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보 엄마의 러브 스토리를 너와 듣기
왜인지 결혼식날 눈물이 날 거 같다. 어제까지는 굉장히 신나고 즐거운 결혼식만을 상상했는데 아빠 산소를 다녀오고 눈물이 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아빠 산소를 간다. 코로나 탓에 작년엔 한 번밖에 가지 못한 거 같다. 결혼하기 전에 오빠와 인사를 하러 엄마랑 셋이서 아빠 산소를 가기로 했다. 엄마는 워낙에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를 잘하기 때문에, 애정표현이나 표현력이 좋은 사람이라 오빠(예랑)에게 오글거림 주의를 줄 예정이었다. 먼길을 돌아 울산과 양산의 사이인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무렇지 않게 산을 타고 오르고 올라 수백 개의 수천 개의 묘지가 나왔다. 아빠는 너무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내겐 할머니가 더 특별한 존재라 말한 적이 많다. 아빠는 내가 10살이 되던 해, 1999년 세상에 멸망한다던 이상한 루머가 떠돌던 그 해 여름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서른이 훌쩍 넘었다.
도착하고 오글거리는 말을 할 엄마를 방어하기만 하면 우리들의 즐거운 나들이?, 아빠와의 인사가 끝날 줄 알았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아빠 없이 결혼을 준비하며 생각보다 아빠가 더 많이 그리웠다. 사실 그리웠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왜 신부는 아빠 손을 잡고 입장을 하고 엄마 혼자 나온 상견례에 엄마가 괜스레 더 걱정이 되고 3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사는 데도 엄마와 이제 떨어져 산다고 생각하니깐 슬펐다. 슬펐나 보다. 도착해서 절을 하려는 데 눈물이 났다.
엄마가 도란도란 아빠에게 인사를 한다.
"우리 딸 이제 6월 12일 날 결혼합니다. 거기 오이소. 결혼할 친구니 잘 봐주고 둘이 행복하게 살게 잘 도와주소. 참 듬직하제."
"아빠한테 한 마디 해봐."
"장인어른한테 인사하렴."
오글거리기만 할 줄 알았던 이야기들을 듣는 데 계속 계속 눈물이 났다. 참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난 우리 아빠가 참 좋았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너무 힘들었다. 아빠가 보고 싶은 날도 참 많았다. 몰랐다. 근데 그랬던 거 같다. 그리고 그렇다.
엄마는 돗자리를 아빠 묘와 조금 떨어진 그늘에 깔고 다 같이 앉아 과일을 깎아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더나? 아빠는 진짜 똑똑하고 진짜 좋은 사람이었어."
엄만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 갔다.
나는 엄마의 첫사랑이 아빠라는 걸 안다. 아빠의 첫사랑은 엄마 친구라는 것도 안다. 난 그걸로 맨날 놀렸다. 근데 그렇다고 엄마, 아빠가 어떻게 만나고 엄마, 아빠가 어떻게 결혼했고는 잘 모르는 데 웬일인지 엄마가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엄마랑 아빠는 성당에서 만났다.
신앙심이 깊은 그들... 이라기보단 너무나도 가난한 동네에 살던 아빠는 놀이터 같던 성당에, 친절하고 아이들에게 사랑과 여러 가르침을 주신 미국 신부님 덕에 그리고 그 동네 함께 자란 가난한 친구들이 있던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 시골에서 자란 엄마는 그림을 잘 그려 부산으로 장학생이 되어 왔고 친구가 없어 성당에 청년부에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이 고등학생 나이에, 시절에 만났다.
엄마는 그 시절 아빠를 짝사랑했지만 아무도 몰랐고 아빠는 그 시절 엄마의 친구를 짝사랑해서 그렇게 편지를 보냈단다. 그리고 그 친구는 엄마와 함께 그 편지를 나눠 읽었단다(?) 오늘에서야 그 친구가 데레사 이모라는 걸 알고 나는 조금 충격받았다.(아는 사람일 거라 생각을 못했는 데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라 놀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엄마와 회사에 다니던 아빠가 있었다. 아마 성당은 쭈욱 잘 다니고 있었겠지. 엄마의 대학교 파티(축제?)에 짝이 없어서 친구를 소개받기로 했단다. 엄마 친구인 섭이 삼촌은 현대차를 다니던 어떤 사람을 소개해주기로 했는 데 엄마에게 오던 길 차가 너무 막혀서 못 오게 되고 그날이 섭이 삼촌의 동생 결혼식이라 그 결혼식에 온 우리 아빠가 대신 그 자리로 가기로 했다. 세상에!!
그리고 그 들은 축제에 갔는데 너무 어색해서 학교를 나와 맥주집에 갔다고 한다. 엄마는 이렇게 와준 게 고마워서 그냥 보내긴 그렇고 맥주를 사줬다고 한다. 맥주집 가서도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으니 엄마가 아빠에게
"학교 다닐 때 니 좋아했는데 아나"
이렇게 물으며 물꼬를 튼 이후 1년 반 동안 불타는 사랑을 했단다.
엄마는 불꽃 튀는 연애를 했지,라고 표현했다.
1년 반 연애 후 결혼을 하기로 했는데 외갓집에선 너무너무 아빠를 반대했데, 가난하고 아빠도 아버지가 안 계시고, 직장도 안 다니고 백수! 세상에
근데 외할아버지께서 아빠를 만나고 바로 결혼 허락을 해주시고 날을 잡아 결혼했다는 거다. 아빠가 맘에 들었나 봐 우리 아빠가 진짜 인상이 좋기는 하지. 그렇게 결혼을 했단다.
엄마는 결혼 전 가난하여 대학을 반학기도 못 다닌 아빠가 다시 대학시험을 치길 권했고 그렇게 아빠는 결혼을 하고 대학에 가고 공무원 시험을 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빠 친구들은 이제 정년퇴임을 다 했다는 말을 했다.
기나긴 러브스토리를 다 듣고 신기하고 기분이 색달랐다. 이야기는 양쪽에서 들어봐야 한다고 아빠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이렇게 마무리를..
공원묘원에서 내려오는 데 저 멀리 산이 많아,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우리 정말 주말마다 산에 그렇게 갔는데 맞제?"
엄마는 주말마다 안 간 산이 없었다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산에 가고 그땐 옷가게 할 때라서 1시부터 장사하고 그랬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그렇게 다녔는데 아빠 가고 나선 산에 갈 일이 없다.라고 하셨다.
내가 "아무래도 산에 다 올라가고 그러기가 힘들지."라고 말하니
"아빠를 산에 묻고 나니 산에 가기가 싫어졌다."라고 말했다.
엄마의 그런 마음을 몰랐다. 물론 먹고 살기고 너무 힘들었다. 어린 내가 봐도 엄마의 힘듦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고 세상도 엄마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나의 첫사랑과 헤어질 때도 그다음 일 때도 누구와 끝을 경험할 때마다 그렇게 슬퍼하면서도 끝엔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 엄만 얼마나 슬펐을까.
책에서만 보던, SNS에서만 보던 < 사진 속 너보다 내가 나이가 많다 >라는 글이 곧이다.
40에 간 우리 아빠는 너무 젊었고 40에 혼자 남겨진 우리 엄마다 너무나 젊었다. 차에서도 눈물이 났고 집에 돌아와서도 몇 번이나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엄마와 아빠 이야기를 너무 오랜만에 했고, 그 이야기를 오빠와 함께 들었고 또 나는 곧 결혼을 한다.
침대에 누워 나는 오빠에게 말한다.
"니는 내보다 일찍 죽으면 안 돼."
<난 누구보다 모두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우리의 이야기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모두들
당당하고 귀여운 신부 입장을 꿈꾸던 나는
엄마의 걱정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아빠 없는 딸이, 누구와 입장할 것인가>라는 생각에 엄마는 꽤나 오래 걱정했던 거 같다.
본디 왜 아빠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인가, 딸만!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전혀 중요한 문젯거리가 아녔는 데
엄마의 걱정을 보니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