일을 중단시켰다. 민중은 내게 삶의 교훈이 되어왔다. 나는 민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 시인 특유의 수줍음을 띠고, 수줍어하는 사람답게 두려워하면서, 그러나 민중의 품 안에 안기고 나면 내가 변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대다수 참된 민중의 일부고 일류라는 거대한 나무에 달려 있는 이파리 중 하나인 것이다.


"저의 입후보는 불길을 일으켰습니다. 모든 곳에서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저를 꼭 껴안고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리던 그 수많은 시골 남녀노소들 앞에서 제 마음은 따스해졌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연설을 하거나 제 시를 읽어주었습니다. 가끔은 진흙탕으로 변한 거리나 도로에서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면서, 또 가끔은 남부 지방의 살을 에는 바람을 맞으면서 말입니다. 저는 참으로 감격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참가했고요."


지붕 없는 집도 유리창 없는 창도 싫네.
노동 없는 낮도 꿈이 없는 밤도 싫네.
여인 없는 남자도 남자 없는 여인도 싫네.
남녀가 얽혀 그때껏 꺼져 있던
키스의 불꽃을 불태웠으면 좋겠네.
나는야 유능한 뚜쟁이 시인.


   정확히 백 년 전, 가련하지만 찬란한 시인, 처절하게 절망하던 한 시인이 이런 예언을 썼습니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
   저는 예지자 랭보의 이 예언을 믿습니다. 저는 지리적으로 철저히 격리된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한 지방적이고 고통스럽고 비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습니다. 결코 희망을 잃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도달했습니다. 시와 깃발을 가지고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미래는 랭보의 말대로라는 것을 노동자, 시인,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불타는 인내를 지녀야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이 충만한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헛되이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p51,71,75, 131




(지극한 사랑 II)

이슬라 네그라의 풍경

그를 위해

녹음기에 담아...




바다의 움직임

밀물과 썰물

바람에 상큼하게 부서지는 파도

게가 집게를 비벼대고

해초들이 달라붙은 바위 틈새

부서지는 파도 속

3미터짜리 파도가 투우사의 단창처럼

해변에 내리 꽂히기 직전의 스테레오

파도가 잔잔한 날

갈매기가 수직으로 하강하여

정어리를 쪼는 소리

팔딱거리는 정어리를 부리로 제어하며

물 위를 스치는 소리

펠리컨 몇 마리가 해변을 따라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소리


별들의 움직임

해변의 야생 들국화

날렵한 벌 떼 소리

쏟아지는 별똥별

개들이 하릴없이 짖는 소리

네루다 집의 종소리

바닷바람이 자아내는 오케스트라 종소리

등대 사이렌 신음 소리

베아트리스 배 속에서 나는 가녀린 심장 박동 소리...


마리오의 음성

첫째,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바람소리. (바람 소리가 일분쯤 계속된다)

둘째, 이슬아 네그라 종루의 큰 종을 울리는 소리.(종소리가 일곱 번 울린다.)

셋째. 이슬라 네그라 바윗가의 파도 소리. (아마도 폭풍우가 치던 날에 녹음한 듯, 바위에 거세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편집한 것이다.)

넷째, 갈매기 울음소리. (이 분간 기묘한 스테레오 음이 난다. 녹음한 사람이, 앉아 있는 갈매기들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새들을 놀래 날려 보낸 듯하다. 그래서 새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절제미가 담긴 무수한 날갯짓 소리 역시 들을 수 있다. 중간에 사십오 초 지날 즈음에 마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염별할, 울란 말이야."라고 소리 지른다.)

다섯째, 벌집.(거의 삼 간 윙윙거리는 위험천만한 주음향이 들리고 배경음으로는 개 짖는 소리와 무슨 종류인지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녹음되었다.)

여섯째, 파도가 물러가는 소리. (녹음의 절정의 순간으로, 큰 파도가 요란하게 모래를 쓸어 가다가 새로운 파도와 뒤섞일 때까지의 소리를 마이크가 매우 가깝게 쫓은 듯하다. 마리오가 내리 쏟아지는 파도 옆을 달리다가 바다로 뛰어 파도끼리 절묘하게 섞이는 것을 녹음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분명히 긴박함이 깃든 격앙된 음성이었고, 침묵이 뒤를 잇는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데스 곤살레스 군.(갓 태어난 아기가 쩌렁쩌렁 우는 소리가 십 분쯤 지속된다.)




기다리겠어요.

밤낮으로 기다리겠어요.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겠어요.






은은하게 걷는 부드러운 동반자,

하늘의 풍요로운 우유,

티 하나 없는 우리 학교 앞치마,

호주머니에 사진 한 장 구겨 넣고

이 여관 저 여관을 헤매는

말 없는 여행자의 침대 시트.

하늘거리는 귀공녀들,

수천 마리 비둘기 날개,

미지의 이별을 머금은 손수건.

나의 창백한 미인이여,

파리의 네루다 님에게

푸근하게 내려다오.

네 하얀, 제독의 옷으로

그를 치장해 다오,

그러고는 우리 모두가

그를 사무쳐 그리는 이 항구까지

네 사뿐한 순양함에 태워 모셔와 다오.



하늘의 품에 휩싸인 바다로 나 돌아가노니,
물결 사이사이의 고요가
위태로운 긴장을 자아내는구나.
새로운 파도가 이를 깨뜨리고
무한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그때까지,
어허! 삶은 스러지고
피는 침잠 하려니.



지극한 사랑을 담아서...

어리석은 몽상가

어부의 아들 마리오 히메네스


"일거리를 찾아!"

마리오는 이슬라 네그라의 단 한 명의 수신인 파블로 네루다우체부가 된다.

네루다는 마리오의 스승이자 둘도 없는 벗 메타포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의 사랑마저도 도왔다.

마리오는 이슬라 네그라 옆 포구 주점의 과부 딸 베아트리스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

시인 네루다는 바다를 좋아해서 초록색 잉크로 시를 쓰곤 했다.

마리오에게 메타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었다.


마리오는 시인되어 말하고 싶다고 한다.

시인이 아니라서 그것조차 말할 수 없다고도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네루다 씨는 '시인은 영감을 얻으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만 돼. 아무것도 모르고 쓸 수는 없다'라는 말을 한다.


우체부에서 요리사로 전락한 마리오의 꿈은 비행기 표를 사서 파리에 있는 네루다 씨를 만나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네루다 씨의 편지가 파리에서부터 도착했다.

우체국장 코스메, 장모, 베아트리스, 마리오 네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편지와 소포를 뜯어읽는다.

병이 들어 이슬라 네그라가 그립다는 편지와 소니 녹음기가 들어있다.



< 편지와 추신 >
......
마리오, 이 편지가 자네에게는 난생처음 받는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적어도 봉투에 넣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
......
자네에게 글 말고 뭔가를 보내주고 싶었어.
이 노래하는 조롱은 선물이야.
나 역시 부탁이 있네
이슬라 네그라를 거닐면서 마주치는 모든 소리를 녹음해 줘.
......  



**

이슬라 네그라 집은 군부 정권에 의해 몰수되어 폐쇄되었다. 다만 시인에 대한 추모의 글과 민주화에 대한 간절한 바람, 쿠데타 이후 억울하게 죽고 실종된 이들의 가족이 남긴 절절한 사연이 울타리를 뒤덮으며 그리운 임의 귀환을 고대했다.


**

일찍이 시인은 1971년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는 랭보의 말을 인용했었다.


**

민선 정부는 1993년 시인의 사망 20주기를 맞아 네루다의 유해를 생전 소원대로 이슬라 네그라 집 앞으로 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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