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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r 23. 2024

다시 읽는 <그리스인 조르바>

서대, 놀래기, 홍어가
밤의 여로에서 돌아올 시각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해변을 걷는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동화가 되었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어부들은 기다렸다

수면으로 올라온 물고기를 잡았다. 

심연 속의 '나'는 시간의 먹이다.


'크레타... 크레타...'

나직이 불러보고 가슴 두근거려 한다.


언덕 꼭대기 서서

펼쳐진 화강암과 단단한 석회암을

무화과와 포도넝쿨, 올리브 나무, 짙은 콩나무를

어두운 계곡의 오렌지 나무숲과

레몬 나무, 모과나무를

해변의 채소밭을 한눈에 담았다.


밤의 과수원에 앉아 있으면

굵어지는 소리와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포도향기도 바람에 실려와

대기를 물들였다.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달려온 듯한 파도가

해안을 물어뜯고 있었다.  


가을의 태양 아래

바다는 대지와 대기와 사귀다

종종 한숨짓는다.







미래의 세계는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보랏빛 바람(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에 둘러싸인 구름........




35살 책벌레 오그레

자신의 길동무는 책

스스로 붓다이고 단테다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에

휘말린 사람들 중에 하나다


자신의 내부를 파먹으며

익어 가고 있는 그 씨앗

밖으로 나오려고 발길질한다.


그 소리는 자궁을 떠날 때가 된

아이처럼 가슴 내부를 걷어찬다.

작은 혁명이 되어 욕망이 튀어나와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 한자리를 빌려

노동자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생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살아있는 길동무

책을 만나 또 한번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수백만 년 전

어마어마한 숲의 나무는

갈탄이 되고

갈탄은 석탄이 되고

조르바가 온 것이다

새 길을 열어줄 것 같은 사람

헌털뱅이 친구 조르바


그는 크레타섬 자신의 갈탄광을 도맡아 인부들을 감독하기로 한다.  

튼튼한 턱과 광대뼈, 크고 가는 몸, 강렬한 시선, 격렬한 말투, 65세 꺽다리 마케도니아 영감, 육감주의자, 몸이 말하는 데로 정열이 넘치면 연주하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바다로 뛰어들고 걸리적거리면 손가락 하나쯤을 잘라낼 수 있는 사람...

그는 돌장이, 광부, 행상, 옹기장이, 독립군, 산투르장이, 볶은 호박씨 장수, 대장장이, 밀수꾼이다.

베일의 사연을 하나씩 들려준다.




Zorba The Greek, Alexis Zorbas, 1964 (영화속 한 장면)



만일에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보여줄 수 있어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고

내면에서 소리치는 데로 움직인다


조르바에게 

세상에 속한 것들은 말짱 꽝

임금, 민주주의, 국민투표, 국회의원 등은

시대에 뒤떨어진 시답잖은 수작


기술과 도덕과 종교는

녹슨 고물 총과 다름없다

하느님도 없고

악마도 없고 평등도 없다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함께 살고 일하려 한다.


돈은 날개

그는 세상 구석구석

인간의 영혼 구석구석을 누빈 사람이고

나이 들수록 거칠었다.


우리의 내장 속에 

그런 씨앗 집어넣은 것 누구인지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언제나 <왜> <어째서>라고

거침없이 묻고 답한다

불쾌하고 위험한 덕성뿐이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예외가 있지만

정열에 지배받지 않는

진리를 발견한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모든 것

거침없는 웃음

친절한 말

맛있는 요리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


덧없는 순간의
투명한 가면을 찢고
영원한 입술에
키스하는 것


그에게도 슬퍼서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숨통을 뚫게 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이다.

조각조각 난 꿰맨 가슴 돛은 사나운 폭풍에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강했다.

때로는 전쟁, 여자, 술, 산투르, 신비 그 자체로 살았다.


그는 먼 바다로 흘러들고 있었다.

저항도, 질문도 하지 않고

행복하게 떠내려가고 있었다. 


늙은 육신 속에 그 몸을 들어다

어둠 속에 유성流星처럼 던져버린

영혼 같았다.







오그레는 방황했고

무아지경에 빠지곤 했다

오그레는 자신의 인생이

부끄러웠고 목이 메었다


숨겨진 의미는 찾았고 마음속으로 새로운 집단과 생활을 구상했다. 양극의 화합은 그의 욕망이자 희망이었다.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인 언어에서 헛된 염려에서 자신을 끌어내고 해방되길 바랐고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할지 찾을 뿐이다.


오그레는 크레타에서 조금씩 실감한다. 

나그네 조르바, 빈껍데기 카바레 여가수 부불리나, 마을 장로 아나그노스티 영감, 성모의 수도원 주교처럼 크레타 사람들처럼 뿌리를 깊이 내리다 결국 하나가 되는 모든 사람의 길 잃은 영혼은 얼마나 흡사한지를 알았다. 

또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요, 육체 또한 영혼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서 여기 와 있었다.

경험이 많은 사람과

생각이 많은 사람은

한 쪽은 수다스럽게 말하고

한 쪽은 침묵하며

때론 거들며 들었다.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에 이를 수도 있음을 생각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듯이 살기도 하고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현재를 살기도 하고...


인생이란 

단순하고 살아 볼 만한 것

진부하지만

느긋하고 너그러운 것을... 

생각하게 했다



영혼이 바다요, 구름이요,
향기 같은데.....








니코스 카잔차키스 크레타에서 태어나

터키의 지배하에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역사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자유를 찾으려 투쟁과 연결시켰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고

여행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유럽과 아시아 다니고 여행기를 썼다.


그는 실존 인물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실제 탄광사업을 했다고 한다.

복지 장관도 지냈으며

1922년 조국이 터키에 패전 소식 듣기도 한다.

<붓다>, <오디세이아> 집필하고

특파원 활동과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55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한 줌의 흙이로구나.
배고파할 줄도 알고, 웃기도 하고.
키스도 하는 한 줌의 흙.
한 덩어리 흙이면서도 사람을 울리던 것.
지금은.......



생명의 리듬감

자신의 광맥을 찾아내어


먹은 것을 환원한다

그저 먹고 즐기고 망각하지만은 않았다

비움과 자연에 가까워지는 것

누구에게나 삶과 죽음은 친구다

오직 자유로운 인간만 있는
(다른 천국이란 없다!)



먹는 걸로 무얼 하는지 가르쳐 줘봐요.
그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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