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아마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물 붓기
어머니의 오래된 냄비나 솥을 들여다보면 대개 바닥으로부터 1/2 지점보다 낮은 곳에 그어진 확연한 계선(界線)을 볼 수 있습니다. 특정 냄비에 조리한 음식의 종류나 물의 량이 대개 비슷하다는 의미입니다.
추석 차례를 준비하는 부엌에서 어머니가 찜을 솥을 건네며 "부탁해."라고 했을 때 항상 되묻던 질문.
"물을 얼마나 부어?"
"거기 금 있잖아. 그만큼."
어머니는 하던 일을 계속하며 시선도 주지 않을 채 대답하곤 하죠.
생각보다 아래쪽이다 싶은 곳에 선명한 선만큼 물을 넣고 김이 하얗게 오르면 송편을 펼쳐 쪄냈는데 두어 번 쪄내고도 솥에 물이 남아있어 놀랐던 기억.
이어지는 어머니의 친절한 설명.
"솥에 물을 올려 쪄낼 때 물의 량은 위에 올리는 찜판이나 찜솥보다 높으면 안되고-응? 너무 당연하잖아 싶어도 막상 부어보아라 하면 우물쭈물하게 된다는 것- 솥에 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끓어오를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아지니까 적당한 량의 물을 넣어 끓여야 해. 이 적당량을 너는 모르니까 묻는 거겠지? -네, 네, 네 그렇습죠, 위대한 나의 어머니- 김이 오를 때 재료를 얹어 찌는데 김의 온도가 높아서 쪄지기까지 그리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진 않기에 생각보다 적은 양의 물을 올려야 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모든 음식을 만들 때 적당한 물의 량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것과 같아."
찌개를 끓일 때 건더기 위에 붓게 되는 물(맛국물)의 량은 솥 바닥에서 부터 2/3 지점을 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보다 높으면 쉽게 끓어 넘치며, 이보다 낮으면 요리의 량에 비해 내용물이 적어-달리 표현하면 요리의 량보다 솥이 너무 큰- 열효율이 낮아집니다. 완성된 찌개의 건더기와 국물은 대개 2/3에서 1/2 지점의 높이에 이릅니다. 이때 물을 붓기 전에 볶거나, 익은 재료에 물을 넣어 끓이는 경우 주재료와 물의 량은 좀 더 많아져도 괜찮아요.
국의 경우는 찌개에 비해 건더기의 량의 적고 대신 물의 량을 넉넉히 잡는데, 건더기와 물을 합친 량은 대개 솥바닥에서 4/5 ~ 3/5 지점의 높이가 적당합니다.
채소를 데칠 때 물의 량은 많을수록 좋지만 역시 시간과 열효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데칠 재료의 량이 빠듯이 들어갈 솥에 바닥부터 1/2을 넘기지 않도록 물을 붓고 끓인 후 재료를 데쳐냅니다.
김치찜이나 생선찜을 할 때 재료를 솥에 모두 앉힌 후 모든 재료가 살며시 잠길 만큼만-물과 재료를 모두 넣었을 때 바닥으로 부터 1/3 정도- 물을 붓습니다. 찜을 앉히는 솥은 좁고 높은 솥보다 넓고 낮은 솥이 좋은데 모든 재료를 평평히 펼치듯 앉히고 물을 붓고 조리합니다.
주재료에 수분이 많은 경우 물은 자주 붓던 높이보다 낮게 잡습니다. 예를 들면 호박찌개에 주재료로 들어가는 호박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호박찌개의 호박은 채를 썹니다. 채를 썬 익지 않은 호박은 단단하고 제법 부피가 큰 편이지만 익었을 때는 대개의 채소들이 그렇듯이 숨이 죽고 간을 한 경우 삼투압에 의해 제법 많은 양의 물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각자 기호의 차이가 많지만 필자의 경우 농도가 짙은 국물을 좋아하는 편이서 호박찌개의 물을 최소로 잡고 호박에서 우러나온 들큼하고 농밀한 국물을 즐깁니다.
물 붓기에 이어 기타 사항에 관한 이야기를 말미에 짧게 덧붙여 봅니다.
화력 조절에 관한 일반적인 흐름은 대개 이렇습니다. 재료를 넣고 처음 솥을 불 위에 올리면 빠른 시간 안에 끓어오를 수 있도록 가장 센 불로 시작합니다. 김이 살큰 오르고 안의 재료가 익기 시작하며 내는 연한 음식냄새는 솥의 물이 끓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졸이는 음식의 경우 팔팔 끓을 때 불을 가장 작은 단계로 줄이고 시간을 들여 졸이고, 국물요리의 경우 중불로 내린 후 안의 식재료가 모두 익었을 즈음 약불로 줄여 조금 뜸 들이듯 조금 더 끓인 후 불을 끕니다. 카레처럼 맑은 재료를 끓이다 분말이나 고체를 풀어 요리를 완성하는 경우는 강한 불에서 모든 재료가 익을 때 즈음 불을 가장 약한 불 상태로 바꾼 뒤 천천히 저어가며 풀어 줍니다. 이후 약불이나 중불에서 한소끔 끓인 후 불을 끕니다.
이외의 대목에서 고수와 초보의 극명한 차이를 엿볼 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요리를 끝낸 후 개수대에 있는 설거지의 량입니다. 요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최소한의 도구로 요리를 마치며, 또한 요리 도중 짬짬이 씻어 정리합니다. 요리의 수와 상관없이 재료를 씻고, 썰고, 볶거나 끓이는 모든 단계에서 공유할 수 있는 것-도구로써, 예를 들면 양푼, 채반, 도마, 칼, 채칼, 냄비, 프라이팬 등- 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예를 들면, 채소 다듬기, 썰기, 도구 씻기, 가스레인지 주변 튀어있는 얼룩 닦기, 음식물 쓰레기 등 정리, 정돈-을 동시에 해냅니다. 이것은 음식의 완성도나 맛과는 별개의 것이며 경험에서 비롯된 마음의 여유와 요령에서 비롯됩니다. 양푼, 도마, 채반처럼 부피가 크고 씻어 엎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주로 불에 음식을 막 올린 후, 강불에서 식재료들이 끓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활용합니다. 칼이나, 가위, 채칼, 요리주걱 등 작은 것들은 다시 쓸 일이 없다고 생각될 때 곧바로 씻어 정리합니다. 가스레인지 주변에 튀어있는 음식 얼룩은 발견되는 즉시 닦아내고 남은 야채 등도 곧바로 정리해 냉장고에 넣어두는 등 요리가 끝날 때 모든 일이 끝나도록 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두세 가지 요리를 한다 해도 식사 후 식기류만 씻어도 되기에 덜 피곤합니다.
조리는 조리사가 설거지는 조리사 외의 누군가가 하는 것이 요즘 추세인데 조리하는 사람이 뭐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개수대에 두 사람이 번갈아 너무 오래 있지 않게 되는 것, 결국 식사 전, 후 모두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좋으니까요!
아마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 맛있는 요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