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류

by 홍경

케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여름이 다음 계절로 바뀌었다. 제주의 가을은 온갖 것을 은닉한 채 아무 일 없었던 듯 태연했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케이의 삶 속에 죽음이란 놈이 질기게 따라붙었고 결국 놈은 어머니를 삼켰다. 케이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마음에 구덩이를 파더니 사다리를 내려 급기야는 시야에 보이지 않는 깊이까지 들어가 버렸다. 라은은 계절이 바뀌어도 케이의 뒷덜미에 붙어 있는 태그처럼 변함없이 함께였다. 누군가 쪽가위로 톡 하고 태그의 고정끈을 잘라줘야 떼어질 모양이었다.

케이의 아버지는 지난여름, 장례식장에서 처음 본 라은에게 케이의 슬픔을 부탁했었다. 그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서울에 가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역시, 케이를 부탁한 터였다. 그가 서울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라은은 매일 케이의 집을 찾았다.

케이가 이곳에 이사 오기 전부터 걸려있었을 것 같은 옛 소재의 커튼과 오래된 싱크대, 벽에 걸려 멈춰있는 추시계와 양각 무늬의 기름때가 연하게 낀 본차이나 접시와 빛바랜 문짝을 라은은 애써 못 본 체, 안 본 체했다. 살림살이 상태로 미루어볼 수 있는 케이 일상의 궁핍과 혼돈이 마음에 걸렸다. 쟁반과 과도까지도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았음을 씻기지 않는 묵은 얼룩으로 알 수 있었다. 케이가 사는 집이었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케이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 라은은 생각했다.

수요일, 그날 저녁에 둘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이미 오후 내내 쏟아지던 비가 밤이 되어 더욱 거세졌다. TV를 틀어 놓고 별말 없이 케이와 함께 있던 라은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가야겠다.”

“가려고?”

“응! 나 이번 주 계속 학원 안 가고 여기 오는 거 들키면 정말 큰일 나!”

“오지 마, 이제.”

케이가 라은의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고쳐 앉으며 말했다.

“아니, 무리해서 오지 말라는 말이지. 지금은 비도 많이 오고 어둡고 걱정돼서.”

“나, 전화 좀!”

라은이 집에 전화해 조그만 목소리로 친구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말했다. 전화기에서 길게 말하는 여자의 음성이 희미하게 들리고, 라은이, 알겠어요, 하면서 끊었다.

둘은 말없이 다시 TV 뉴스를 보았다. 가까운 곳에서 천둥이 두두둥 하늘을 두드리고, 몇 초 후 이어 안방 유리창에 번개 섬광이 번쩍였다. 라은이 무서워하며 다리를 세워 모아 두 팔로 접힌 두 다리를 끌어안았다. 케이는 제 오른팔을 펼쳐 라은을 끌어당겨 한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았다. 라은은 이제 막, 작은 새의 몸을 갖게 된 요정처럼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폭풍우 몰아치는 밤에 터프하고 나이브한 사랑을 나눴다. 우주의 기운이었던 이류가 빗속을 뚫고 세상을 관통한 후 형태를 갖게 된 밤이었다.

다음 해, 봄. 교실 복도, 누군가 소리치며 달려갔다.

“야! 이케이가 김라은이랑…”

케이와 라은에 관한 소문으로 라은의 임신 사실이 드러났고 학교는 둘 중 한 명의 전학이나 자퇴를 권유했다. 라은은 자퇴 후 자신의 집에서 류를 출산할 때까지 은둔했고 케이는 견디며 학교를 계속 다녔다.

여름, 라은이 류를 출산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라은의 어머니는 각종 육아용품과 아기인 류, 딸의 옷이 들어있는 캐리어와 라은을 케이의 집 앞에 내려놓았다. 대형 세단을 케이의 집 뒤 공터에 세워두고 라은의 어머니가 케이의 아버지와 마루에서 마주 앉았다. 라은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뗐다.

“예상은 했지만, 참, 무책임하게, 이 집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케이는, 학교 잘 다녀요?”

케이의 아버지를 그녀가 쏘아보며 이어 말했다.

“본론부터 말할게요. 아기는 입양 보낼 것이 아니라면 이 집안 아이로 올려주세요. 제 딸의 앞으로는 안 됩니다. 지금 저 어리석은 것이 제 아이는 제 손으로 키우겠다고 고집해서 입양시키려다 못했고, 여기도 함께 왔지만, 라은이는 이 상황을 책임질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에요. 아기를 위해서도 좋은 곳에 입양 보내는 것이 나을 겁니다. 라은이는 애라서 곧 마음이 바뀔 거니까. 아무튼 이 집안 핏줄은 이 집에서 책임지세요. 제가 바라는 건 그거예요.”

케이의 아버지는 마루 중앙, 해수가 누워 숨을 거둔 자리에 시선을 두며 조용히 말했다.

“네, 라은이가 아기와 함께 여기 있겠다고 하면 함께 지내겠습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집을 다시 둘러보며 라은의 어머니가 말했다.

“라은이가 여기서 지내기에는 집이 불편해 보이니 아파트를 하나 사드릴게요. 그리고 아기 입양 결정도 우리와 상의하실 필요 없어요. 알아서 하세요. 라은이의 미래에 아기가 끼어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열린 방문으로 바닥에 아기를 눕히고 멍하니 앉아 있는 라은을 케이의 아버지가 바라보며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아기는 입양 보내지 않고, 제 밑으로 올린 후 키우겠습니다.”

그가 안방의 라은에게 표정을 밝게 바꾸어 물었다.

“라은아, 아기 이름은 지었니?”

두 어른의 대화를 어두운 표정으로 듣고 있던 라은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류에요. 제가 임신했을 때 태명이 류였어요. 괜찮을까요?”

“응, 그래. 아기의 이름은 류라고 하자.”

라은에게 여러 가지 당부의 말을 남긴 후 라은의 어머니가 돌아갔다. 라은과 케이의 아버지는 바닥에 눕혀진 작고, 빨갛고, 귀여운 류를 바라보았다. 막막하게, 먼 기적소리처럼 케이의 아버지가 류를 보며 말했다.

“류가 우리 라은이와 케이를 닮았구나. 집사람이 가고 정확히 일 년 후 류가 왔네. 이렇게 예쁜 류가.”

라은의 어머니가 마련해 준 아파트로 이사하고 몇 주 후, 류는 백일이 되었다. 백일을 맞은 류를 안고 세 사람은 해수의 묘를 찾았다. 케이의 아버지가 묘 주변의 잡초를 뜯어 뽑고 봉분과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앉아 말했다.

“해수야, 그동안 나만 왔었는데, 보고 있지? 우리 류, 보여? 라은이와 케이가 잘 지내는 게, 나는, 꼭 그 모습이, 해수, 너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참, 좋아. 류의 태어난 날이 해수가 떠난 날과 같은 날인 것은 순전히 우연이겠지? 류는 너와 내 앞으로 호적 신고를 했어. 해수 사망 신고를 미루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그 사이 류가 태어나고, 이 아이들 앞길 막을 수는 없고, 그래서 그렇게 정리했어. 이렇게 한 것이 잘한 일이겠지? 해수가 나 좀 지켜봐 줘. 몸 약한 네가 벌이 시원찮은 놈 만나서…, 그래도 다행히 케이 낳고, 그 아이가 또 류를 낳고, 내가 복이 참 많은 사람이야. 그렇지, 해수야?”

해가 바뀌고 시간이 흐를수록 라은은 진한 화장에 외출이 잦아졌고 술에 취해 들어오거나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라은이 한편에 접어두었던 흰색 캐리어를 꺼내 펼쳐 놓고 짐을 다시 싸기 시작한 것은 1월 중순. 외박 후 오후에 피곤한 모습으로 들어온 라은에게 케이가 성질을 냈다.

“야! 너, 애기 안 보고, 뭐 하고 돌아다니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너, 나 사랑해? 좋아하긴 해?”

“갑자기 뭔 소리야!”

“나를 진심으로 대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

“지금 그걸 왜 묻냐고!”

“너는 학교라도 다니지, 나는 뭐야! 고등학교 중퇴가 뭐냐, 중퇴가! 쪽팔리게!”

“누가 학교 그만두래? 어차피 류는 아버지가 보고 있는데, 너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잖아! 공부 안 할 거면 나가서 돈이라도 벌든가!”

“야! 우리 엄마가 계속 생활비 대주고 있잖아! 돈을 내가 왜 벌어! 정말 이렇게는 더 못 살겠어. 너무 구질구질해!”

류를 재운 케이의 아버지가 케이와 라은이 다투고 있는 거실로 나와 조용히 문을 닫으며 말했다.

“류 깨겠다, 소리 낮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라은아, 이제, 그만 돌아가.”

“아버지!”

케이가 당황한 듯 외쳤고, 라은은 그 소리에 놀라 케이를 힐끗 바라보더니 케이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네? 진심이세요?”

“마음이 바뀌었다면, 돌아가서 공부해. 검정고시 준비하라고. 류는 걱정하지 말고, 류와 상관없이 네 인생 살아.”

라은이 의미가 읽히지 않는 울음을 터트렸고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케이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동안 애썼다. 류의 어미로 그만하면 됐어. 너의 어머니께 연락해 줄게. 그만 돌아가.”

연락을 받고 저녁 무렵에 나타난 라은의 어머니는 라은과 흰색 캐리어를 챙겨 그곳을 떠났다. 보내는 사람들도, 가는 사람들도 서로 아무 말하지 않았다.

이류는 그날 저녁 묽은 미음으로 첫 이유식을 했다. 케이와 그의 아버지는, 류의 오물거림과 뱉어냄과 삼킴을 바라보며 그들이 엮어온 서사들을 함께 오물거리고, 뱉어냈으며, 삼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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