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출처

고래의 외침

by 고냥이


“나는 우울을 없애려 했지만, 그것은 나를 설명하고 있었다.”

고래는 항상 아에게 말을 건다. 그 아이의 노래는 나에게는 소음이지만 어쩌면 그 소음에 맞추어 춤을 추는 연습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에게 욕을 하는지 아님 연설을 하는지 알수가 없다. 나는 고래를 보지 못했기에 고래를 이해할 수 도 도와줄 수도 없다. 오히려 고래는 나에게는 필요없는 존재이다. 그 아이로 인해 나는 가족들에게 상처주고 친구들을 힘들게 했다. 그렇다고 그 아이를 미워하기에는 고래는 나의 일부이다. 알고있는데 나는 고래를 죽이고싶다.


정신병동에 입원한지 1달이 되어간다. 충동이 있는것이 문제가 아니였다. 나의 문제는 생각이 과하게 많고 나에 대한 의심으로 나를 미워하고 그러다가 자해충동이 드는것이 가장 컸다. 사실 충동이있다고 실행을 하진 않는다. 비율로 따지면 실행 확률이 4고 생각만 할 확률이 6이다. 우울의 정도가 커진다기보다는 나는 결핍의 위험성을 깨닫고있다. 나의 고래가 어디서 왔는다 따지자면 사람이 느끼는 우울은 외적인 부분과 내적인 부분이있다. .나같은 경우는 중학교때까지만해도 나의 우울의 절반은 인간관계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우울을 나의 우울은 처음엔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 학교, 관계, 기준. 나는 그 안에서 계속 나를 깎아냈다. 학교라는 환경, 인간관계, 시험성적등은 우울의 시작이지만 이런 우울은 감정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우울증의 출처는 내적인 요소에서 온다. 내적인 요소에는 삶 자체의 공허함, 행복의 불완전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작은 외적에서 온 우울이 쌓이면 삶이 점점 공허해진다. 모든 것은 아주 작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내가 어디가 잘못된 건가?”

그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바뀌었다.

“이렇게나 우울한데,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무의식 속에서 우울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 한켠에 자리잡는다.우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생각은 반복됐고, 반복은 익숙함이 되었고, 익숙함은 결국 나를 잠식했다.. 입원해서 간호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있다. 우울증은 우울이 습관화 되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사고들이 떠오르고 이가 반복되면 극단적으로 변해 더 깊은 바다로 빠지는 것이라고. 우리는 그것을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그럼 우울증은 나쁜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우울이라는 감정 자체는 그말대로 감정의 일부이다. 우울이 있기에 우리는 그와 상반되는 행복을 느끼고 비록 우울증에 걸렸다고 해도 긍정적인 감정을 아예 안느끼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빛이라면, 우울은 그것을 보이게 하는 어둠이다.”

항상 상반된 두가지 것들이 있듯 행복과 우울도 누구에게나 존재해야하는 감정들임을 인식해야한다.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나를 알아갈 수 없다. 내가 싫어하는것 내가 하고싶은것 나의 적성 그렇다. 우울은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나는 이제 우울을 밀어내지 않는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다. 그 질문 끝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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