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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가지 Sep 21. 2022

17. 로망 부수기 #1. 독일땅은 밟았지만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노가지


17. 로망 부수기 #1. 독일땅은 밟았지만






2011년 부산 MBC에서 하던 '좌충우돌 만국유람기'는 두 남자가 세계 각국의 문화를 보여주는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지역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있음에도 인기가 많아 경기도까지 방영될 정도였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방송되고 있는 여행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이 방송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진행자가 내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노이슈반슈타인성에 꽂혀 독일이란 나라에 막연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 속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뾰족한 성의 모습과 맞은편 다리에서 바라보는 절경에 홀려 막연히 독일이란 나라가 좋았다. 


채널을 돌리며 볼만한 방송을 찾던 주말 아침. 마침 사투리를 쓰는 그들이 독일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이후 잊고 있던 열정이 끓어 올라 독일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여행 프로그램들을 모두 찾아보았다. 그러다 한 기행 프로그램에서 독일 맥주축제에 대한 소개를 접했다. 옥토버페스트라고 불리는 축제에서 사람들은 얼굴만 한 잔을 들고, 어깨너비만 한 꽈배기 빵을 들며 노래를 부르더라. 피터팬 같은 모자와 앞치마를 두르고 빨개진 얼굴로 즐기는 축제. 나레이션에서는 '술 축제인데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모두 함께 와서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바로 이곳'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맥주축제임에도 어린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과 술에 취해 흐트러지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당시엔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술 축제가 젠틀할 수 있나?"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독일 맥주축제는 매년 9월 중순에서 10월 초 사이에 열리는데 대학생이었던 나는 늘 중간고사 일정과 겹쳐 맥주축제는 졸업한 후에나 갈 수 있겠구나 하며 마음을 접곤 했다. 막연하게 독일이 좋아 독일 유학을 꿈꾸었던 지난날, 휴학을 냈고 독일어학원을 다니며 유학 준비를 했지만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도록 나는 쉽사리 발을 내딛지 못했다. 도전으로만 남아버린 나의 도전이었다. 이대로 학교에 돌아가면 스스로가 도약 못한 나약한 존재로 남는 것 같았다. 독일 땅이라도 한 번 밟고 오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독일 전역을 돌 거야. 한복 입고 하는 여행도 꿈꿔왔으니까 한복도 챙겨 넣을 거야. 꿈꿔온 두 가지를 다 이룰 거야. 후회도 아쉬움도 남기지 않을 거야"


아무도 실패했다 손가락질하지 않았고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채찍질했고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던 동기를 따라 처음 타봤던 오사카행 비행기를 시작으로 비교적 가까운 나라를 함께 다니던 우리가 처음으로 유럽 대륙을 향해 나가는 때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꿈의 실현을 앞둔 초보 여행자는 오로지 '독일에 갈 거야!' 하는 꿈을 동력 삼아 아무 정보도 없이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두 달 뒤 출발하는 왕복 항공권을 결제했다. 그렇게 도착한 독일에서의 설렘도 잠시, 프랑크프루트 공항에 내리자마자 로망과 현실엔 굉장한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하는 사건이 시작됐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연결된 트레인을 타면 기차역으로 바로 간대. 우리가 항공권이랑 같이 묶어서 결제한 그 기차표로 베를린까지 가는데 3시간 정도 걸린대.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빠르게 움직이면 충분할 거야."

"독일 열차들은 시간을 칼같이 맞춰서 연착이나 지연 그런 거 없다던데."


책에선 그랬다.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랬다. 여행 블로그에서도 그랬다. 독일은 원칙을 중시하는 나라고, 매뉴얼대로 일처리를 하는 것이 정해진 문화와 같아서 시간 약속이 정말 정확하다고. 그래서 열차 역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플랫폼에 딱딱 들어와 1분이라도 늦으면 기차를 놓치게 되니 시간을 잘 맞추라고 했다. 그것은 책에 쓰인 이야기에 불과했다. 우리는 현실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우리가 타야 할 기차가 15분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플랫폼이 변경되었고 지연 문구가 전광판에 떠 있었지만 살피지 못했다. 마냥 열차를 기다리다가 30분 후 옆 라인으로 들어온 기차를 보고서도 '우리 기차는 왜 안 오지?'라고 생각했다. 떠나는 기차를 보면서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독일 열차 정확한 거 맞아? 여기가 맞는데 30분이 더 지났는데도 열차가 하나도 안 들어와"

"인포에 가보자. 느낌이 뭔가 이미 지나간 거 같아"


인포에 가니 제 시간에서 10분 지연, 하나 옆 플랫폼으로 들어왔던 기차가 우리가 타야 할 기차였다고 했다. 다시 트레인을 타고 공항터미널로 돌아가 대한항공 데스크를 찾았다. 이럴 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가 넘었고 백야로 좀 전까지도 환했던 독일 하늘이 30분 만에 새까만 어둠으로 물이 들었다. 3시간이면 베를린으로 갈 수 있다던 기차를 놓치고 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프랑크푸르트 공항 근처에 호텔을 얻어 하루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거나, 30분 뒤에 들어오긴 하나 북부 함부르크를 거쳐 동부 베를린으로 향하는 9시간짜리 야간열차를 타거나 그 두 가지였다. 이번 독일 여행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독일 북부지역을 뺀 나머지 도시들로 일정을 채웠는데 말이다. 


"우리 북부 뺀 줄 어떻게 알고... 가네? 이렇게 함부르크를 가네?"

"진짜 누가 독일은 시간 칼 같다고 그랬냐. 이건 내가 그리던 독일이 아닌데 솔직히 아까 집에 다시 가고 싶었어"

"첫날부터 어디서 노숙하는 거 아니니까 다행인 건가"


짐을 지키기 위해 거의 뜬 눈으로 보낸 베를린행 야간열차. 밤 11시가 조금 넘어서 탄 열차가 동트는 새벽하늘을 지나 다음날 아침 9시가 되어서야 베를린에 도착했다. 그러고 나니 불과 오늘 새벽까지도 느꼈던 짜증이나 실망은 온데간데없고 마냥 튀어나오는 헛웃음에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기만 했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예약해둔 베를린 호텔이 역 바로 옆에 붙어있어 다행이다 하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내 독일 여행이 이렇게 시작될 줄이야."

"이게 현실과 로망의 차이인가 보다. 재밌네 독일."


하마터면 이제 순탄한 여행만 남았다며 마음을 놓을 뻔했다. 

집에 돌아오는 날까지도 꿈꿔온 로망은 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가르쳐준 나의 첫 독일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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