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넘어서: 마음의 회복
드라마「엄마친구아들」 속 대사가 화면 너머로 흘러왔다.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
“왜 오래오래라고 생각해? 길지 않을 수도 있어.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언제든 안 괜찮아질 수 있어.
나는 이제 언제 다시 아파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야.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몰라.”
“나도 마찬가지야.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이니까.
네가 걱정하는 그 일이 안 일어날 거라고는 말 못 해.
나는 신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건 말할 수 있어.
나는 너와 살고 싶어.”
순간 화면을 멈췄다.
15년 전, 우리의 밤이 겹쳐졌다.
그 말들, 그 숨결, 고요한 울림까지
모두 우리에게 있었던 이야기였다.
스무 살 끝자락.
말기 신부전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콧줄로 겨우 숨을 잇고 손등엔 주삿바늘이 줄지어 꽂혀 있었으며
몸속은 요독으로 잠식되고 있었다.
그는 멀리 외국 파견 근무 중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더 나은 시작을 준비한다며
낯선 곳에서 홀로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병과의 싸움은 내 몫이라 여겼다.
병원 침대 위에서 지독한 통증을 견디면서도, 알리지 않았다.
사랑이었고, 미안함이었으며, 스스로를 향한 절망이었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던 날들.
누군가를 붙잡는 일이 짐이 될까 두려웠다.
'사랑해'라는 말조차 고통처럼 느껴졌다.
몇 달 뒤, 아무것도 모른 채 돌아온 그는
바래버린 내 얼굴을 보고 말없이 안아 주었다.
“내가 곁에 있었더라면
조금 더 빨리 병원에 갈 수 있었을 텐데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그 한마디에 울음과 말이 목구멍에서 엉켜 멈췄다.
그는 다시 속삭였다.
“이제는 평생, 네 곁에 있고 싶어.”
그 말 앞에서, 나는 내 안의 가장 깊은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하지 않은 몸으로 누군가와 살아간다는 건
사랑의 감정으로는 부족했다.
그건 매일의 결심이었다.
나는 그 결심에 기대어
우리 둘만의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불완전한 나, 그러나 함께일 때는 단단해지는 우리.
아주 천천히, 하루씩 살아보기로 했다.
사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내가 기적처럼 붙잡은 단 하나.
그 사람이었다.
<나의 기록>
일주일에 세 번 <화, 목, 토,> 혈액투석을 받는 날이었다.
토요일 투석 자리는 늘 치열했지만, 컨디션이 좋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데이트를 하고 싶어서,
매주 토요일에, 우리는 병원에서 만났다. 어린 마음에 행복한 데이트 생각만 했던 나였고...
결혼할 여자가 투석에 묶여 있는 모습을 보는 그에게 얼마나 무거운 일이었을까.
토요일이면 가족 모임도, 친구 모임도, 동기 모임도 가지 못하고 그는 늘 병원으로 와야 했다.
그때 그는 잘 나가는 신랑감이었다. 대기업에 취직했고, 곧바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일등 남편감으로의 소개 자리가 끊이지 않았던 사람.
가끔 정신이 번쩍 들어, 자주 고민했다.
내가 붙잡아도 되는 사람일까. 이 관계는 죄책감으로 무너지지 않을까.
내가 투석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멀어져 간 사람들도 있었기에 불안했다.
그러나 그는 단단히 나를 붙잡아 주었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참,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병이 걸린 나는 재수가 없지만,
남편은 내 생에 최고의 재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