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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승희 Dec 13. 2022

황금망토 할아버지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일상이 퀘스트인 노가지의 기록


황금망토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을 하나 꿨다. 넓은 마당, 커다란 감나무, 시골집 기와지붕. 익숙한 외관에 여기가 어딘가 둘러보니 바로 하니 할아버지 댁이었다. 칠이 벗겨진 노란 나무 대문, 담을 만든 회색 시멘트 벽돌, 그리고 담을 따라 늘어진 덩굴, 한편에 쌓인 소주병. 내가 기억하는 시골집의 본래 모습은 그랬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같은 구조, 같은 모습을 했지만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는 시골집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중략)



시골집과 에스컬레이터. 너무 다른 두 단어가 결코 이질적이지 않을 만큼 할아버지 댁은 화려했다. 지하로 내려온 공간 역시 모든 것이 온통 황금빛이었고 마치 커다란 백화점을 통째로 옮겨온 것 같았다. 얼떨떨했다. 이 공간만큼은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조금 뒤 우리가 내려온 에스컬레이터에서 황금망토를 휘날리는 누군가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보이는 발끝을 따라 얼굴을 보니 할아버지 었다.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나는 ‘할아버지!’ 하고 반갑게 외치고 있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빛나는 할아버지의 모습. 할아버지는 역시나 입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원하는 걸 골라보렴’ 하는 목소리가 마음으로 전해짐이 느껴졌다. 이 공간을 채우는 그 어떠한 소리도 없었지만 대화를 나누고 있음이 신기했다.  


…… 꿈에 할아버지가 나왔다는 나의 이야기에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다 ‘좋은 꿈이야’라며, 살아생전 친한 사람한테 나타나서 '나 잘 갔으니 걱정하지 말라' 안부를 전하는 꿈이라고 했다. 집의 모습도, 할아버지의 모습도 모두 황금으로 빛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어르신들은 그렇게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 


"나는 꿈에 한 번을 안 나와주시네"

"아빠, 할부지가 괜히 더 걱정하지 말라고 내 꿈에 황금망토 두르고 화려하게 나왔대"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모습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보고도 보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내가 그랬으니까.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내 꿈에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는 황금망토를 두른 화려한 할아버지의 모습만을 기억하게 됐다. 그게 할아버지가 내게 준 선물이자 애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략)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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