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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an 07. 2021

가볍게 쓰는 일기 _11

끄적이는 오늘의 생각,

방금 전까지 사뭇 가벼운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오늘 꽂힌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금방 일기 한 편 뚝딱 마무리 짓고 잘 생각이었다. 하지만 분명 처음엔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갈수록 내용이 방대해졌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원래의 컨셉에서 크게 벗어나 다른 내용이 탄생했다. 결국 쓰던 글을 따로 저장해두고 새로 글을 시작했다.


  사실 작성한 내용 중 많은 글이 처음의 구상과는 다른 결론을 맺곤 한다. 특히 일기로 시작했다 제목이 달린 경우가 정말 많다. 그저 끄적일 생각으로 생각의 타래를 풀어냈을 뿐인데 시작에 비해 끝이 너무 창대해져버린 것이다. 가볍게 써야 사람들이 쉽게 읽고 지나갈텐데 글을 쓸 때면 당최 진지함을 버리지 못한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 말이다.


photo by. Rojoy


가끔 내가 쓴 글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노출이 되는 것 같다.


  봐 주는 이가 많다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공감하는 이가 많은 것이다. 조회수는 미친 듯이 올라가지만 아직은 다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해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내가 글쓴이로서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는 글과 알고리즘의 선택에 의해 조회수가 높은 글은 전혀 다르다. 그래도 모종의 ‘선택’을 받았다는 건 감지덕지한 일이다. 천 단위, 만 단위의 말도 안되게 높은 조회수에 괜히 설레긴 한다. 한편으론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을까 신경쓰인다. 해명은 해명대로 골치 아픈 일이다.


오늘의 하루를 정리해보자면 이러했다.


  오늘 꽂힌 노래는 눈이 올 걸 예상해서일까, 고 종현의 ‘따뜻한 겨울’이란 곡이다. 하루종일 반복해서 노래를 들었는데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노래다. 밝고 리드미컬한 멜로디임에도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묻어있는것 같다. 노랫말을 찬찬히 음미하며, 겨울의 풍경을 머릿 속에 그리며 감미로운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일하느라 바쁜 하루였지만 여유를 완전히 잃어버린 하루는 아니었다. 체력도 그 전에 푹 쉬어서인지 잘 뒷받침이 됐다. 내 할 일을 후딱 끝낸 김에 남의 일까지 돕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너무 티를 낸다면 분명 또 나한테 일이 몰릴테니 이만 잠잠히 있을 것이다. 호시탐탐 나의 여유로움을 노리고 공격할 맹수들이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그런데 사실 여유래봤자 얼마 있지도 않다.



내 고민거리들의 우선 순위를 정했다.


  현재 직업적성이 맞는지 여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혔다. 깊은 ‘현타’가 온 터라 고민하느라 어영부영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현명한 선택이랄 게 있을까 싶다. 그래서 그냥 기대를 접고 마음을 내려놓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 일단 오늘만 ‘존버’하기로 한다.


  그래서 하루 중 가장 재밌는 시간은 점심시간에 잠깐 오락실에서 무료 게임을 하는거다. 그래봤자 테트리스 정도 하고 말지만.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한편 레이싱 게임은 지는 걸 싫어하는 성향이라 잘 맞지 않는다. 그러다 ‘현질’할 위험이 높다는 뜻이다.


주변에서 다들 넌 이제 나이 앞자리 숫자가 달라졌다며 매일같이 놀리고 있다.


  나는 잊어버리고 싶은데 자꾸 상기시켜준다. 한술 더떠서 이제 우린 다 친구라고 좋아라한다. 마흔되서 마흔여덟이랑 친구할거냐고 따져묻고 싶지만 안에 꾹 눌러담았다. 동생 하나 놀리는 맛으로 사는 어른이들이라 말릴 수가 없다. 가만히 있고 싶어도 어느새 다가와서 여기 찌르고 저기 찌르는 통에 대부분 웃어 넘기지만 결국 화를 버럭 내는 날도 있다. 하지만 당해 주는 게 동생의 귀여운 맛이지 하고 오늘도 참았다. 언젠간 꼭 되갚고 말 테다!


새해가 되자마자 오랜 고질병인 장염에 걸렸다.


  마침 연휴기간이라 집에서 잘 쉬고 요양하며 지냈다. 그런데 정말 아팠다. 찌릿찌릿 배만 아픈 게 아니라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이미 10살때부터 겪어 온 고통이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출근을 못 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역시나 출근하니 다시 멀쩡해졌다. 그래서 죽도 먹는둥 마는둥하다가 다음 날 바로 생크림 와플을 먹었다. 다들 또 거짓말친다고 놀렸다. 분명 집에서는 병든 닭이 되어 침대에 누워만 있었는데 너무 억울했다. 왜 항상 회사 쉬는 날에 아픈 걸까. 체해서 응급실 드나든 일도 다 주말에 벌어졌었다.



쓰다보니 오늘이 어제가 되었다.

내일 출근길이 정말 걱정되리만치 눈이 온다.

하지만 이젠 정말 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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